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67화
PAYLUA ORIGINAL · 제167화

167화. 살아 있다는 증거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076자

오프라인 책장
서동재의 집에는 초인종이 없었다. 문 옆의 녹슨 우편함에는 이름표도 붙어 있지 않았다. 현우가 그 앞에서 망설일 때 가은은 문을 한 번 두드리고 경찰 신분을 밝혔다. 한참 뒤 어딘가에서 쇠사슬을 푸는 소리가 났다. “누구를 찾습니까?” 일흔을 앞둔 남자는 바짝 마른 얼굴에 얇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옷깃에는 세탁소에서 받은 종이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서동재는 가은이 가져온 계약서 복사본을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아직 남았어요?” “당신 서명인지부터 확인하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서동재는 그들을 거실로 안내했다. 벽 한쪽에는 오래된 강 수위 그래프가 액자로 걸려 있었고, 식탁 위에는 손때 묻은 아날로그 녹음기가 놓여 있었다. 남자는 먼저 차를 권하지 않았다. “내가 운영 02를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보군요.” 주영이 대답했다. “계약서에는 02를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유지하셨다고 나옵니다.” “만든 건 아니에요. 관리하던 사람이었죠. 사고 뒤에 지자체들이 하나씩 시스템을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대피소를 거친 아이들 정보가 통째로 없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멈추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가 수락하지 않은 기록이 수락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은이 말했다. 서동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압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언제 알았습니까?”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임시 표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잡을 수 있다고.” “그런데 바로잡지 않았군요.” 남자는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액자를 내려 뒤편의 종이를 꺼냈다. 오래전 백도윤이 남긴 시설 점검 목록이었다. 가장 아래에 다른 필체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운영 02의 대체 응답은 오직 시험망에서만 허용. 실제 당사자 자료에는 적용 금지.' “도윤 씨는 이 문구 때문에 사라졌습니까?” 현우가 물었다.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본 날 화를 냈어요. 우리가 안전을 이유로 사람들 입을 막고 있다고.” 현우는 시계를 보았다. [백도윤 / 19:41:07] 동재는 그의 표정을 눈치채고 물었다. “숫자를 봅니까?” 현우의 목소리가 굳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 사람도 그런 표정을 지었어요. 눈앞에 뭔가 떠 있는 것처럼. 나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날은요.” 동재는 아날로그 녹음기를 작동시켰다. 삐걱대는 테이프 소리 뒤에 남자의 숨이 들렸다. '서동재 씨. 대답하지 않는 사람의 자리를 보존해야 합니다. 빈칸에 목소리를 넣는 순간, 그건 보호가 아니라 조작입니다.' 목소리는 북하 방송국 테이프의 남자와 비슷했다. 현우는 녹음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테이프 끝에서 남자는 한 문장을 더 말했다. '혹시 내가 돌아오지 못해도 예린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처리하지 마세요.' 현우의 목이 잠겼다. 예린의 이름이었다. 녹음 속 남자가 백도윤이라고 해도, 이 사람이 언제 어디서 녹음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동재는 테이프를 건네며 직접 확인해 달라고 했다. “왜 이제야 주는 겁니까?” 가은이 물었다. “내가 이걸 지키고 있으면 나쁜 일이 더 일어나진 않을 줄 알았어요.” 그때 동재의 집 전화가 울렸다. 오래된 유선 전화였다. 동재는 수화기를 들자마자 표정이 변했다. 상대의 말이 들리진 않았지만 동재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 목소리를 또 쓰지 마시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먼저 물으라고 했잖소.” 전화를 끊은 그는 창문으로 달려가 블라인드를 내렸다. “남쪽 센터의 보조 회선입니다. 이 번호는 나 말고 아는 사람이 없어야 해요.” 현우가 물었다. “상대가 누구였습니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오래된 시험방송만 틀었습니다. 그런데 끝에서 다른 소리가 들렸죠.” “무슨 소리요?” “기침 소리. 내가 아는 사람만 그렇게 기침했어요.” 동재는 마른 입술을 적셨다. “백도윤 씨입니다. 다만 스무 해 전 녹음일 수도 있어요. 나는 그 차이를 아직 모릅니다.” 가은은 무언가 말하려다 멈췄다. 동재가 서랍에서 작은 수첩을 한 권 꺼냈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 장에는 남쪽 산과 멀리 떨어진 지명이 적혀 있었다. '기록이 죽으면 음성은 바다로 간다. 구 백조등대 / 새벽 근무자.'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67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67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