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산의 길은 지도보다 좁았다.
가은이 운전하는 차량이 마지막 민가를 지나자 포장도로가 끝났다. 늦가을 비가 내린 뒤라 타이어가 젖은 흙을 밟을 때마다 차체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현우는 창밖의 소나무 사이로 오래된 철제 울타리를 찾았다.
폐쇄된 백업센터의 주소는 정확했다. 건물은 없었다. 철거 허가서에 기록된 대로 콘크리트 바닥과 주차장 일부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바닥 한쪽에 새 자물쇠가 달린 계량함이 있었다. 전선은 땅속으로 이어졌다.
“어제도 전력을 썼네요.” 주영이 휴대용 측정기에 표시된 주변 신호를 살펴보며 말했다. “전기 사용 자체는 관리 시설일 수도 있습니다. 불법이라고 단정할 순 없고요.”
현우는 중심부를 향해 걷다가 멈췄다. 바람에 뒤집힌 작은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공사구역 외 출입금지.'
그 아래 붉은 이름이 보였다.
[백도윤 / 60:13:04]
그는 숨을 삼켰다. 이름은 사람 위도 문서 위도 아닌, 흙에 반쯤 파묻힌 안내판 위에 걸려 있었다. 현우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도 그 잔상이 몇 초 따라왔다.
“또 보여요?” 하린이 물었다. 그녀는 이번 현장 조사에 민서의 종이배 사진을 가지고 동행했다.
“이번에는 표지판에.”
가은은 주변 사진을 여러 각도로 찍고, 관리 주체가 확인되기 전에는 울타리를 넘지 않겠다고 정했다. 그때 길 아래에서 경운기 엔진 소리가 올라왔다. 낡은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사과 상자를 싣고 나타났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합니까?”
가은이 신분을 밝히고 관리인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자는 자신을 장태식이라고 소개했다. 인근 과수원 주인이자 계량함 점검을 위해 가끔 부름을 받는 사람이었다.
“건물은 옛날에 다 부쉈는데, 아래 물 빠지는 통로는 남아 있어요. 통로 끝에 통신 장비를 둔다더니 지금도 사람들 발길이 가끔 드나들죠.”
“누가요?”
“정확히는 모릅니다. 작업복 입고 들어오는 사람들이에요. 얼굴은 헬멧 때문에 잘 안 보이고.”
그는 말을 마치고 현우를 빤히 보았다.
“그런데 이 형씨, 전에 여기 온 적 있소?”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태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 오는 날 어린애 하나가 올라왔는데, 눈매가 비슷해서.”
“언제였습니까?”
“한 이십 년 됐나. 그땐 여기도 철거 전이었어. 애가 사람 찾는다며 울지도 않고 서 있더군.”
기억은 세월에 흐려졌다. 태식은 아이의 얼굴도 날짜도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그날 아이가 젖은 종이 한 장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는 것은 기억했다.
민서가 종이배 도장 사진을 보여 주자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 표시, 물길 점검 때 쓰는 겁니다. 점 세 개는 갈림길 세 곳. 가운데 점이 아래로 내려와 있으면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가 아니라, 물이 빠지는 쪽이에요.”
“통로 지도가 있습니까?” 주영이 물었다.
태식은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을 꺼냈다. 수로 작업자의 동선이 손으로 그려져 있었다. 울타리 바깥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오래된 배수문과 점검실이 이어졌다. 현우는 도장이 문을 여는 암호가 아니라, 길을 잘못 들지 말라는 경고였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계곡 쪽으로 이동했을 때 젖은 낙엽 사이에서 하얀 LED 불빛이 깜박였다. 바위 아래 설치된 소형 전원 장치였다. 누군가 새 케이블을 통로 안으로 밀어 넣어 두었다.
장태식은 빛을 보더니 얼굴이 굳었다.
“저건 지난주엔 없었는데.”
가은은 안전선을 넘지 않게 모두를 뒤로 물리고 시설 관리업체에 연락했다. 업체는 전화를 세 차례 돌린 끝에 담당 부서를 밝혔다. 담당자 이름은 박세진. 지금 출장 중이고 현장 출입 허가는 다음 날 처리할 수 있다는 답이었다.
그때 점검실 안에서 낮은 기계음이 났다. 현우에게는 그 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북하 방송국에서 들었던 두 번째 경보와 같은 간격이었다.
둥. ... 둥.
붉은 숫자가 한꺼번에 세 자리 내려갔다가 원래의 속도로 돌아왔다.
“무슨 일입니까?” 가은이 물었다.
“숫자가 뛰었어요. 처음이에요.”
문 안쪽에서 누군가 손전등을 켰다. 빛이 작은 구멍으로 새어 나왔다가 사라졌다. 주영이 카메라를 들었지만 아무 얼굴도 찍히지 않았다.
경찰 지원 인력이 도착할 즈음, 젖은 콘크리트에 놓인 물건 하나가 발견됐다. 방수 주머니였다. 그 안에는 테이프가 아닌 작은 종이 조각이 들어 있었다.
'열세 번째 문은 만들지 말 것.'
아래에 누군가 서둘러 쓴 것 같은 문장이 덧붙었다.
'윤소라가 읽은 원고를 찾아라.'
현우가 문장을 다 읽자 종이 오른편에 작은 붉은 글씨가 피어올랐다.
[수신인: 윤소라 / 확인 실패]
그는 이름을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카운트다운이 붙지 않았다. 대신 지금까지 백도윤의 이름 아래에서 줄어들던 숫자가 잠깐 멎었다.
제16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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