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가 되기 전부터 시청 앞에는 줄이 생겼다.
낮은 구름이 서람시를 덮고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으나 공기가 축축해서 안내문을 든 사람들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노인, 학생, 아이를 안은 부모가 앞뒤로 섞여 있었다. 공통점은 하나였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시청에서 안전한 곳으로 보내 준대요."
"언제 돌아오나요?"
"그건 모르죠. 돌아올 필요가 없을 수도 있잖아요."
이 대화가 현우에게는 무엇보다 무서웠다. 지금까지 만났던 삭제 대상자는 자기에게 벌어지는 일을 모른 채 일상을 살았다. 이제는 사람들이 제 발로 어딘가를 향해 이동하려 했다. 그 선택이 자신의 것이 되려면 목적지가 어디인지,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 알아야 했다.
윤가은은 확성기를 빌리려다가 그만두었다. 경찰 신분을 내세워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버스를 타지 말라고 말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시청 직원 김주영이 대신 게시판에 종이를 붙였다.
'버스 승차로 법적 동의가 성립한다는 안내는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탑승 전 목적지, 귀환 방법,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서면 설명을 요구하십시오.'
그 문장 아래에 시각과 자신의 이름, 담당 부서를 썼다. 무언가를 숨기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보였다.
현우는 사람들에게 직접 질문했다. 무턱대고 재난을 부정하지 않았다. 혼자 떠날 사람이 있고, 몸이 아파 이동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왜 기다리는지 먼저 들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왜 버스를 안 타요?"
열한 살쯤 된 아이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지 아직 안 알려 줬거든."
"그럼 우리 엄마도 안 타는 게 좋아요?"
"엄마랑 먼저 이야기해 봐. 난 이 버스가 돌아올 수 있는지 알아볼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에게 달려가자 어머니가 현우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낯선 사람의 경고를 믿게 만들기보다 가족이 서로 질문할 시간을 만드는 편이 나았다.
***
출발을 기다리던 노인 한 사람이 갑자기 가은에게 다가왔다.
"형사님, 제가 여기서 타지 않으면 집에서 혼자 기다려야 하는데, 그건 누가 책임집니까?"
가은은 즉시 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은 옳았다. 이 버스가 수상하다는 말만으로 누군가에게 위험한 집에 남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주영이 시청 상황실에 연락해 실제 운영되는 대피공간과 교통편을 확인했다. 그중 한 곳은 시민회관이었다. 거기에는 근무자와 연락처가 명시돼 있었다.
"이곳으로 가는 버스도 있고, 지금 시청 차량으로 안내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어르신이 결정하세요."
노인은 안내문을 한참 읽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돌아오지 못할 곳에는 가기 싫소. 그걸 물은 거요."
그가 이동하자 줄 끝의 두 사람이 따라 나왔다. 반면 몇 사람은 여전히 안전 이전 특별노선을 기다렸다. 가은은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알 수 있는 것을 숨김없이 알려 주는 것이지, 사람의 다리를 붙잡는 일이 아니었다.
하린은 멀찍이 서서 그 장면을 지켜봤다. 그녀는 학교 시절 선생님이 자기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 할 때마다 가방끈을 끌어당겼던 기억을 떠올렸다. '널 위해서야'라는 말은 어른들이 자주 했지만, 정작 자신에게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묻는 어른은 드물었다.
"오늘은 다들 물어볼 수 있네요."
소은이 하린의 어깨를 감쌌다.
"그래. 대답을 못 찾았으면 아직 못 찾았다고 해도 되고."
***
첫 버스가 도착했다.
차량 번호판은 정상적이었다. 운전석에는 회색 제복이 아니라 피곤한 얼굴의 중년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임시 명찰을 달고 있었다. 오미자. 뒤쪽 창에는 '안전 이전 특별노선'이라는 전자 표시가 빛났다.
가은이 운전석 옆으로 다가갔다.
"운행 지시서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저도 아침에 받은 거예요. 정규 배차가 아니고 하루짜리 위탁이라서요."
미자는 핸들 옆 봉투를 내밀었다. 가은이 읽어 보니 기점과 종점은 정해져 있었지만 중간 경유지 기록이 없었다. 종점 칸에는 '0번 환승센터'라고 적혀 있었다. 실제 시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었다.
"승객을 어디에 내려 줍니까?"
"저도 아직 모릅니다.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대로 가래요."
미자의 목소리는 짜증보다 불안에 가까웠다. 운전기사에게도 아무 설명이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중요했다.
