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두 개가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
어린 이현우는 '찾아오겠다'고 적었다. 성인의 필체로 적힌 이현우는 '완전 폐기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둘 다 하나의 기록으로 묶였다. 사람이 두 번 태어나지 않는 한 성립할 수 없는 문서였다.
"위조라는 말을 쓰려면 원본이 있어야 해요."
윤가은은 서류를 비닐 봉투째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여기는 원본을 바꿀 수 있는 곳이니까, 위조보다 더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방법이 없다는 뜻입니까?"
현우가 묻자 가은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원본 말고 다른 흔적을 찾자는 뜻이에요. 이 두 문장을 작성한 사람이 서로 달랐다는 걸 보여 줄 흔적요."
서태경이 갑자기 종이 팔찌를 움켜쥐었다. 빈 칸 사이에서 검은 잉크 한 방울이 맺혔다.
"여섯 명이 있었어요."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아이들이 일곱이 아니라 여섯이었단 뜻이 아니에요. 일곱 명을 보호하는 어른이 여섯 명 있었어요. 선생이 하나, 간호사가 둘, 기록 담당이 셋. 나는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기억이 돌아온 겁니까?"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보니까 조금씩요. 검은 잉크 냄새가 나니까."
그는 팔찌를 풀었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종이가 순순히 떨어졌다. 안쪽에 아주 작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보관자 06.'
태경은 그 숫자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난 이름을 지우는 직원이 아니라, 지워진 사람이 돌아올 때 확인하는 직원이었군요."
***
노파는 일곱 아이의 공책과 서류를 나란히 펼쳤다. 첫 번째 아이는 사고로 가족 전체의 기억에서 빠졌고, 두 번째는 이사를 간 사이 주소가 지도에서 사라졌다고 적혀 있었다. 세 번째는 출생 기록이 두 개여서 어느 쪽도 본인임을 증명하지 못했다. 네 번째부터는 상태가 더 복잡했다. 부모가 죽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알아보지 못하게 된 아이였다.
"이 애들은 다 같은 이유로 모인 게 아니에요."
현우가 말했다.
"그래. 그래서 같은 방법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었지."
노파가 답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아이는 아주 특별했어. 이름을 불러도 다음 날이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거든. 심지어 사진도, 일기도 그 아이 부분만 빈칸이 됐어."
하린이 공책을 내려다봤다.
"그래서 제가 늘 혼자였어요."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어."
태경이 말했다.
"누가 매일 아침 너를 다시 찾아냈어요."
"누구요?"
태경은 현우를 봤다.
"이 애요. 어린 현우요."
현우는 침묵했다. 좋은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뻐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을 관리자라고 부르는 기록을 의심하던 그에게 과거의 선행은 또 다른 의무처럼 느껴졌다. 그가 한 일을 모르는데, 그 일의 대가만 떠안아야 했다.
"그때 전 몇 살이었죠?"
"열 살 아니면 열한 살쯤. 보관자 중 한 사람이 데려온 아이였어. 기록을 쓸 때 글씨를 아주 정성껏 썼지. 마치 한 글자만 틀려도 누군가를 잃을 것처럼."
"왜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애한테 시켰어요?"
가은이 물었다.
그 질문에 서류철을 넘기던 노파의 손이 멈췄다.
"아이에게는 관리자 권한을 줄 수 없어야 했어. 그런데 그 아이는 들어가는 문을 혼자 열 수 있었지. 이유는 나도 몰라. 어른들은 그 능력을 이용했어."
가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누군가 미성년자를 이용해서 권한을 빼앗았다는 말이군요."
"그렇게 들으니 더 분명해지는구나."
서류철 가운데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표가 있었다. '보호자 연락망'이라는 제목 아래 일곱 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보호자 이름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 그 대신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침 여덟 시에 전화를 기다림.'
'실종 신고 접수 여부 확인 중.'
'사진 속에 있던 아이를 찾는 어머니.'
가은은 세 번째 줄에서 손을 멈췄다. 아이가 사라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익숙한 형사에게도, 아이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보호자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는 어려운 문제였다.
"이 사람들은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노파가 대답했다.
"아이를 잃었다는 기억이 없었으니까. 빈 방을 봐도 원래 창고였다고 믿었지. 그런데 며칠 뒤에 어떤 어머니가 우연히 벽지에 키를 재던 눈금을 봤어. 이유 없이 울고 또 울었지. 그걸 신고했어. 아이 실종이 아니라, 집에 있어서는 안 될 빈방이 있다고."
"그분은 어떻게 됐죠?"
"우리 직원들이 만나러 갔어. 확인한 뒤에는 아이에 관한 흔적이 더 사라졌고.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지."
현우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관리 시스템이 처음에는 도움을 주려고 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해서 결과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기록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사자에게 설명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아이들을 보호한다고 누가 정했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노파는 손등의 주름을 문질렀다.
"처음에는 가족을 찾을 때까지만이었어. 한 달, 두 달, 길어야 일 년. 그런데 찾는 과정 자체가 불일치를 늘린다고 위에서 판단했지. 그래서 보호 기간이 끝나는 날짜가 점점 뒤로 밀렸어."
