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화면을 끈 뒤에도 백도윤이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현우는 서점 앞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다. 문을 닫고 나온 하린이 그의 얼굴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누가 다쳤어?”
“아직 몰라.”
현우는 휴대전화를 보여 주었다. 하린은 발신자 이름과 세 개의 문장을 읽었지만, 그 위에 겹쳐 있는 붉은 숫자는 보지 못했다. 그녀가 엄지로 화면을 쓸어 내리는 순간 숫자가 손가락을 통과했다.
[백도윤 / 71:56:21]
“그분은 실종된 사람이잖아.” 하린이 말했다. “번호가 살아 있다는 뜻은 아니야.”
“알아. 그런데 내가 보는 건 번호가 아니라 이름이야.”
하린은 그의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너한테 보이는 게 거짓말이라고 하진 않을게. 대신 그게 의미하는 바를 혼자 결정하지 마.”
가은이 도착한 것은 십오 분 뒤였다. 그는 현우에게 스크린샷 원본을 보존하도록 하고, 발신자 표시를 소유자 확인 결과와 구분해 적었다. 주영은 통신사 조회와는 별도로 문자 헤더의 전달 경로를 분석했다. 발신 번호는 오래전에 해지된 것으로 나타났고, 중간 발송 서비스를 거친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백도윤의 이름을 쓸 수 있었다는 사실만 분명했다.
“보낸 사람이 누구냐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주영이 말했다. “문자 발송 직후 사라진 임시 중계 주소가 있어요. 그런데 접속 시간표가 이상합니다.”
“어떻게?”
“북하 방송국의 운영 00 최초 접속 시각과 끝 네 자리가 같습니다.”
가은이 물었다. “증거입니까, 유인책입니까?”
“두 가능성 모두 열어 두겠습니다.”
현우는 서점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을 보았다. 지난번 자신에게 숫자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사진에서 그를 잊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 숫자가 붙었다. 72시간이 다하면 무엇이 없어지는가. 그가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인가, 이미 죽었다면 그를 증명하는 마지막 기록인가.
그때 두 번째 메시지가 왔다.
'남쪽 산의 문이 열리면 첫 번째 목소리를 믿지 마십시오.'
발신자는 같은 이름. 그러나 이번 문자의 마지막에는 이상한 작은 기호가 붙어 있었다. 둥근 원과 그 안의 점 세 개. 현우는 그 문양을 어디서 보았는지 떠올리려 했다.
하린이 먼저 알아보았다. “민서가 갖고 있던 종이배 밑에 찍힌 도장이야.”
서점으로 돌아간 그들은 민서가 서랍에 보관해 두었던 접힌 종이를 펼쳤다. 20년 전 대피소 근처에서 발견된 방수 종이의 복제본이었다. 도장은 같아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점 하나가 조금 아래로 처져 있었다. 주영은 확대 사진을 찍었다.
“완전히 같은 도장이라고 할 순 없어요. 이 기호가 쓰인 다른 자료를 찾아야 합니다.”
현우가 손가락으로 종이 가장자리를 짚는 순간, 희미한 붉은 문구가 솟았다.
[열람 대기 / 수신인 미확정]
숫자는 그 문구에 나타나지 않았다. 현우는 자기가 본 것을 입으로 읽어 주었다. 민서는 종이를 가져가더니 도장 옆의 작은 긁힌 자국을 가리켰다.
“이건 제가 접으면서 생긴 자국이 아니에요. 처음부터 있었어요. 누가 문을 열 때 맞추는 표시처럼.”
가은은 남쪽 산의 폐쇄 백업센터를 지목했다. 주소만 가지고 사유 시설에 무단 진입할 수는 없었다. 우선 관리 주체를 확인하고, 현장 보존을 요청하기로 했다. 주영이 토지대장과 유지보수 계약을 대조하자 철거 완료로 적힌 부지에 최근 전기 기본요금이 청구되고 있었다.
“전기가 들어옵니다.” 주영이 말했다.
“철거된 건물에?” 하린이 물었다.
“계량기가 사용됐다는 뜻이지, 누가 거기 사는지는 아직 몰라요.”
현우는 시계를 확인했다. 붉은 숫자와 손목시계의 초침은 서로 다른 박자로 움직였다. 손목시계는 멈추지 않았지만, 백도윤의 이름 아래 숫자는 사람이 숨 쉬듯 가끔 한 박자 느려졌다.
가은이 수첩을 덮었다. “내일 아침 산으로 갑니다. 오늘 밤엔 백도윤이 보낸 것처럼 보이는 어떤 연락에도 답하지 마세요.”
“그가 정말 살아 있다면요?”
“그러면 더욱, 살아 있는 사람에게 확인할 방법을 찾아야죠.”
새벽 두 시 십일 분, 현우의 휴대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잠결에 들은 음성이 있었다. 서점 안쪽에서 아이가 종이배를 띄우며 하는 말 같았다.
'이름을 보았으면, 문을 열지 마.'
잠에서 깬 현우는 한참 방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통화 기록도 없었다. 다만 책상 위 종이배가 전날과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숫자 아래 새 글자가 나타났다.
[첫 번째 연락은 발신자가 아니다.]
제16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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