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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58화
PAYLUA ORIGINAL · 제158화

158화. 거절하는 사람의 권리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108자

오프라인 책장
예린의 편지는 기술자 백도윤이 남긴 어떤 설계도보다 간단했다. 그러나 그 문장을 누구에게 제출할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 복잡한 문제가 생겼다. “제 편지가 증거가 되나요?” 예린이 물었다. “작성 시기와 필적을 확인하면 과거에 그런 글을 남겼다는 사실은 증명할 수 있겠죠.” 가은이 말했다. “하지만 편지에 적힌 말이 곧 현재 예린 씨의 의사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 이름으로 어떤 것도 승인하지 않을래요. 적어도 오늘은요.” 현우는 그 말에 안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두려웠다. 붉은 숫자는 열여덟 시간도 남지 않았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손끝까지 차올랐다. “현우 씨.” 가은이 그를 불렀다. “그 표정, 알아요.” “시간이 없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당사자가 거절한 걸 거절로 남기고 있죠.” 현우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주영은 서버의 변경 이력을 조사해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과거 '보존 대기자'라는 항목이 현재 시스템에선 '자동 보호 동의자'로 변환되어 있었다. 원본에서는 이름이 확인되지 않을 때 기다리는 칸이었지만, 현재는 본인 확인이 안 되면 가족을 대신 승인자로 등록하는 기능처럼 작동했다. “이게 운영 02의 역할이었어요.” 주영이 말했다. “정식 사용자 계정이라기보다, 다른 시스템이 처리 못 한 빈칸을 메우는 자동 규칙 집합이에요. 그러나 누가 그런 규칙을 만들고 계속 유지했는지는 따로 찾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 눈앞의 적은 한 명이 아니라, 그런 결정을 편하게 만들어 놓은 과정일 수도 있겠네요.” 하린이 영상 통화에서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주영이 대답했다. 문제는 예린의 상황이었다. 백도윤이 과거 시스템에서 보호 대상처럼 취급된 기록이 있었다. 그가 사라지자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승인 요청'이라는 자동 절차가 생성됐다. 예린이 아버지의 기록을 찾으려 로그인한 순간, 시스템은 그녀를 새로운 대리 승인자로 지목했다. “제가 아버지를 찾은 게 잘못인가요?” 예린이 물었다. “아니요.” 현우는 즉시 대답했다. “그걸 동의라고 해석한 기록이 잘못된 거예요.” 그날 밤 가은은 예린의 명시적 의사에 따라 '자동 승인 의사 없음'을 접수했다. 동시에 관련 원본 보존 요청을 제출했다. 주영은 기록 처리 기관과 함께 이미 예약된 잘못된 효력 변경만 일시 중지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 생활 서비스에 필요한 일반 조회까지 끊어 버리면 예린 같은 사람에게 더 큰 피해가 돌아갈 수 있었다. 현우는 기다리는 동안 기록관의 뒤뜰로 나갔다. 새벽 기운이 내려앉아 있었다. 입김이 희게 나왔다. 담장 너머로 도시의 작은 불빛들이 흔들렸다. 그때 하린이 문을 열고 나왔다. “네가 또 떠안을까 봐 왔어.” “무얼?” “다른 사람의 시간을.” 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린은 그와 나란히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에 나는 내 이름이 없어서 정말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된 줄 알았어. 그러다 누가 내 이름을 찾아 준다고 하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이름을 붙이려고도 했지.” “기억해.” “넌 그걸 막으려고 했고. 하지만 그때도 난 네가 대신 모든 결정을 하는 건 싫었어.” 현우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지금도 그래?” “지금은 네가 물어보잖아. 그래서 함께할 수 있어.” 동이 트기 직전, 주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부 예약 작업을 분리해 임시 중지하는 조치가 승인됐다. 그러나 이미 밤새 재작성된 기록 하나가 다른 지역으로 복제되었다고 했다. “어떤 기록인데요?” 현우가 물었다. 주영의 목소리가 뻣뻣했다. “백도윤 씨 실종 접수 이력이에요. 원본엔 '가족 신고로 접수'인데, 복제본엔 '본인 자진 철회'로 바뀌어 있습니다.” “본인이 실종 신고를 철회했다고요?” “그런 이상한 문구가 실제로 있어요. 시스템이 같은 이름의 두 주체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현우의 눈에 예린의 이름이 다시 나타났다. 붉은 숫자는 두 시간 남짓. 그는 이번에는 숫자보다 아래의 글씨를 먼저 읽었다. [기억의 연결이 끊기는 시각] 처음으로 숫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말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마저 현우 한 사람이 본 문장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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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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