태경은 자신이 적힌 옛 업무 일지를 찾았다. 그 안에는 수십 차례 같은 문장이 반복돼 있었다.
'반환 가능성 판단 유보. 본인 의사 확인 필요.'
"나는 사람들이 돌아가는 걸 막은 게 아니었습니다. 돌아갈 조건을 확보할 때까지 장부를 닫지 않으려고 했군요."
태경은 그 말을 하고 한참 서류를 들여다봤다. 이제까지 자신의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죄책감처럼 안고 살았는데, 옛날의 자신이 누군가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기록을 보자 기뻐할 수도, 안심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한 번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현우가 그의 옆에 앉았다.
"오늘은 다르게 할 수 있잖아요."
태경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은 어떤 마법 같은 능력도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처음으로 과거를 뒤집는 대신 앞으로 나아갈 이유가 됐다.
***
하린이 소은에게 물었다.
"언니는 내가 여기서 울었던 거 기억해?"
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아침마다 '오늘은 내가 먼저 이름을 말할게' 하고 인사했어. 그러고는 나한테 어제 무엇을 했는지 물었지."
"난 기억 못 하는데."
"괜찮아. 내가 기억해."
소은은 말하다가 스스로 그 문장의 무게를 깨달은 듯 잠시 멈췄다.
"그런데 지금까지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네 잘못인 줄 알았어. 역에 있을 때는 내가 나빠서 다들 잊는다고 생각했거든."
하린은 소은의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의 몸에는 이십 년이란 시간 차이가 있었다. 한 명은 성장했고, 다른 한 명은 어딘가에 멈춰 있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우는 아이들의 조용한 대화를 방해하지 않았다.
"언니 이름은 누가 지어 줬어?"
하린이 물었다.
"우리 엄마가."
"그럼 나도 누가 지어 줬겠지?"
"그럼."
"왜 하필 민하린일까?"
소은이 웃었다.
"그것도 네가 찾아봐야 할 일이겠지."
현우는 그 말을 듣고 공책 표지를 다시 봤다. 처음부터 하린은 자기 이름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스템은 그 이름으로 삭제 명령을 만들었다. 이름이 보호 대상의 본명이 아니라 누군가 붙여 준 임시 이름이라면, 명령 자체가 잘못된 사람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었다.
***
태경은 한때 기록 관리 업무를 했던 사람답게 서류에 붙은 작은 분류 표시를 발견했다.
'제7보호, 가등록.'
"가등록이라면 정식 등록 전 신원 검증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정식 등록이 없어요."
"그 말은……"
"삭제 대상이라고 적힌 민하린은 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하린이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가짜일지 모른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현우는 곧바로 말했다.
"네가 가짜라는 뜻은 아니야. 문서가 너를 제대로 가리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럼 누군가 내 이름을 도용한 거예요?"
가은은 소녀의 질문에 쉽사리 답하지 않았다.
"확인해야 해. 이름은 사람에게 붙는 말이지만, 기록에는 실수도 있을 수 있으니까."
서고 맨 아래쪽에는 이름이 붙지 않은 얇은 봉투 하나가 있었다. 하린이 손을 대자 종이가 살짝 따뜻해졌다. 봉투 안에는 초등학생 크기의 그림 한 장이 있었다. 작은 책상 일곱 개, 붉은 우산 하나, 그리고 교실 문 앞에 서 있는 키 큰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큰 사람의 얼굴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 옆에 어린 글씨로 적혀 있었다.
'모르는 어른이 현우 얼굴을 하고 와요.'
현우는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에도 문장이 있었다.
'그 어른은 우리가 진짜 이름을 말할 때만 화가 나요.'
"그러니까 이름을 가르치면 안 되는 게 아니었네."
하린이 속삭였다.
"진짜 이름을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
노파는 침묵을 깨고 서랍을 열었다. 작은 놋쇠 종 하나가 나왔다.
"원래 여기서 '증인 호출'에 쓰던 종이야. 이걸 울리면 그때 학교에 있던 사람에게 확인 요청이 가. 대답할지는 각자가 정하지만."
"다 살아 있나요?"
가은이 물었다.
"모르지. 기억에서 지워졌어도 살아 있을 수 있고, 기록에 남아 있어도 이미 죽었을 수 있으니까."
가은은 종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함부로 울렸다가 사람들을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대신 먼저 서류철을 복사하고, 증인들에게 무엇을 물을지 정하자고 했다.
현우는 그 틈에 하린의 숫자를 확인했다.
[민하린 / 32:18:06]
소은의 숫자는 더 빨리 줄어들고 있었다.
[윤소은 / 15:29:12]
그때 서고 천장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아무도 종을 건드리지 않았다.
[증인 호출 완료]
[요청자: 관리자 02]
노파가 얼굴을 창백하게 굳혔다.
"우리가 부르기 전에 저쪽에서 먼저 불렀어."
벽에 매달린 수십 장의 영수증이 일제히 뒤집혔다. 뒷면에는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일곱 번째 아이의 신원은 오늘 자정까지 확정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 또 하나의 조건이 나타났다.
'확정 실패 시 증인 전원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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