열한 대 가운데 가장 먼저 0번 환승센터에 도착했다는 버스는 이미 차고지에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차고지 출입대장에는 그 차량의 입고 기록이 없었다. 보안요원은 오후 네 시쯤 차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다만 누가 운전했고 승객이 있었는지 물으면 매번 다른 대답을 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고 했고, 다음에는 가족 단위 손님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버스가 아예 들어온 적이 없다고 했다.
"말씀이 자꾸 달라지셔도 괜찮습니다. 오늘 직접 보신 장면만 말씀해 주세요."
윤가은이 말했다.
요원은 한참 생각하다가 버스 오른쪽 뒷바퀴의 흙을 가리켰다.
"저건 분명 봤습니다. 차고지 바닥이 아니라 강둑 흙입니다. 비가 안 왔는데도 젖어 있었어요."
가은은 그 말과 시각을 적었다. 미리 정해 놓은 결론에 사람들의 기억을 맞추게 해서는 안 됐다.
이현우가 버스 내부를 들여다봤다. 손잡이에는 회색 종이띠가 마흔세 개 걸려 있었다. 이름 대신 숫자가 적혀 있었고, 좌석 밑에서는 과자 부스러기와 아이의 파란 장갑 한 짝이 발견됐다. 사람이 타지 않은 차에서 나올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물건은 남았네요."
서태경이 말했다.
"사람이 사라진 건 아니에요. 원래 소속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하린은 장갑을 집었다. 털실 안쪽에 작은 글자가 꿰매져 있었다.
'민규, 잃어버리지 마.'
"민규라는 아이가 탔을까요?"
"그렇게 추정할 수는 있겠지만, 장갑 주인을 찾기 전에는 확신하지 말자."
가은의 말에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까지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 대신 정하는 일에 시달렸기에,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차고지 창고에서 미자가 가져온 운행일지가 발견됐다. 지난달의 교대 기록에는 기사 이름과 출발 시간이 빽빽했지만 오늘 오후 기록만 맨 아래에 따로 덧붙어 있었다. 잉크가 다른 줄들과 달리 번지지 않았다.
"제가 쓰는 약자는 이런 모양이 아니에요."
미자가 한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가은은 그 말을 듣고 일지의 해당 부분을 덮었다. 쓰지 않았다는 주장을 보존하는 동시에 실제로 누가 적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녀가 증거 봉투를 꺼내자 미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보다 먼저 해 주실 일이 있어요. 동료들이요. 아까부터 차고지 사람들이 서로를 잘 못 알아봐요. 제가 얼굴을 봐도 이름이 하나씩 비어요."
차고지 식당에는 기사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빈 의자를 향해 커피 두 잔을 놓고 있었다. 자신도 이유를 몰랐다. 현우는 그 의자 옆에 앉았다가 조용히 일어섰다. 누구의 자리였는지 모르면서 함부로 빈 의자를 치울 수 없었다.
미자는 식당 게시판에 작은 종이를 붙였다.
'여기서 커피를 함께 마시던 사람이 있다면, 기억나는 일을 적어 주세요. 틀릴 수도 있으니 서로 확인합시다.'
기사들은 천천히 기억을 꺼냈다. 매번 라디오를 틀던 사람, 집에서 감자를 싸 오던 사람, 밤 운행 뒤에는 꼭 환기를 시키던 사람. 기억은 서로 달랐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 차이를 두고 거짓말쟁이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현우는 비어 있는 의자를 보며 생각했다. 도시의 이름이 사라지기 전에, 사람들은 이미 식당 한가운데서 누군가의 자리를 잃고 있었다.
***
차량 블랙박스에는 길 대신 승강장이 찍혀 있었다.
출발 직후까지는 정상적인 도로가 나왔다. 버스가 시립도서관 앞 사거리를 지나자 신호등 뒤쪽에 없는 터널이 나타났다. 분명 횡단보도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터널 입구에는 흰 표지판 하나가 걸려 있었다.
'기억 이전 전용도로.'
운전대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카메라가 녹화할 때마다 얼굴이 바뀌었다. 젊은 남자였다가, 나이 든 여자였다가, 마지막에는 이현우가 됐다.
현우는 블랙박스 화면을 꺼 버렸다.
"관리자 02겠죠."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수도 있어요."
태경이 말했다.
가은은 화면을 다시 켜지 않았다. 대신 차량 운행 시간과 도로 옆 시설물 위치를 종이에 그렸다. 영상 파일이 바뀌어도 운행거리와 남은 연료량은 비교할 수 있었다.
