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제0기록실의 문을 닫기 직전에 한 노인이 찾아왔다.
우산을 접지도 않은 채 물이 떨어지는 현관 앞에 선 사람은 자신을 유정안이라고 소개했다. 스무 해 전 이 건물의 야간 기록 보조원이었다. 가은이 신원을 확인하는 동안 노인은 두꺼운 고무줄로 묶은 수첩을 꺼냈다.
“기록실이 다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왜 지금까지 연락하지 않으셨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누가 제 말을 들을지 몰랐습니다. 들을 때마다 다른 서류로 만들었거든요.”
그는 따뜻한 차를 받자마자 첫 장을 펼쳤다. 종이에는 펌프 모터 가동 시간과 수위, 야간 출입 인원 같은 평범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그 사이에 빨간 볼펜으로 밑줄 친 문장이 보였다.
'00:13, 아이의 편지 열람 보류. 다음 근무자에게 인계.'
“열 번째 요청을 아세요?” 현우가 물었다.
정안은 한참 손등을 바라봤다.
“그날 접수대에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일을 끝내고 싶어 했고, 다른 하나는 끝내지 말자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누구였죠?”
“이름을 말하면 그 이름 하나로 사건이 정리될까 봐 두렵습니다. 우선 제가 직접 본 것부터 말하겠습니다.”
정안은 홍수로 대피소가 혼잡했던 밤을 설명했다. 아이의 이름과 보호자를 확정하지 못한 채 임시 시설을 옮겨야 했다. 한 직원은 빈칸을 남기면 지원금을 신청할 수 없다며 대리 보호자를 지정하자고 했다. 다른 직원은 아이가 '기다리겠다'고 대답했으니 그 뜻이 확인될 때까지 이름을 채우지 말아야 한다고 반대했다.
“누가 열 번째 요청서를 썼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접수한 사람은 저입니다.”
모두가 말을 멈췄다.
정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작성한 사람과 접수한 사람은 다릅니다. 요청 문구는 상담사가 읽어 줬어요. 저는 그대로 받아 적었습니다. 서명 칸은 비어 있었고요.”
“왜요?”
“아이가 나중에 직접 말할 수 있도록 남겨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요청서인데 신청자 서명이 없다니. 지금 생각하면 그게 핵심이었죠.”
“그때 아이는 말을 아주 작게 했습니다.” 정안이 덧붙였다. “한 번에 못 알아들었어요. 그래서 상담사가 두 번 물었습니다. 기다리겠다고 말한 게 맞느냐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고는 다시 또박또박 말했어요. '내일도 기다릴래요.'”
정안의 목소리가 잠겼다. 그는 한동안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못했다. 보호자를 지정해야 물과 약, 숙소를 줄 수 있다는 사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정이 아이의 대답을 바꿀 이유는 아니라는 말 앞에서 모두가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그날 상담사가 그러더군요. 내일이 오기 전에 이 아이의 답을 없애지 말자고요. 저는 그 말이 일의 절차를 어렵게 만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정안은 수첩 뒤쪽에서 오래된 열쇠 두 개를 꺼냈다. 하나에는 '열람'이, 다른 하나에는 '보관'이 쓰여 있었다.
“기록실 문에는 열쇠가 두 개 있었습니다. 열람 열쇠를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사본을 만들 수 없도록, 원본 보관함은 다른 사람이 열게 했어요.”
“다른 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그분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직무 기록만 남기고 싶습니다. 사생활까지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아요.”
채림은 열쇠를 물건으로 인수하기 전에 그것이 실제 어떤 자물쇠에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낡은 자물쇠를 억지로 열면 원본 봉인이 훼손될 수 있었다.
정안은 순순히 동의했다. 다만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증언서 마지막에 한 문장을 직접 추가했다.
'나는 원본의 보류를 최종 승인으로 옮기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
현우는 그 글씨를 오래 보았다. 붉게 변하지 않았다. 거부의 문장이 제 목소리로 남아 있었다.
정안이 일어서려 할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그는 화면을 읽고 얼굴이 굳었다.
[과거 접수 보조원의 확인 누락을 정정해 주십시오. 미응답 시 개인 책임으로 확정됩니다.]
정안이 말했다.
“스무 해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습니다. 사인을 안 하면 네 책임이라고요.”
그는 처음으로 떨리는 손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선택을 없애지는 않겠습니다.”
제147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