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에는 서명도, 발신인도 없었다. 종이 한 장만 들어 있었다.
'당사자 미확인 기록을 원본에 병합하십시오. 기한 만료 시 보호 관계가 자동 종료됩니다.'
현우는 문장의 마지막을 다시 읽었다. 보호 관계를 종료한다. 표면상으로는 오래된 미결 기록을 정리하겠다는 행정 문장이었다. 하지만 선희가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와 본인 확인에까지 그 기록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다. 그저 과거의 종이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었다.
가은은 봉투와 배송 경로를 보존하고 기관에 긴급 오류 신고를 넣었다. 주영은 문제가 된 외부 시험 서버가 실제 인증 서비스에 접근하는 통로부터 조사했다. 아직 누가 봉투를 보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협박 같네요.” 민서가 말했다.
“협박이라면 보낸 사람이 책임져야 해요. 기술적인 오류라면 그 오류를 만든 사람과 방치한 사람을 찾아야 하고요.” 가은이 답했다. “둘을 섞어서 결론부터 내리면 안 됩니다.”
민서는 조용히 손을 모았다. 자신이 이름 때문에 서류를 내밀어야 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는 듯했다.
보존소에서는 노란 비옷의 상태 점검이 진행 중이었다. 안감에서 실밥이 풀리지 않도록 지지대를 대던 문재식이 주머니 안쪽에 다른 주머니가 덧대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손을 넣어 확인하는 대신 촬영을 통해 안쪽 형태를 먼저 확인했다.
작은 천 조각이 나오고, 그 안에서 젖었다 마른 종잇조각이 두 개 발견됐다. 첫 번째에는 수첩에서 뜯어 낸 듯한 격자무늬가 있었고, 두 번째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먼저 내린 애는 집으로 갔다.'
'남아 있던 애는 아직 고르지 않았다.'
'마지막에 탄 사람은 아이를 데려간 사람이 아니다.'
현우는 세 번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럼 누가 마지막에 탔다는 거죠?”
“우리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당시 기록 방식이 말하는 '탑승'의 뜻이 다른 걸 수도 있어.” 가은이 말했다.
하린은 격자무늬가 그려진 종이를 오래 살폈다. 열두 칸은 선으로 둘러져 있었지만 열세 번째 칸에는 점만 찍혀 있었다. 그녀가 종이배를 접을 때 구멍이 생기는 지점과 비슷한 위치였다.
“이거 누가 접은 게 아니라, 열었던 자국 같아.”
“뭐를?” 현우가 물었다.
“노트. 여기를 누르면 종이가 갈라지잖아. 근데 이 선만 반대쪽으로 눌려 있어.”
주영은 상자에서 나온 접수 카드 묶음을 가져와 종이의 간격을 비교했다. 다섯 장마다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별개의 의료 기록을 하나로 묶던 천공선이었다.
“이 종이가 기록카드의 겉표지였던 것 같아요. 뒤에 붙어 있던 건 분실됐고요.”
“그럼 잃어버린 서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죠?”
주영은 기존 조사 자료를 뒤졌다. 남쪽 진료소가 폐쇄될 때 반출된 물품은 의약품 상자 외에도 있었다. 철거 목록에는 '봉투 없는 서류 한 묶음'이 있었지만, 회수하는 과정에서 생활 폐기물로 분류됐다고 적혀 있었다. 뒤편 메모에는 '원본 확인 불가. 현장 보존'이라고 덧붙어 있었다.
“현장 보존이면 지금 어디 있다는 말이에요?” 하린이 물었다.
“이상하네. 철거됐는데 현장 보존이라니.”
사라진 서류의 위치를 둘러싸고 의견이 갈렸다. 누군가는 침수로 훼손되었을 테니 추적을 그만두자고 했다. 다른 담당자는 서류가 있었다는 증언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복구를 서둘렀다. 그러나 주영은 둘 다 반대했다. 종이가 없어졌다는 사실과 종이에 무엇이 쓰여 있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는 기록관의 폐기 목록과 물품 이동 목록을 별도 창에 띄워 놓고 줄을 하나씩 비교했다. '폐기'에 동그라미가 쳐진 물품 중 두 개는 재사용 기록이 있었다. 한쪽 표에는 쓰레기가, 다른 쪽 표에는 보존 물품이 된 것이다. 그 작은 오류가 오늘 남쪽 길로 향할 근거가 되었다.
문재식은 오래된 배치도를 꺼냈다. 진료소 건물 뒤에는 창고가 하나 있었다. 현재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작은 건물이었다. 건축물대장에는 이미 철거됐다고 되어 있었다.
“건물이 없어도 기초는 남아 있을 수 있어요.” 문재식이 말했다.
그날 저녁 현우와 가은은 진료소 터를 다시 찾아갔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콘크리트 바닥은 축축했다. 빗물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했다. 창고가 있었던 자리의 보도블록 한 장은 다른 것보다 새것이었다.
가은은 현장 담당자와 소유주의 동의를 받은 뒤 조사를 요청했다. 블록을 들어 올리자 안쪽으로 좁은 배수구가 이어졌다. 배수구 끝에는 금속통 하나가 방수 비닐에 싸인 채 놓여 있었다.
현우는 비닐 너머의 글씨를 보았다.
'3호 동승자 재확인용. 열 시 십삼 분 이후 열람.'
그리고 통 옆면에 적힌 또 하나의 문장.
'아이 이름보다 먼저, 문을 열어 준 어른의 이름을 기록할 것.'
제13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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