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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86화
PAYLUA ORIGINAL · 제186화

186화. 대신 서명한 손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810자

오프라인 책장
제4중계소에서 출력된 용지의 마지막 줄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이현우. 그 이름이 적힌 칸 위에는 서명 시각이 인쇄돼 있었다. 17시 42분. 그 시각 현우는 터널 밖 통제선 앞에 서 있었다. 현장 안전 담당자가 촬영한 기록에도 그가 그곳에 있는 모습이 남아 있었다. 가은은 용지를 곧바로 봉인했다. 누군가 현우의 이름으로 응답을 만들었다. 그것이 사람이 입력한 조작인지, 오래된 시스템이 자동으로 채운 값인지는 아직 몰랐다. “다른 쪽에 남아 있는 원본을 봐야 합니다.” 주영이 말했다. “원본이 여기 아니에요?” “이건 출력 결과예요. 입력이 어떻게 생성됐는지는 따로 남아야 하죠. 문제는 장치가 아주 오래됐다는 겁니다.” 전파사의 노인은 무전으로 출력을 설명해 들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장치의 하단에 검은 레버가 있는지 물었다. 주영이 렌즈를 아래로 내리자 정말 작은 레버가 있었다. “그건 서명을 만드는 레버가 아닐세. 수신선을 끊고 고정된 검사 문구를 출력하는 시험용 장치야. 누군가 그걸 켰다면, 사람 이름은 미리 넣어 둔 값일 거야.” “누가 그 값을 넣었을까요?” “스무 해 전엔 시험할 때 쓰던 이름이 하나 있었네. 그걸 바꾸려면 수리용 열쇠가 필요했지.” 현우는 무릎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이 시험용 값이었다면, 그 사실만으로 스무 해 동안 벌어진 수많은 일들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왜 언제나 그의 이름이 먼저 호출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누가 제 이름을 그렇게 써도 되는 거였죠?” 노인은 한참 뒤에 말했다. “당시엔 테스트 값이라고만 생각했을 거야. 사람 이름이 프로그램에 오래 남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지.” 하린은 노인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현우의 손에 물병을 쥐여 줬다. 현우는 마개를 돌리는 데도 몇 초가 걸렸다. 그 사이 여은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보이는 게 돌아왔어요. 그런데 이번엔 숫자가 달라요.” “어떻게요?” “당신 이름 위에 '원본 미확인'이라고 떠요. 시간은 마흔여덟 시간 정도예요.” 두 사람은 숫자를 대조했다. 차이는 열세 초. 현우가 처음으로 같은 예고를 공유한 뒤 생긴 가장 큰 어긋남이었다. 현우는 자신의 시간이 진실이라고 우기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서로 다르게 본다는 사실도 중요한 증거였다. 가은은 현장 담당자에게 레버 상태를 기록하고 원복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수사관이 아닌 사람이 오래된 설비를 만지면 연결이 끊어질 수 있었다. 대신 반대편 시설 관리 서버의 감사 기록을 보존하도록 조치했다. 주영이 보조 배터리와 계측 장비를 이용해 출력 시각을 외부 기록과 대조했다. 서명은 정확히 17시 42분에 찍혀 있었지만, 그날 현우의 이름을 불러온 명령은 17시 41분 58초에 들어왔다. 입력 회선은 제4중계소 내부가 아니었다. “어디입니까?” 가은이 물었다. “열두 번째 지역을 대리하는 임시 노드예요. 이름은 지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구형 장치가 주소 한 조각을 남겼어요.” 주영이 메모지에 적었다. '복귀선 / 서람 대피소 / 지하 이송실.' 현우는 가은을 바라봤다. 스무 해 전 문이 닫힌 그 대피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전부 시작된 곳이네요.” “시작됐다는 이유만으로 거기에 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가은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명령이 그쪽에서 왔다는 건 확인해야죠.” 그날 저녁, 여은에게도 같은 장소가 떠올랐다. 제본소 작업대에서 오래된 종이배를 펼쳤을 때였다. 작은 배의 바닥에는 누군가 거꾸로 적은 숫자 12와 화살표가 있었다. 화살표의 끝은 배의 돛이 아니라, 안쪽 깊숙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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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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