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출실의 스피커는 전원선이 뽑혀 있었다.
가은은 바닥에 늘어진 검은 케이블을 발끝으로 가리켰다. “저기서 소리가 날 수 있나요?”
자료관 담당자가 스피커 뒤쪽을 살펴보더니 벽에 붙은 작은 통신함을 가리켰다. “별도 비상 회선이 남아 있습니다. 경보 장비가 꺼져도 비상 신호만 받을 수 있도록 해 둔 것 같아요. 다만 현재 정상 작동 중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딸깍.
두 번째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모두가 들었다. 작은 전구가 켜졌다가 꺼졌고, 송출실의 공기에서 오래된 먼지가 흔들렸다.
주영의 전화기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ORIGIN_00 접근 로그 재작성 완료]
[변경 후 최초 사용자: 운영 02]
[변경 사유: 중복 식별값 정리]
“운영 00을 만들었던 접속 기록을 통째로 02의 접속으로 바꿨군요.” 주영의 목소리가 굳었다.
“그럼 이문경 기사님 기록도 사라진 거예요?” 하린이 물었다.
“주 서버의 조회 화면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다행히 바깥에 남은 장부와 봉인된 자료는 별개입니다.”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송출실 벽을 손으로 짚었다. 현장을 둘러싼 수십 년의 흔적 가운데 한 줄의 글씨만 바꾸어도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를 믿게 된다. 이 시스템이 가장 무서운 것은 실제로 사람을 지워 버리는 힘이 있는지 여부보다, 남은 사람들이 무엇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할지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주영이었다.
“현우 씨, 서람시에 문제가 생겼어요. 실종 신고 센터에 온 사람의 가족 사진에서 한 사람이 빠졌다고 합니다.”
현우는 숨이 막혔다. “파일이 바뀐 건가요?”
“원본 인화지에도 사람이 안 보인다고 주장해요. 아직 진짜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본인도 사진을 들고 와 달라고 했어요.”
가은이 무전으로 담당 경찰관에게 상황을 확인했다. 민원인은 한예린이라는 여성이었다. 어머니가 남긴 가족사진의 한쪽 자리가 비어 버렸다고 말했다. 가은은 사진 상태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고, 민원인의 진술을 별도로 받도록 했다.
현우는 주영이 보낸 메모에서 이름을 보았다.
'한예린 / 실종 신고 대상: 부친.'
그 이름 위로 붉은 글씨가 번졌다.
[한예린 / 24:00:00]
“또 시작됐어요.” 현우가 말했다.
“예린 씨에게요?” 가은이 물었다.
“네. 그런데 이번에는 시스템 변경을 지켜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스물네 시간만 남았어요.”
“그럼 오늘 바로 만나야겠네요. 위험하다고 단정하지 말고, 불안하게 만드는 정보를 먼저 확인하죠.”
현우는 이를 악물었다. 72시간이라는 규칙만을 믿고 살아온 자신에게 스물네 시간은 불길한 예외였다. 예고가 사람의 죽음도, 정해진 실종 시각도 아니라면 그 숫자는 무엇을 세는 걸까.
북하 방송국을 떠나려는 순간 이문경에게서 전화가 왔다.
“백도윤이 남긴 별도 메모를 찾았어요. 장비 목록에 끼워져 있었어요.”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두 번째 종이 울리면, 첫 번째 응답자는 이름을 잃는다.'”
현우는 뒤를 돌아봤다. 소리를 낸 스피커는 말없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가은이 휴대전화를 내렸다. “누군가 우리를 겁주려고 만든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예린 씨를 만나죠.”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으로, 붉은 예고가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 누군가의 기억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현우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첫 번째 응답자.'
백도윤의 설계도에서 세 번째 자리는 끝까지 비어 있었다. 그렇다면 한예린이 그 자리에 들어가도록 누군가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15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