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중계소는 열두 곳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다.
주영은 종이테이프를 사진으로 남기고 지역별 장비 목록과 대조했다. 열두 개의 수신 모듈은 각 지역의 기록을 서로 확인하는 장치였다. 그런데 제4중계소의 오래된 제어기는 그 바깥에 있었다. 열두 곳이 무엇을 대답했는지를 모두 듣고, 미응답이 있으면 완료를 보류시키는 감시용 회선이었다.
“그러면 열세 번째는 사람 수가 아니라 회선 번호였을 수도 있겠네요.” 하린이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주영이 대답했다. “하지만 민서 씨가 앉았던 열세 번째 의자와 연결되는지는 아직 모르죠.”
노인은 금속 상자를 보호용 천에 싸서 가은에게 건넸다. 실물을 건네는 데는 필요한 인수 확인서를 작성했다. 상자는 오래됐지만 최근에 붙인 테이프가 문제였다. 누가, 언제, 어떤 경로로 이곳에 들어왔는지 밝혀야 했다.
한편 병원에서는 새로운 연락이 들어왔다. 정병익 노인의 등록이 다시 '복귀 확인'에서 '확인 불가'로 바뀌었다. 그를 병실까지 찾아낸 직원의 서명이 전산 조회에서 없어졌다. 미정이 직접 제출한 수기 보고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 보고서마저 없었다면 제가 그분을 찾았다는 증거가 사라질 뻔했어요.” 미정이 말했다.
가은은 '증거가 사라진다'는 말을 곧바로 믿지 않았다. 파일 권한 변경이나 잘못된 참조일 수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벌어지는 문제는 같았다. 사람을 데리고 돌아온 직원의 행동이 기록되지 않으면, 다음 근무자는 환자를 또다시 찾아 나서야 했다.
전파사 근처 주민회관에서는 작은 대피 훈련이 진행 중이었다. 가은은 시설 담당자와 함께 그 자리에서 중계 장치의 취약점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인은 화이트보드에 동그라미 열두 개를 그렸다. 그리고 그 바깥에 작은 네모를 하나 더 만들었다.
“동그라미들이 아무리 서로 '끝났다'고 해도, 네모는 반드시 마지막 대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문 밖에 누가 남아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다영이 병원에서 보낸 메시지가 현우의 휴대전화를 울렸다. 할머니가 점심을 먹고 한숨 주무신 뒤, 손녀에게 어릴 때 부르던 별명을 불러 주었다고 했다.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식사를 함께 기억하겠다고 했다.
현우는 그 짧은 메시지를 여러 번 읽었다. 오래된 기록과 사람이 가진 기억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하나도 쉽게 흔들릴 수 있었다.
오후 늦게, 저수지 관리 사무소에서 제4중계소의 외부 점검을 허가했다. 위험 지역은 전문가만 들어갈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가은과 주영, 시설 안전 담당자가 현장을 확인하고 현우와 하린, 민서는 통제선 바깥에 남기로 했다.
그곳에는 배수 터널의 문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자물쇠가 녹슬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교체된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안전 담당자가 현재 배수량을 확인한 뒤 작은 창을 열었다.
창 너머에서 낡은 표시등이 깜박였다.
[11 / 12]
열한 곳의 응답이 돌아왔다. 한 곳은 비어 있었다.
“누가 빠졌죠?” 가은이 무전기로 물었다.
주영이 회선 목록을 대조했다. 서람, 해온, 청리 등 열한 지역 이름이 차례로 표시됐다. 마지막 하나는 지역 이름이 아니라 일련번호였다.
'지역 12 / 이름 없음.'
서류에서 빠진 지역이 있다는 뜻일 수도, 일부러 이름을 지운 흔적일 수도 있었다.
현우가 통제선 밖에서 바라보는 동안 자신의 이름 위에는 다른 글씨가 떠올랐다.
[원본 확인 대기 / 49:16:08]
동시에 여은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현우 씨, 저는 지금 아무 글씨도 보이지 않아요.”
“갑자기요?”
“네. 그런데 이상해요. 보이지 않으니까 편안한 게 아니라, 누군가 저 대신 대답한 것처럼 느껴져요.”
통화가 끝나기도 전에 중계소 안에서 짧은 종이 출력 소리가 났다. 주영은 새로 나온 용지를 사진으로 남겼다.
'지역 12 응답 대체 완료.'
그 아래 서명이 있었다.
'이현우.'
현우는 통제선 밖에서 두 손을 꽉 쥐었다.
자기가 서명한 적 없는 문서에, 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제18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