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통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방수 비닐을 걷어 내자 손바닥 크기의 철제 도시락통이 모습을 드러냈다. 뚜껑을 열기 위해 사용한 열쇠는 새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보존소에 있던 의료 물품 상자의 바닥에서 함께 발견한 작은 열쇠가 홈에 꼭 맞았다.
“누가 하나를 열면 다른 것도 찾게끔 해 둔 거네요.” 주영이 말했다.
“우연일 수도 있어.” 가은이 대답했다. “하지만 기록이 분리된 경위는 확인해 볼 만해.”
통 안에는 접힌 승차확인표와 작은 필름 케이스가 있었다. 날짜가 같은 표는 두 장이었다. 한 장에는 3호 버스의 귀환 시각, 다른 장에는 이동 진료 지원반의 환자 이송 시각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승차자 수가 달랐다.
[3호 버스 / 인계 당시 탑승 인원 2]
[이동 진료 지원차 / 인계 당시 탑승 인원 1]
숫자를 그대로 더하면 사람은 셋이었다. 그러나 며칠 뒤 만든 전산 정리본에는 '대상자 1명 / 동일인 확인'이라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셋이 한 명이 됐군요.” 현우가 말했다.
“확정된 내용은 아니에요.” 주영이 표의 하단을 가리켰다. “탑승 인원이 환자만 뜻하는지 동승 직원까지 포함하는지도 다르거든요. 하지만 동일인으로 합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 근거가 없어요.”
필름 케이스를 열기 전에 주영은 보존 담당자에게 전문 장비로 촬영할 것을 요청했다. 하루 뒤 확인한 영상에는 빗속에서 문이 열린 차량의 옆모습이 있었다. 의료용 승합차였다. 차문 옆에는 노란 비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옆으로 더 작은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리고 프레임 마지막에, 차에서 내리는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이 잠깐 나타났다.
“이 사람은?” 현우가 물었다.
가은은 얼굴을 확대하되 사람을 단정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긴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노란 비옷을 입지 않았다. 오른손에는 격자무늬 수첩이 들려 있었다.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데.” 하린이 말했다.
“너무 서둘러 떠올리지 마.” 현우가 말했다.
“아니, 얼굴 말고 수첩이야. 우리 학교 보건실에 있던 것처럼 생겼어.”
수첩의 표지에는 작은 원이 세 개 겹친 문양이 있었다. 그것은 상자에서 나온 금속 명찰의 문양과 달랐다. 가은은 당시 이동 진료소의 외부 협력 기관까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록관 자료 가운데 인계 현장에 파견된 사람들의 수기 명단이 발견됐다. 의료진의 이름은 대부분 남아 있었지만, 협력 기관 상담사의 칸 하나가 빈칸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빈칸 아래에는 누군가 나중에 적은 메모가 있었다.
'최종 승차 확인자 미회신. 본인 서명 확인 불가.'
“왜 마지막 탑승자의 이름을 찾지 말라고 했는지 조금 알겠네요.” 가은이 말했다. “이 서명을 누가 했다고 주장하는 순간, 나머지 모든 인계를 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있으니까요.”
현우는 그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동안 자신은 마지막 탑승자를 찾아내면 진실을 말할 사람이 하나 생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준비를 해 놓았을지도 몰랐다.
가은은 그 영상에서 한 장면을 다시 재생했다. 젊은 여자가 차에서 내린 직후 뒤돌아보는 순간이었다. 비 때문에 눈앞이 흐릿한데도 그녀의 몸은 작은 그림자를 가리려는 듯 문 사이에 비스듬히 서 있었다. 누군가를 따라가는 사람보다 누군가의 앞을 막는 사람처럼 보였다. 가은은 그 모습을 보고도 수사 메모에 '보호 행위'라고 적지 않았다. 대신 '차량 문 부근에 머물러 있음'이라고만 썼다. 그런 문장을 적는 일은 느렸고 답답했다. 그래도 스무 해 전의 원본도 처음에는 누군가가 자기 눈으로 본 것을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어긋났을지 모른다. 이번만큼은 그 시작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외부 운영기관으로부터 회신이 도착했다. '서명 확인 불가'로 남아 있는 칸은 20년 전 전산화 당시 '대리 서명 완료'로 바뀌었다고 했다. 변환 기록에는 한 줄이 더 있었다.
[대리 서명자: 오선희]
현우는 모니터를 보았다. 선희는 서명을 거절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이제 거절의 기록이 아니라 동의의 증거로 사용되고 있었다.
가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그분의 기록부터 지켜야겠어요. 진실을 밝혀 주겠다는 이름으로 같은 일을 반복할 순 없죠.”
제13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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