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현우는 녹음실에서 두 가지 시간을 재고 있었다.
벽시계의 초침. 그리고 그의 눈에만 보이는 붉은 숫자.
[백도윤 / 46:11:09]
[전달되지 않은 원고 / 46:11:09]
둘은 한순간도 어긋나지 않았다. 주영은 그 말을 듣고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녹음 파일들의 작성 시간을 하나씩 비교했다. 테이프의 길이, 원본 상자의 봉인 날짜, 복제 파일의 해시값, 녹음이 끊긴 지점. 사건을 풀어 줄 마법 같은 숫자는 없었지만 기록의 순서는 변하지 않았다.
“둘을 동시에 바꾸려는 예약 작업이 있다면 같은 시각에 처리되겠죠.” 주영이 말했다. “현우 씨가 본다는 표시의 원인을 제가 설명할 수는 없어도, 비교해 볼 수는 있어요.”
하린은 녹음실 뒤편에 앉아 노래도 아닌 소리를 반복해 들었다. 똑, 똑, 둥. 구역마다 다르게 울렸던 경보의 간격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재생을 멈췄다.
“이거 전화 연결음이 아니야.”
“그럼?”
“어릴 때 선착장에서 들었던 신호야. 배에 타라는 종이 아니라, 물이 차오르니 멀리 물러서라는 종.”
가은이 가까이 다가왔다. “같은 소리라고 확인할 자료는 있습니까?”
“녹음이요. 민서가 모아 둔 지역 행사 비디오에 그 소리가 남아 있어요.”
비디오에는 스무 해 전 남쪽 수로 관리소의 준공식이 찍혀 있었다. 녹음된 세 번의 울림은 테이프의 잡음 속에서도 뚜렷했다. 화면 속 기술자가 안내판을 가리켰다.
'세 번 울리면 중앙선이 아니라 외곽 수로로 대피하십시오.'
현우는 이마를 눌렀다. 서람시의 문을 열라는 신호와 닫으라는 신호가 뒤엉킨 원인이 단순한 불친절한 문장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같은 소리를 두 곳에서 정반대의 뜻으로 사용했다면.
그때 윤소라에게 전화가 왔다. 소라는 낮에 꺼낸 사진을 다시 살피다가 뒷면의 필기 하나를 발견했다고 했다.
'시험 원고 보관 위치: 송출실 바닥 아래, 세 번째 발신음 이후.'
주영이 이문경에게 확인했다. 바닥 아래에는 방수 통신함이 있었고, 북하 방송국 송출실 철거 작업 당시 봉인된 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이동처는 놀랍게도 남쪽 산의 백업센터였다.
“누군가 보관 장소를 따라가도록 남겨 둔 겁니다.” 가은이 말했다.
“아니면 그 장소로 유인하려는 거겠죠.” 현우가 답했다.
가은은 현우를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둘 다 생각합시다.”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리던 중 휴대전화에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백도윤. 내용은 단 여섯 초였다.
'내 이름을 찾지 말고, 네가 들은 세 번째 소리의 방향을 찾아.'
현우는 메시지를 몇 번이고 들었다. 익숙한 목소리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예린에게 이 파일을 들려줄지 고민했지만, 아직 출처가 검증되지 않은 음성으로 딸의 기억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문자를 보냈다.
'당신이 백도윤이라면, 스무 해 전 원고에 없는 마지막 질문을 누가 읽었습니까?'
주영이 눈을 크게 떴다. “답하지 말랬잖아요.”
“명령을 따르겠다는 뜻은 아니야. 검증할 수 있는 질문을 보낸 거지.” 현우도 자신이 조급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잘못했으면 기록하고 멈출게.”
일 분 뒤 답장이 왔다.
'목소리가 아니라, 그때 방 안에 있던 사람의 발을 보십시오.'
현우는 소라가 준 복도 사진을 꺼냈다. 어린아이의 발은 찍히지 않았다. 그러나 사진 하단에 반사된 유리에는 젖은 신발 한 짝과 구두 한 짝이 겹쳐 있었다. 두 사람이었다.
“한 아이가 아니었어.” 현우가 말했다.
가은은 사진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반사인지, 다른 사람의 신발인지 검증해야 해요. 그런데 확인할 곳이 생겼군요.”
새 메시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대신 주영의 노트북에 경고가 떴다.
[남쪽 보관소 출입 예약 변경 / 방문 인원 1명]
누군가 그들의 정식 방문 요청서를 가로채 현우 한 사람만 들어가도록 수정해 둔 것이었다. 누구의 계정으로 수정했는지 표시된 자리에는 낯익은 두 글자가 있었다.
'운영 02'.
제16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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