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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70화
PAYLUA ORIGINAL · 제170화

170화. 일흔두 시간의 수신인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408자

오프라인 책장
자정까지 세 시간이 남았을 때, 현우는 더 이상 혼자 시계를 보지 않았다. 정혜옥은 구조창고의 오래된 장부를 펼쳐 놓았고, 주영은 도시별 자료 담당자들과 영상 통화를 연결했다. 하린은 민서와 함께 확인된 사람들의 이름을 한 줄씩 종이에 적었다. 가은은 필요한 경우에만 원본을 공개하고,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는 '미확정'이라는 표식을 남기는 절차를 설명했다. 한예린은 전화로 참여했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저는 아버지의 실종 기록을 없애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단정해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장을 원문 그대로 기록하겠습니다.” 서동재도 뒤늦게 연결됐다. 그는 자신이 유지보수 권한을 넘기지 않았던 경위와 시험용 대체 응답 기능이 실제 자료에 적용된 과정을 진술했다. 기억나지 않는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은은 그 진술이 면죄부가 아니라 책임을 확인할 단서가 된다고 분명히 했다. 밤 열 시 사십이 분. 남쪽 센터의 작업 예약이 다시 나타났다. [미확정 대상 귀속 / 최종 시도] [대리 응답: 이현우] 주영은 곧바로 현우의 이의 제기 서류, 위조 의심 음성의 원본 파일, 작업 전후 기록을 담당 기관에 보냈다. 열두 지역 중 아홉 곳에서 자동 귀속을 막는 긴급 중지가 승인됐다. 나머지 세 곳은 담당자가 교대 중이라 답이 늦었다. “직접 멈출 수는 없나요?” 현우가 물었다. “권한 없는 사람이 일괄 차단하면 그 지역의 정상적인 구조 기록까지 사라질 수 있어요.” 주영이 말했다. “급해도 그건 할 수 없습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은 자꾸 붉은 숫자에 끌렸다. [백도윤 / 00:54:42] 그때 영상 통화 화면 속 한 지역 담당자가 손을 들었다. “저희에게도 동일한 음성 수락 파일이 등록됐습니다. 그런데 원본이라고 표시된 날짜에 이현우 씨는 그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는 미성년자였다고 나오는데요?” 주영은 화면을 확대했다. 원본의 날짜가 자동 변환 과정에서 20년 전으로 밀려 있었다. 한 사람이 어른이 된 뒤에 한 말을 어린 시절의 승인으로 뒤집은 것이었다. 이것만으로도 해당 파일을 유효한 수락 근거로 삼을 수 없었다. “날짜와 당사자 나이가 맞지 않습니다.” 가은이 말했다. “다른 두 지역에도 이 오류를 공유해 주세요. 다만 개인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공개하진 말고요.” 그 사이 열 번째 지역에서도 중지 확인이 도착했다. 이윽고 열한 번째 지역이 중지 결정을 내렸다. 마지막 한 곳은 남쪽 바닷가의 작은 군이었다. 연결 상태가 불안정했고 담당자는 오래된 단말기로만 접속할 수 있다고 했다. “저희는 음성으로 본인 확인을 받고 있습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현우는 목 뒤가 차가워졌다. 또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신 들려주면 끝날지도 몰랐다. 정혜옥이 마이크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럼 제 목소리는 누구의 것입니까?” “정혜옥 선생님 아닙니까?” “여기 말하는 내가 있다는 건 당신이 화면에서 보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테이프 속 사람이 살아서 말한 것인지는 어떻게 확인합니까?” 담당자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에서 오래된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났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맞습니다. 별도 확인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자동 작업을 정지하겠습니다.” 마지막 지역에서도 중지가 승인됐다. 현우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자신의 시야에 남은 붉은 숫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 잘못된 작업을 멈췄다고 해서 이름을 본다는 현상 자체가 없어지진 않았다. [백도윤 / 00:29:04] 현우는 구조창고 바깥으로 나갔다. 바다는 검었고, 멀리 조업을 마친 배들의 불빛이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하린이 그의 곁에 섰다. “이제 백도윤 씨는 안 사라지는 거야?” “모르겠어. 그분이 어디 계신지도.” 하린은 잠시 바다를 보았다. “예전에는 네가 숫자가 사라질 때마다 누군가를 구했다고 생각했잖아.” “그래.” “지금은?” “누군가 자기 이름으로 대답할 수 있는 시간을 지킨 거라고 생각해.” 그가 말하는 동안 붉은 숫자는 스물네 분, 열다섯 분, 다섯 분으로 줄었다. 창고 안에서는 사람들이 다음 날 인수인계할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현우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예린이 부탁한 문구가 빠짐없이 적혔는지 확인했다. 00:00:30. 오래전 백도윤의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는 안전한 보관 상자 안에 있었다. 과거의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적어도 한 사람이 자기 뜻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00:00:10. 현우는 누군가 사라지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00:00:03. [백도윤 / 00:00:02] 00:00:01. 붉은 이름이 하얗게 뒤집혔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허공만 짚었다. 눈앞에서 백도윤이라는 세 글자가 지워지는 대신, 그 아래에 있던 숫자가 한 줄의 문장으로 바뀌었다. [수신 기한 종료 / 응답 없음] 그때 창고 안 유선 전화가 울렸다. 정혜옥은 모두를 돌아본 뒤 수화기를 들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먼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백도윤을 찾으십니까?” 정혜옥은 녹음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허락을 받기 전까지 상대의 목소리를 기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잠시 침묵했다. “그 사람이 남긴 종이에는 첫 번째 붉은 이름을 본 사람이 따로 있다고 적혀 있을 겁니다.” 현우가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누굽니까?” “당신이 그 이름을 볼 수 있다면, 다음 질문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백도윤입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상대가 말했다.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당신을 처음 본 날 옆에 있었습니다.” 현우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백도윤의 숫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를 건 사람의 정체를 확인할 방법도 당장은 없었다. “그럼 당신 이름부터 말하세요.” 긴 침묵 끝에 상대는 한 지명을 말했다. “서람시 옛 대피소 아래층. 열세 번째 문이 있었던 곳으로 오십시오. 나는 거기에 있습니다.” 가은이 현우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단독으로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현우는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때 이야기하겠습니다. 먼저 왜 그곳에 있는지 설명하세요.” 하지만 전화는 이미 끊겼다. 주영이 서둘러 발신 경로를 확인했다. 번호는 남쪽 산도, 백조등대도 아니었다. 스무 해 전 사고 이후 폐쇄된 대피소의 공중전화 회선 번호였다. 지금은 연결되지 않아야 할 번호였다. 현우는 구조창고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을 보았다. 그 위에 새로운 붉은 문장이 떠올랐다. [첫 번째 관찰자 / 이름 미확인] 그리고 숫자 대신, 세 번의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현우 혼자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창고 안의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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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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