현우가 고개를 들어 버스의 전자 안내기를 보았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머리 위에 붉은 점이 하나씩 생겼다. 승객 몇 명에게는 글자가 붙었다.
[임시 소속 해제]
그는 숨이 막혔다.
"기사님, 잠시 출발을 늦춰 주실 수 있습니까? 차 안의 안내 문구를 보여 드릴게요."
현우는 이상한 숫자 얘기를 하지 않았다. 탑승구 옆에 나타난 작은 안내문을 가리켰다. 사람의 눈으로도 보이는 인쇄 문구였다.
'본 차량 탑승 시, 기존 주소 및 관계 기록의 이관 절차에 동의함.'
미자는 두 번 읽고 운전석에서 일어났다.
"주소를 옮긴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난 대피 버스라고 들었는데."
가은이 말했다.
"운전기사도 충분히 설명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시한 곳에 다시 확인해 주십시오."
미자는 회사 배차실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은 길었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미자 기사님. 오늘 운행은 본인이 원하신 업무입니다.'
"누가 제 목소리를 녹음했죠?"
'이미 승낙하셨습니다.'
미자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배차 화면에 붉은 표시가 떴다.
[운행 의사 재확인 요구 / 미확인 시 기사 교체]
버스 앞문이 저절로 닫히기 시작했다. 승객들이 놀라 서로 밀쳤다. 미자는 비상 개방 스위치를 당겼다. 문은 찰칵 소리와 함께 다시 열렸다. 그 순간 버스 천장에 희미한 회색 무늬가 생겼다. 누군가 차 안의 공간을 얇은 종이처럼 접고 있었다.
"모두 천천히 내려 주세요!"
미자가 외쳤다.
가은이 앞줄의 어린아이를 먼저 내리고, 현우와 태경은 뒤쪽 승객들에게 출구를 안내했다. 사람들이 뛰지 않도록 서로 어깨를 잡았다. 대기 줄 뒤편에서 몇 사람이 소리쳤다.
"대피시켜 준다는데 왜 막아요?"
"목적지를 확인하신 뒤에 타시면 됩니다!"
가은이 대답했다.
혼란 사이로 한 노인이 버스 안쪽 좌석에 남았다. 그는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있었다. 현우가 다가갔다.
"어르신, 같이 나가시죠."
"집이 어디인지 기억이 안 나. 그래도 버스 타고 가면 찾게 해 준다기에."
노인의 손에는 얇은 쪽지가 있었다. 연필로 쓴 문장 하나.
'외손녀가 토요일에 온다.'
"토요일에 누구 오신다고요?"
"우리 수진이. 고등학생이야."
노인의 머리 위 붉은 점이 조금 옅어졌다. 현우가 손을 내밀자 노인은 천천히 일어섰다.
마지막 승객이 내리자 버스 안의 회색 무늬가 사라졌다. 미자가 뒤따라 내려 문을 잠갔다. 곧 차 안의 전광판에 숫자가 떠올랐다.
[예상 이관 인원: 43명]
[실제 이관 인원: 0명]
[대리 동의 실패]
현우는 그 문구를 사진으로 찍어 가은에게 건넸다.
"이동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전부 이관할 뻔했어요."
"버스 한 대에서 마흔세 명이요. 도시 전체에서는 얼마나 될까요?"
가은이 말했다.
그때 시청 스피커에서 다시 방송이 흘렀다.
'첫 운행의 지연이 확인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은 혼란에 빠지지 마십시오. 보다 효율적인 노선으로 재편하겠습니다.'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 갑자기 운행 중인 차량 목록이 나타났다. 같은 모양의 버스 열한 대가 다른 동네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오미자가 전광판을 보았다.
"잠깐만요. 저 차들 중 하나는 제가 아는 버스예요. 아침에 분명 차고지에 있던 기사 없는 차량이었는데."
태경이 고개를 들었다.
"기사도 없이 운행한다고요?"
"아니요. 차량에는 누군가 있을 겁니다. 운행기록상은 빈 차예요."
한 대의 버스 표시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잠시 뒤 탑승 인원 칸의 숫자도 사라졌다. 지도에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기록만 남았다.
[0번 환승센터 / 최초 도착 완료]
그리고 현우의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첫 번째 버스 승객들이 돌아갈 주소를 잃었습니다. 직접 만나 확인하시겠습니까?'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화면 아래에 작은 숫자만 있었다.
02.
제2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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