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람시가 일요일 아침을 맞을 무렵, 현우는 녹음된 문장을 세 번째 들었다.
'이 아이는 아홉 번째가 아니다. 이름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세면 열 번째다.'
그는 녹음 파일의 재생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앞에 앉은 가은과 주영, 채림은 모두 같은 문장을 들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아이가 누군지 확신하지 못했다.
“숫자가 사람의 순서를 뜻하는지도 모릅니다.” 주영이 말했다. “아홉 번째 목격자와 열 번째 요청처럼, 같은 숫자에 여러 의미가 있었습니다.”
“맞아요.” 가은이 말했다. “현우 씨 자신을 그 아이로 확정하지 마세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난 스무 해 동안 잃어버린 기억의 가장자리에서 작은 감각이 되살아났다. 비가 내려 신발에 물이 차던 밤. 누군가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 줬던 기억. 그리고 어른의 머리 위에 떠 있었던, 설명할 수 없이 선명한 붉은 글씨.
그것이 실제 기억인지, 지금까지 들은 수많은 증언이 만들어 낸 이미지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점심 무렵 이문경이 기록관을 찾아왔다. 그녀는 전날 약속대로 경보 시험 때 작성한 개인 업무 수첩을 가져왔다. 개인 기억과 공식 자료를 섞지 않기 위해 수첩도 별도 출처로 보존하기로 했다.
“아직 남아 있는 걸 모두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한 장이 이상해요.”
수첩의 같은 날짜 두 페이지는 서로 다른 필체였다. 앞쪽은 이문경 자신의 메모, 뒤쪽은 백도윤이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문장이었다. 여백에는 수정 흔적이 없었다.
'오후 7시 12분. 첫 번째 붉은 이름 확인. 표시값은 72시간. 컴퓨터에 연결되지 않은 종이에서도 보임.'
현우의 손이 멈췄다.
“종이에서도 보였다고요?”
“저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어요.” 이문경이 말했다. “도윤 씨가 저한테 자기 눈에는 보인다고 했을 뿐이죠. 그래서 정신없이 일하느라 그런 걸 보는 건 아닌지 걱정했어요.”
“누구 이름이었습니까?”
이문경은 뒤쪽 페이지를 가리켰다. 이름은 없었다. 대신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직접 부르지 말 것. 먼저 본인의 대답을 들을 것.'
현우는 그 문장에 이상한 안도와 낯선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지금까지 그가 얻은 교훈을 스무 해 전 누군가 이미 적어 놓았다는 사실. 하지만 그 사람조차 결국 실종되었다는 사실.
가은이 물었다. “스무 해 전 이 사람을 봤다는 다른 증인이 있습니까?”
이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 있어요. 아직 연락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요. 그때 비상 방송의 시험 원고를 읽었던 성우입니다. 본명은 윤소라. 도윤 씨가 종이에 적힌 이름을 보고 떨었다고 했어요.”
“그 사람은 당시 누구 이름이 적혀 있었는지 봤습니까?”
“아닙니다. 소라 씨가 봤다는 건 도윤 씨가 종이를 놓쳤다는 장면이에요. 이름을 봤다는 말은 도윤 씨 진술이고요.”
현우는 가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서가 하나 더 생겼지만 아직 밝혀진 사실은 아니었다.
그때 주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북하 방송국 자료의 보존 사본을 대상으로 한 비교 결과가 도착했다. 주 서버에서 자동 재작성된 접속 기록과, 이문경의 수첩 및 방송국 테이프의 시각이 서로 달랐다. 그런데 하루 차이 나는 두 사건의 순서는 일치했다.
첫 번째는 경보 사전 시험. 두 번째는 백도윤의 긴급 음성. 세 번째는 운영 02가 대리 승인 규칙을 호출한 흔적. 서람시 사고보다 먼저 바뀐 것은 홍수 예보가 아니라 '대답을 기다리는 규칙'이었다.
“누가 그러라고 했는지는 아직 없죠?” 현우가 물었다.
“아직요. 하지만 규칙 변경을 요청한 장소는 나왔습니다.” 주영이 말했다. “서람시 내부가 아니라, 오래전에 폐쇄됐다는 민간 백업센터예요.”
그는 새로운 지도를 화면에 띄웠다. 대피소가 있던 곳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산자락이었다. 건물은 이미 철거됐다고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까지 유지보수 비용이 지급된 흔적이 있었다.
가은이 자료를 캡처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 계속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겠군요.”
그날 오후, 현우는 혼자 서점에 들렀다. 정민서와 하린이 종이배를 접으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서가 웃으며 물었다.
“이번엔 무슨 이름을 찾았어요?”
“아직 이름은 못 찾았어. 대신 질문 하나를 찾았지.”
그는 빈 종이를 펼쳐 놓고 붉은 연필로 작은 원을 그렸다. 하린이 그 원을 보고 웃었다.
“무슨 표시야?”
“스무 해 전 백도윤이 남긴 표시랑 비슷해. 하지만 같다고는 못 하겠어.”
“그럼 지워 버릴래?”
“아니. 일단 이대로 남겨 둘래.”
하린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자신이 접은 종이배 아래에 조심스럽게 깔았다. 민서는 그 옆에 빈 종이를 하나 더 놓았다. 이름이 없는 공간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도 그 빈칸을 대신 채우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현우는 서점에서 나왔다. 하늘에는 비구름이 두껍게 모여 있었다. 그의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백도윤을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이 찾는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현우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이어 두 번째 문자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라진 사람의 이름은 아무도 볼 수 없어야 하는데.'
마지막 문장은 훨씬 짧았다.
'당신은 왜 아직도 내 이름을 봅니까?'
보낸 사람의 이름이 화면 위에 떠올랐다.
백도윤.
현우는 등골이 식었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도용한 것일 수도 있었다. 기술로 조작한 발신자 표시일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배운 것에 따르면 먼저 출처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휴대전화 화면 위에 다른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그것은 문자 앱의 글자가 아니었다. 사진에도 남지 않고, 자신만 볼 수 있는 이름이었다.
[백도윤 / 72:00:00]
바람이 멎었다.
현우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지 못했다. 세상에 없는 것으로 처리된 사람에게, 이제 막 다시 72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가 정말 살아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로.
제16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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