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림’이라는 이름은 서람시의 20년 전 대피 명단에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더 어려운 일은 명단에 없는 사람을 실제로 찾는 일이었다. 가은은 당시 주민등록 자료를 무작정 뒤지는 대신, 구조 활동에 참여한 기관의 명단과 공개된 증언을 먼저 대조했다.
주영은 점검철 속 비닐 봉투를 펼쳤다. 오래된 영수증, 아이들이 그린 연필 그림, 젖은 종이를 말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림에는 사람 셋이 그려져 있었다. 문 안의 아이, 문 밖의 아이, 그리고 문 옆에 선 어른. 사람들 머리 위에는 작은 사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한쪽 가장자리에 아이 글씨로 적힌 말.
‘빨간 글씨는 그 사람 이름이 아니다. 그런데 이름처럼 따라다닌다.’
“누가 썼을까요?” 현우가 물었다.
가은은 그림 아래를 가리켰다. 작게 ‘유림, 열넷’이라고 써 있었다.
“같은 사람이 썼을 가능성이 있지만 필적 감정 없이 확정할 순 없습니다. 먼저 당시 유림이라는 아이가 있었는지 확인하죠.”
정혜옥은 사진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기억이 납니다. 대피소에서 내내 종이를 찾던 애가 있었어요. 몸이 떨리는데도 사람들에게 연필이 있냐고 물었죠.”
“어떤 아이였습니까?”
“자기 이름을 말하려다 매번 삼켰어요. 대신 다른 애들 이름을 적어 줬습니다.”
현우는 그림을 살폈다. 작은 사각형은 사람의 머리에 달린 표가 아니라, 마치 눈앞에 떠 있는 무언가를 따라 그린 듯했다. 자기 눈에만 보이는 글씨를 처음 설명하려고 할 때 그가 그렸던 모양과 비슷했다.
하지만 비슷하다는 건 증명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윤소라의 집에서 유림에 관한 오래된 녹음이 발견됐다. 소라가 첫 시범방송을 마치고 개인 연습용 녹음기에 남긴 비공식 메모였다. 장치 번호와 보관 시각을 확인한 뒤 소라는 자신이 직접 버튼을 눌렀다.
'방송 대기실 앞에 열네 살쯤 된 아이가 와서 말을 걸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내가 방금 말한 문장 중 어느 부분을 진짜로 믿느냐고 물었다.'
이어서 젊은 소라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며 말했다.
'그 아이는 누군가의 이름이 붉어지는 것을 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했다. 그러자 아이는 내게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에 적힌 것은 이름이 아니라 시간이었고, 끝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중에 무슨 일이 나도 이 종이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녹음은 거기서 끊겼다.
“그 종이 있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소라는 오래된 대본 보관함을 열었다. 책갈피 사이에 끼워 둔 수첩 종이는 노랗게 변해 있었다. 그것을 꺼내는 소라의 손이 느리게 떨렸다.
종이에는 세 줄이 적혀 있었다.
‘첫 번째 붉은 이름: 이현우.’
‘표시 시작: 사고 이전.’
‘그 아이가 사라지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어진다.’
현우는 멍하니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백도윤의 메모도, 운영 02의 전산 기록도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다른 어린아이의 이름을 적어 둔 기록이었다.
“제가 그때부터 빨갰다고요?”
소라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네 이름이 실제로 붉게 보인 적이 없어요. 저 아이가 이렇게 썼다는 것만 증언할 수 있죠.”
현우는 그 정확한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 유림이 왜 그렇게 썼는지 알아야 했다.
수첩 뒷면에는 주소 대신 짧은 문구가 있었다.
‘나를 찾으려면, 내가 고른 이름을 먼저 찾을 것.’
그 문장을 본 소라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기억하는 소녀는 늘 연필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 어디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 소라는 아이의 이름을 말했고, 담당자는 정식 대피 명단에 없다는 이유로 적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 아이 말을 한 번만 더 들어 줬어야 했어요.” 소라가 말했다.
가은은 그 말이 곧 소라의 잘못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록을 남긴 기관의 책임과, 그곳에 있었던 사람의 후회를 섞지 말아야 했다. 다만 이번에는 누군가가 다시 말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제17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