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소에서 나온 지 아홉 시간쯤 지난 뒤, 현우의 목소리가 열두 개 지역의 서버에 도착했다.
'수락합니다.'
정확히 세 음절. 그 뒤에는 짧은 침묵이 붙어 있었다. 주영이 재생 속도를 늦추자, 음절 사이에 서로 다른 배경 소음이 섞여 있었다. '수락'은 몇 주 전 현우가 기자에게 답한 말에서, '합니다'는 기록관 민원 안내 영상에서 따온 것으로 보였다.
“합성된 것 같은데요.” 하린이 말했다.
“정밀 감정 전엔 확정하지 않겠지만 문맥과 호흡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주영이 답했다. “중요한 건 누가 만들었느냐보다 이 녹음을 사용해 무슨 작업을 하려느냐예요.”
관리 시스템 화면에 예정 작업이 나타났다.
[미확정 보호 자료 일괄 귀속]
[승인 기록: 이현우 / 자동 추정]
[적용 예정: 28:04:51 후]
현우의 눈앞에 있는 백도윤의 숫자도 같은 시간을 가리켰다.
[백도윤 / 28:04:51]
그는 손바닥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손금이 끊긴 자리에 이상한 붉은 선이 보일 것만 같았다. 자신이 처음 붉은 이름을 본 이후, 다른 사람을 구한다는 이유로 결정해야 할 순간이 너무 많았다. 이제 누군가는 그 성향까지 이용하고 있었다. 남을 대신 책임지게 하면 현우가 결국 고개를 끄덕일 거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가은이 서류를 밀어 놓았다. “수락하지 않았다는 사실부터 공식으로 남깁시다. 합성 여부를 따지는 동안 적용 시각이 지나면 곤란하니까.”
“거절하면 백도윤의 이름은 어떻게 돼요?”
“그건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의 수락이 없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현우는 자필 진술서를 썼다. '본인은 해당 녹음을 발화하거나 제공한 사실이 없고, 타인의 보존 자료를 일괄 귀속받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가은은 출처가 서로 다른 사본을 함께 봉인하고 관계 기관에 보존·검증 요청을 제출했다. 주영은 일괄 귀속 배치만 분리 정지하고 의료 기록이나 주민의 일상적인 조회가 멈추지 않도록 운영 기관과 협의했다.
그날 오후, 기관 담당자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하군요. 저희는 열두 지역의 실종자 기록을 한 번에 지울 권한을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이 작업은 누가 예약했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옛 민간 보존사업의 유지보수 권한에서 넘어왔어요. 계정 이름은 운영 02입니다. 하지만 그 계정에 사람처럼 서명할 직원은 없어요.”
가은은 옛 사업 계약서를 확인했다. 최종 책임자로 적힌 이름은 '서동재'. 사고 당시에 서른여덟 살이었고, 지금은 퇴직자였다. 남쪽 센터의 마지막 유지보수 계약서에도 같은 사람이 자문자로 서명했다.
“살아 계십니까?”
“확인해야죠.”
현우는 서동재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붉은 표시도 보지 못했다. 바로 그 점이 기묘했다. 모든 것을 움직인 사람의 이름은 평범하게 들렸고, 실종된 사람의 이름에만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저녁 무렵 백도윤의 이름이 다시 나타났다. 숫자 아래에는 이전에 없던 두 항목이 붙었다.
[원본 응답: 미수신]
[대리 응답: 승인 대기]
현우는 눈을 감았다. 본인이 없는 사람에겐 답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붙이면 곧바로 수락이 되는 규칙. 그는 그 구조를 이제 지긋지긋할 만큼 이해했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윤소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무 해 전, 백도윤이 실제로 남긴 목소리가 또 있습니까? 누군가 편집해 쓸 수 없는, 그날 상황에 직접 답하는 목소리요.”
소라는 잠시 말을 잃었다.
“하나 있어요. 다만 그 목소리를 듣기 전에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요.”
“누굽니까?”
“그날 원고를 읽지 말라고 나를 말린 사람. 서동재.”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현우의 붉은 숫자는 한 박자 멈췄다. 그리고 새 문장이 떠올랐다.
[관찰자 동석 필요]
제16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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