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스가 마지막 줄을 토해 낼 때, 제본소의 형광등이 세 번 깜박였다.
첫 번째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 번째에는 여은이 낡은 공책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세 번째가 끝난 뒤에는 현우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글씨가 조금 작아졌다.
[열두 지역 최종 동기화 / 71:58:42]
“사라지고 있어요?” 여은이 물었다.
“숫자는 줄어드는데, 이름은 그대로예요.”
“제가 보는 것도 그렇습니다.”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평생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던 것을 다른 사람이 함께 본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은의 손끝이 떨리는 것을 보자 웃음이 멈췄다. 이 현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혼자 감당하던 공포까지 건네는 일이었다.
가은은 통화에서 두 사람의 진술을 각각 받아 적었다. 화면에 보이는 인쇄 문구와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글씨를 섞지 않았다. 주영은 제본소의 팩스기가 연결된 회선을 확인하면서 더 이상한 소식을 전했다.
“서람시만이 아닙니다. 청리군 의료기록 조회가 십칠 분 전부터 불안정합니다. 해온군에선 실종자 임시 기록이 '중복 항목'으로 분류되기 시작했고요.”
“단순 장애일 수도 있잖아요.” 하린이 말했다.
“각 지역의 시스템은 서로 다른 회사가 운영합니다. 그런데 처리 사유 코드가 같습니다. '원본 증인 미확인'. 누군가 같은 규칙을 밀어 넣고 있어요.”
현우는 팩스 위에 놓인 종이를 보았다. '증인 정보 소거'라는 말은 서버 안의 글자를 지우는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우는 지워진 이름이 실제 사람을 어떻게 흔드는지 이미 보았다. 가족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고, 낡은 사진 속 빈자리가 늘었다. 그래서 그는 첫 질문을 기술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았다.
“지금 위험한 사람은 누구죠?”
가은이 대답했다.
“확인된 피해자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신원을 임시로 보호받는 사람들이 서류상 먼저 흔들릴 겁니다. 병원에서 보호자 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 재심 중인 실종자, 이름을 바꿔 살아온 증인들.”
그 순간 여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제본소에서 함께 책을 수선하던 청소년 한 명이었다. 서람시 외곽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를 만나러 갔는데, 접수대에서 처음 보는 안내문을 받았다고 했다.
'관계 확인 보류. 환자 방문 기록 재심사.'
“할머니가 저를 모르신대요.” 전화기 너머에서 아이가 말했다. “어제까지는 이름을 불러 주셨는데요.”
가은이 곧바로 의료진에게 연결하라고 했다. 현우는 그것이 시스템 문제인지 환자의 건강 상태 때문인지 아직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 구분을 확인하러 가는 동안에도 숫자는 줄어들었다.
제본소를 나서자 빗길에 붉은 신호등이 번졌다. 현우는 빗물에 비친 제 이름을 보았다. 유리창이나 종이에 나타난 적은 있었지만 길 위에서는 처음이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 반사는 사라졌다.
“보이는 게 늘어나는 것 같아.” 그가 말했다.
하린은 우산을 기울였다.
“그렇다고 모든 게 진짜가 되는 건 아니지. 네가 본 것과 지금 일어난 일을 나눠서 기억해.”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은은 병원으로 동행하고, 주영은 사무실에서 지역별 변경 이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가은은 임시 보호 대상 명단의 자동 변경을 중지해 달라는 긴급 요청을 보냈다. 서류 한 장으로 기계를 즉시 세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반대했다는 기록은 남겨야 했다.
그들이 차에 오를 때, 현우의 휴대전화에 발신 번호가 없는 음성 메시지가 들어왔다. 재생 버튼 대신 낯선 문장이 떠 있었다.
'열두 곳에서 동시에 문이 닫힐 때, 안에 남은 한 사람을 찾아라.'
그리고 바로 아래에, 현우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시가 따라붙었다.
[관찰자 연결: 2 / 12]
현우는 옆좌석의 여은을 보았다.
“우리 둘뿐이라는 뜻인가요?”
여은은 앞유리 너머 깜박이는 가로등을 보다가 대답했다.
“아뇨. 저 숫자가 맞다면, 아직 열 명의 자리가 남았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제18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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