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깨끗했다. 지나치게 깨끗했다.
스무 해 전 대피소의 수신창은 먼지와 물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을 텐데, 사진에는 반사광 하나 없었다. 주영이 원본 메타데이터를 살피자 촬영 장치 정보도 없었다.
“이것만으로는 당시 사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주영이 말했다. “합성이든 재촬영이든 다른 출처가 있을 수 있어요.”
가은은 발신자의 신원 확인 절차를 진행하고, 서람시 시설팀이 보관하던 실제 유리 사진을 확보했다. 두 사진의 모서리 결함이 정확히 같았다. 누군가 원본 자료를 이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한 번 더 두드린 사람은 없었던 건가요?” 하린이 물었다.
“사진이 조작됐다고 해서 소리까지 조작됐다고 결론 내릴 순 없죠.” 가은이 말했다. “반대로 여은 씨의 기억만으로 소리를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날 오후 윤소라가 오래된 리허설 녹음을 가져왔다. 첫 시범방송에 사용한 테이프의 뒤쪽, 원고 낭독이 끝난 뒤 녹음기가 자동으로 멈추기 전의 짧은 공백이었다. 다른 복제본들은 소리가 없는 부분이라며 그 구간을 잘라냈지만, 소라가 개인적으로 보관한 테이프에는 남아 있었다.
주영은 원본 테이프를 개봉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문 보존기관에 복원을 의뢰했고, 참관한 자리에서 첫 재생 결과를 들었다. 작은 숨소리, 철판을 건드리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세 번의 두드림.
똑. 똑. 똑.
이어 조금 멀리서 두 번.
똑. 똑.
모두가 숨을 죽이고 다음 소리를 기다렸다. 테이프에서 지직거리는 잡음이 났다. 그러고는 예상보다 약한, 손끝으로 유리를 친 듯한 한 번의 소리가 들렸다.
똑.
현우는 눈을 감았다. 세 번째 신호는 분명 있었다. 다만 누가 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뒤에 어린 목소리가 아주 짧게 들렸다.
“여기 있어요.”
가은은 재생을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단정하기 전에 원본의 시각과 장소를 확인해야 했다.
복원 담당자는 테이프가 리허설을 녹음한 것이라며 설명했다. 실제 대피소 안에서 녹음한 자료가 아니었다. 누군가 연습 과정에서 신호를 재현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연습이라도 누군가 알고 있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여은이 말했다. “세 번 다음에 두 번, 마지막에 한 번을.”
그녀는 가방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어린 유림이 써 둔 규칙표였다.
‘3번: 밖에 사람 있음.’
‘2번: 안에서 들었음.’
‘1번: 아직 남아 있음.’
소라는 입술을 손으로 가렸다. “제가 읽은 원고에는 마지막 신호가 없었어요. ‘안에서 확인되면 대피 완료’라고만 되어 있었지요.”
주영이 자료를 비교해 보자, 애초 시험 계획에는 세 가지 신호가 있었으나 자동 승인 규칙의 개정판에서는 마지막 한 번이 삭제돼 있었다. 누군가 실수로 빠뜨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분명했다. ‘아직 남아 있다’는 응답을 받지 못하는 절차가 만들어진 것이다.
현우는 그 사실을 여은에게 설명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설명보다 먼저 그녀의 말을 듣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마지막 소리를 듣고도 돌아섰어요.” 여은이 말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왔고, 어른들이 다 끝났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오래도록 그 소리를 잊은 척했어요.”
“그때 열네 살이었잖아요.” 하린이 말했다.
여은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그 사람이 남아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현우가 입을 열었다.
“기억하는 것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정하는 건 다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소리를 들었다는 말은 지우지 않아도 됩니다.”
여은은 오랫동안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그녀는 옆에 빈 줄을 하나 만들었다.
‘마지막 소리의 주인: 확인 필요.’
바로 그때 가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람시 시설팀이 수신창 뒤 설비 점검을 완료했다는 연락이었다. 위험한 배관을 차단한 뒤 좁은 벽체 내부에서 낡은 방수 상자가 발견됐다고 했다.
상자 안에는 사람 이름이 아닌, 어린아이의 손목띠가 두 개 있었다.
한쪽에는 ‘이현우’. 다른 한쪽에는 이름 대신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나를 찾으면, 네가 나를 보았다고 말해 줘.’
현우는 두 번째 띠를 들여다보았다. 손목을 감쌌던 천은 여러 번 빨아 낡은 것처럼 부드러웠지만 매듭은 풀리지 않은 채였다. 누가 차고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은 물건을 하나의 이름에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으려고, 가은은 사진 기록에 ‘무명 손목띠’라고만 적었다.
“우리가 할 일은 대답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누가 대답했는지 알아내는 겁니다.” 주영이 말했다.
현우는 한 번 더 작은 문장을 읽었다. 낡은 천 조각에도 누군가 보아 달라고 부탁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제17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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