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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40화
PAYLUA ORIGINAL · 제140화

140화. 기다리는 사람의 이름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251자

오프라인 책장
현우는 서점 창가에 한참 서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었다. 햇빛이 책등 위에 길게 드리웠다. 그는 수첩의 마지막 문장을 계속 떠올렸다. 아홉 번째로 남긴 목격자. 스무 해 전 현우 자신이 어쩌다가 그 순번을 갖게 됐는지, 그때 누가 자신의 이름을 적었는지 그는 여러 사건을 거치며 조금씩 알아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전달되지 않은 말이 있다니. “당장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요?” 가은이 물었다. “그러고 싶죠.” “하지만 그 말이 현우 씨에게 전달되도록 허락받은 건지부터 봐야 해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만은 예외를 적용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너무 쉽게 열어 본 적이 있었다. 자신에게 시간을 보여 주는 능력이 생긴 뒤로 남의 선택까지 먼저 판단하려 했다. 지금은 조금 달랐다. 상담사는 서점 안쪽에서 다시 나왔다. 그녀는 두 사람 앞에 작은 봉투를 내려놓았다. “아이의 이름을 찾으려고 이걸 만든 게 아닙니다. 그때 기록의 앞뒤가 바뀌지 않도록 했어요.” 봉투 안에는 수첩의 마지막 장을 복제한 종이와, 나중에 덧붙인 작은 쪽지가 있었다. 뒤의 쪽지는 최근에 작성됐다. '스무 해 전 남은 아이는 현재 자신의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예전 기록과 연결되는 공개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시의 선택을 목격한 이에게 사실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기로 동의했습니다.' 현우는 그 문장을 읽고 오래 침묵했다. 누군가 살아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안도했다. 자신이 찾아 헤맨 이름이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을 앞세울 수는 없었다. “그 사람에게 전해 주세요.” 현우가 말했다. “그때의 선택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요.” 상담사는 가볍게 웃었다. “그 말은 전할게요.” *** 선희의 기록 정정은 정식 검토 단계로 넘어갔다. 오류가 발생한 병원과 통신사의 본인 확인 이력은 임시 조치로 정상화됐고, '대리 서명 완료'라는 잘못된 문구는 원본과 분리되어 더 이상 당사자의 동의 증거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최종 결과는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선희는 다음 주 병원 예약표를 자신의 이름으로 받아 들었다. 가은은 조사 경과를 선희에게 직접 설명했다. “이제 제가 왜 그날 시계를 멈췄는지 알겠죠?” 선희가 물었다. “열 시 십삼 분에 아이가 기다리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죠.” “맞아요. 아이가 말을 안 했던 시각이 아니라, 스스로 대답한 시각이에요. 그걸 남기고 싶었어요.” 선희는 오랫동안 멈춰 있던 손목시계를 수리점에 맡겼다. 나흘 뒤 시계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바늘을 현재 시각으로 맞췄다. 열 시 십삼 분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긴 게 아니었다. 이제는 그때부터 흘러간 시간을 다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 민서는 서점에서 돌아온 뒤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았다. 하린이 그녀 곁에 와서 앉았다. 두 사람은 종이배를 접었다. 민서가 만든 배는 뱃머리가 조금 기울었고, 하린의 것은 접힌 선이 정확했다. “그 아이를 찾았는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이상할까?” 민서가 물었다. “찾았으니까 그렇겠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못 봤는데?” “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았잖아.” 민서는 종이배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 아이가 무엇을 선택했든 자신이 대신 답할 수는 없다는 걸 이제 알았다. 대신 기다릴 수는 있었다. “나는 답장이 없어도 괜찮아.” 민서가 말했다. 하린이 말했다. “괜찮은 척 안 해도 돼. 답장을 받고 싶은 마음도 네 거니까.” 민서는 웃다가 울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종이배를 나란히 놓아두었다. *** 현우에게는 아직 마지막 일이 남아 있었다. 13번 의자와 비옷, 수첩, 그리고 3호 버스의 서로 다른 승차 기록을 하나의 표로 묶되, 그 표가 다시 누군가의 이름을 멋대로 합치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는 각 사건의 확인된 사실과 알 수 없는 부분을 따로 적었다. [정민서: 먼저 하차했다는 증언 확인. 현재 이름과 생활 존중.] [13번 대기자: 당시 직접 의사 표명 확인. 현재 신원 비공개 요청 존중.] [최종 승차 확인자: 진술과 독립 원본 존재. 역할 확인, 공개 범위는 별도 동의.] [오선희: 대리 승인자가 아니라 거부 사실 확인자. 잘못된 연결 분리 조치.] 그가 정리한 마지막 줄은 짧았다. '누가 누구였는지보다, 누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먼저 기록할 것.' 가은이 그 줄을 읽고 말했다. “이제 다음 사건에서도 그 원칙을 지켜야겠네요.” 현우는 창밖을 바라봤다. 한동안 붉은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한 평화가 느껴졌다. 해가 진 뒤 주영의 전화가 걸려 왔다. “현우 씨, 이상한 걸 하나 찾았어요.” “또 누가 삭제 대상이 됐어요?” “아니에요. 이번에는 반대예요. 우리가 처음부터 잘못 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영이 보낸 화면에는 스무 해 전의 수기 등록 순번이 있었다. 제0구역에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이 01부터 09까지 차례로 쓰여 있었다. 그러나 09 뒤에 붙어 있어야 할 종이 한 장이 없어져 있었다. 대신 기록 표지에 작은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10 / 이송 기록 없음 / 접수 사실만 보존] “열 번째 사람입니까?” 현우가 물었다.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다른 색 잉크로 정정돼 있어요.” 주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인원 10'이 아니라 '열 번째 요청'이었어요. 요청을 남긴 사람이 누구인지는 비어 있고요.” 현우는 화면을 확대했다. 그 아래 다른 사람이 써 넣은 문장이 있었다. '제0구역의 보호 규칙을 바꾼 것은 열 번째 요청부터였다.' 그때 현우의 시야 가장자리에 오랜만에 붉은 글씨가 나타났다. 사람의 머리 위가 아니었다. 주영이 보내온 오래된 문서의 마지막 줄 위였다. 글씨는 금세 사라져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현우가 알고 있던 능력의 규칙과 달랐다. 이름이 아니라 문서에 붉은 예고가 뜨다니. 그는 급히 화면을 캡처했지만, 저장된 이미지에는 붉은 글씨가 없었다. “주영 씨. 그 표지의 원본은 어디 있습니까?” 주영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예요. 표지에는 보존 기관이 적혀 있는데, 현재 지도와 기관 목록 어디에도 없어요.” “이름이 뭔데요?” “서람시 북쪽, 제0기록실.” 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이름이 사라지는 사람들을 따라 남쪽까지 내려온 끝에, 이번에는 존재한 적 없다고 처리된 건물의 이름을 마주하게 됐다. 서람시의 밤은 평온했다. 하지만 평온함은 언제나 끝이 아니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현우는 수첩을 펼쳤다. '다음에는 이름이 아니라 최초의 요청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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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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