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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55화
PAYLUA ORIGINAL · 제155화

155화. 목소리가 남은 방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489자

오프라인 책장
옛 북하 방송국은 강변 도로와 철로 사이에 있었다. 방송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건물은 작았고, 간판에는 이미 다른 업체의 상호가 붙어 있었다. 현우는 생각보다 평범한 광경에 잠시 당황했다. 스무 해 동안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비밀이라면 좀 더 거대한 문 뒤에 있을 줄 알았다. 건물 관리인은 가은의 신분과 문의 목적을 확인한 뒤 임대차 기록을 보여 줬다. 지하 송출실은 몇 해 전부터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오래된 방송 장비 일부는 지역 자료관에 이관됐고, 남은 것들은 폐기 대기 중이었다. “도윤이라는 분이 이 건물을 썼습니까?” 현우가 물었다. 관리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몰라요. 저는 십 년 전에 들어왔습니다. 다만 옛 방송 테이프를 찾는 분들은 가끔 계시죠.” 채림은 지하 출입과 자료 목록 열람 허가를 받은 뒤 기록관으로부터 파견된 직원과 함께 내려갔다. 손전등 불빛이 계단 벽의 오래된 빗물 자국을 훑었다. 송출실에는 기계식 편집대가 한 대 남아 있었다. 주영은 장비에 손대지 않고 명판을 촬영했다. “이건 당시 경보 시험 음성을 녹음하던 장치예요. 재생하려면 장비 안전 점검부터 해야 합니다.” 현우는 반쯤 열려 있는 서랍을 보았다. 손잡이에는 흰색 종이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00 / 사람이 말한 것은 지우지 말 것.' 서랍 안에는 소형 카세트 세 개와 종이 목록이 들어 있었다. 첫 번째는 경보 시험, 두 번째는 현장 연결, 세 번째는 '응답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채림은 관리인과 함께 발견 상태를 기록하고 자료관의 이관 절차를 문의했다. “응답 없음도 기록입니까?” 하린이 물었다. 그녀는 현장에 오지 않고 영상 통화로 참여했다. 화면 속 그녀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렇죠.” 채림이 말했다. “누군가 대답하지 않았다는 건, 대신 대답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니까요.” 하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름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았던 자신에게 그 설명은 낯설지 않았다. 음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건 두 시간 뒤였다. 자료관 담당자가 소형 카세트의 상태를 점검하고 보존용 사본을 만드는 동안, 현우는 복도 끝 벤치에서 가은을 기다렸다. 붉은 숫자는 두 시간 조금 넘게 남았다. “혹시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일까요?” 그가 물었다. “백도윤이요?” “네. 내가 보는 게 그 사람에게도 보였다면… 그 사람은 왜 사라졌을까요?” “그 질문은 우리가 답을 알아낼 때까지 그냥 질문으로 남겨 두죠.” 현우는 벤치의 갈라진 나무 결을 만졌다. 그동안 이름을 보자마자 결말을 추측했던 습관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가은과 함께 사건을 좇는 동안 그가 가장 많이 배운 건 추측을 미루는 일이었다. 첫 번째 테이프에는 바람 소리와 여자 목소리가 있었다. '경보 시험 시작. 관측실 이문경. 현재 다섯 시 사십 분. 상황 전파용 시험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곧이어 짧은 벨이 울렸다. 그것은 경보가 아니라 시험 신호였다. 두 번째 테이프에는 남자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숨을 고르는 소리, 종이를 펼치는 소리,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 '여기는 백도윤. 사람들이 남긴 거절을 시스템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프로그램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단지 보존하는 장치입니다.' 현우는 숨을 죽였다. '누군가 운영 02라는 이름으로 보존된 답을 수정했습니다. 수정 권한은 원래 없습니다. 접속 권한을 빌려 쓰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잠깐 테이프가 끊긴 것처럼 고요했다. '만약 이 음성을 듣는 사람이 있다면, 운영 00을 찾지 마십시오. 운영 00은 사람을 대신해서 책임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처음 거절했던 사람의 답을 찾으십시오.' 주영이 녹음 목록을 살폈다. 녹음 날짜는 사고 전날 저녁이었다. 현우는 눈을 감았다. 경고는 사고 전에 있었고, 프로그램의 잘못도 사고 전에 시작된 듯했다. 마지막 테이프에는 처음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십 초, 이십 초. 채림은 장비 고장이 아닌지 확인했지만 녹음 신호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아요.' 현우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어디선가 그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스무 해 전 아이의 목소리와 지금의 사람을 연결할 근거는 없었다. 이어 어른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럼 이름을 적지 않겠다. 여기서 기다릴 수 있어.' 테이프 끝에서 기계음이 짧게 울렸다. 그 순간 현우의 눈에 보였던 붉은 숫자가 사라졌다. 대신 송출실 문 위로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접속 원본 변경 완료] 주영의 휴대전화에서도 경고음이 났다. 기록관의 주 서버가 자동 갱신을 실행했다는 통지였다. “늦었어요.” 현우가 말했다. 주영은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리에게 아직 변경 전 사본이 남아 있어요. 문제는 변경된 내용이 뭔지입니다.” 그때 송출실의 오래된 스피커가 전원도 연결되지 않은 채 가늘게 울렸다. 딸깍. 현우만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곁에 있던 가은도 고개를 들었다. “방금… 누가 스위치를 눌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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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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