블랙박스 마지막에는 승객들의 목소리가 잡혀 있었다.
'기사님, 이거 어디로 가요?'
'잠시 후 안전한 곳입니다.'
'우리 아파트는 돌아갈 수 있죠?'
'돌아갈 필요가 없도록 조정됩니다.'
누군가 웃었다. 농담으로 받아들인 웃음이었다. 그 뒤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 우리 집 주소는 뭐야?'
여자의 목소리가 끊겼다.
화면은 검게 변했다.
***
김주영이 시청 내부망에서 노선 계약서를 확보해 왔다. 문서에는 계약 주체로 존재하지 않는 부서가 찍혀 있었다.
'대행관리실 02.'
운송 계약 조건은 행정 용어로 꾸며져 있었지만 실질은 명확했다. 승객 한 명이 승차할 때마다 이전 주소에서의 소속을 임시 해제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원래 관계 기록을 반환할 수 없게 만드는 절차였다. 다만 '원기록 외부 보관소'에서 소속 복구 요청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남아 있었다.
"그 보관소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겠어요."
가은이 말했다.
계약서 맨 아래에는 '서람 수문 관제동'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둑 가까운 시설이었다. 그러나 시설명 옆의 지도 좌표는 계속 바뀌었다. 주영은 종이 도시계획도를 꺼냈다. 신축도로를 몇 개나 덧칠한 낡은 도면이었다. 관제동은 과거 서람초등학교 옆의 배수로와 연결돼 있었다.
"스무 해 전에 있었던 학교와 관계가 있다는 거군요."
현우가 말했다.
"거기서 시작된 거라면, 거기에 멈추는 방법도 있을지 몰라요."
그때 미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고지에서 자신의 운행 지시서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대신 기사 휴게실 창문에 승객 명부가 붙어 있었다. 이름은 없고 날짜와 시간, 숫자만 적혀 있었다.
'임시 이전 인원 43 / 귀환 신청 가능 인원 0.'
"그런데 저 명부를 붙인 사람이요. 분명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누군데요?"
"첫차 운행하던 날마다 같이 커피 마시던 동료요. 이름이 생각 안 나요. 얼굴도요. 하지만 그 사람이 우유를 못 마신다는 건 기억나요."
가은은 통화 내용을 적었다. 이름이 없어져도 관계의 흔적은 남는다. 미자는 단순히 놀란 사람이 아니라 사라진 동료가 있었음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일지 몰랐다.
***
밤이 깊어질 무렵 현우와 가은은 관제동으로 향했다. 보안을 위해 하린과 소은은 태경과 함께 사람들이 있는 상담센터에 남았다. 하린은 자신도 가겠다고 했다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다고 말했다.
"버스에 탔던 애가 장갑을 찾으러 올 수도 있잖아요. 전 거기서 기다릴래요."
현우는 좋다고 했다. 하린에게 위험한 비밀을 지키는 일 말고도 다른 선택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이었다.
수문으로 가는 강둑길은 검은 물 옆으로 길게 이어졌다. 가은은 차를 세우고 손전등을 비췄다. 젖은 흙에 버스 타이어 자국이 보였다. 타이어 자국은 콘크리트 벽 앞에서 끊어졌다. 벽 한가운데 작고 검은 문이 나타났다.
문 위에는 번호가 없었다. 현우는 황동 열쇠를 꺼냈다. 열쇠를 문 가까이 가져가자 손끝이 저릿했다. 문틈에서 회색 종이 한 장이 나왔다.
'귀환 보관소 입장 조건: 자신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가은이 말했다.
"집 주소만 있으면 되나요?"
현우는 문에 손을 대고 대답했다.
"아니요. 누구를 만나러 돌아가는지도 말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저요! 저 돌아갈 곳 있어요!"
버스에서 사라졌다는 승객 가운데 한 명이었다. 얼굴은 생생했지만 머리 위에 회색 빈칸이 떠 있었다. 젊은 여자는 가방에 달린 열쇠고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제 이름은 모르겠어요. 우리 집도 생각 안 나요. 그런데 어제 아이 숙제 검사 안 했어요. 애가 틀린 답을 갖고 오면 먼저 혼내지 말아야 하는데."
여자의 눈에는 겁에 질린 눈물이 고여 있었다.
현우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뒤쪽 검은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 안쪽에서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귀환 신청자 1명 확인. 신청자는 본인의 과거 대신, 아직 지키지 못한 약속을 제출하십시오.'
제2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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