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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33화
PAYLUA ORIGINAL · 제133화

133화. 남쪽 다리의 세 번째 발자국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210자

오프라인 책장
남쪽 연결도로 끝에는 다리가 있었다. 스무 해 전에는 폭우가 내리면 물이 차는 낡은 콘크리트 다리였고, 지금은 차량 통행을 막고 난간을 새로 세운 산책길이었다. 낮에는 자전거가 지나다녔지만 비가 그친 늦은 오후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드물었다. 현우는 다리 위에 서서 물길을 내려다봤다. 물은 낮은 수풀을 스치며 흘렀다. 맞은편에 서 있던 민서는 아무 말 없이 난간을 붙잡았다. 20년 전 보았던 풍경인지, 지금 처음 보는 풍경인지 그녀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가은이 말했다.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에요. 기억나는 것들이 서로 맞지 않아요.” 민서는 느리게 말을 이었다. “버스가 여기서 멈췄을 때 제가 내린 것 같기도 하고, 이미 내린 뒤 다시 봤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물소리는 똑같아요.” 가은은 그녀의 말을 녹음하려 하지 않았다. 오늘은 현장 확인이 목적이었다. 기억을 맞히는 시험이 되어서는 안 됐다. 선희의 진술을 따라 다리 남쪽에 있던 진료소 터를 찾아갔다. 담벼락은 새로 쌓였고 건물은 철거됐지만, 지면보다 조금 낮은 콘크리트 기초에는 약품 운반차가 들어갔던 둥근 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3호 버스는 더 이상 공공 대피 차량이 아니었다. 환자를 옮기는 임시 운송 차량으로 사용됐다는 기록이 뒤늦게 확인된 상태였다. “여기에 발자국이 세 개 있었다는 게 무슨 의미예요?” 하린이 물었다. 주영이 옛 사진을 펼쳤다. 흙탕물 위로 세 방향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당시 시설 점검 사진이었다. 접수 담당이 보관한 게 아니라 다리 난간 파손 신고에 첨부된 사진이라, 신원 기록과 분리된 채 남아 있었다. “사진의 발자국 셋이 곧 사람 셋이란 뜻은 아니야.” 주영이 말했다. “신발 종류가 다를 수도 있고, 한 사람이 갈아 신었을 수도 있어.” “그래도 누가 다리를 건너서 차 쪽으로 간 건 맞네요.” “그건 방향을 더 확인해야 해.” 다리 아래에는 예전 버스 정류장의 터가 남아 있었다. 시멘트 틈으로 풀이 자랐고, 붕괴 위험 때문에 세운 가느다란 울타리에는 색이 바랜 노란 리본이 묶여 있었다. 민서는 그 리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기억 속 노란색이 리본인지 비옷인지, 어쩌면 어른이 든 가방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현우는 그녀가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듣고 한마디를 하려다가 멈췄다. 기억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그날을 살아낸 사람이 불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다리 위를 지나던 자전거 한 대가 자갈을 밟고 덜컹거렸다. 민서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그 반응을 사건의 증거로 적지는 않았다. 그들은 원본 필름의 촬영 순서를 확인했다. 처음에는 다리 위에 운행을 멈춘 버스가 있었다. 다음 사진에는 문이 열려 있었고, 세 번째에는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사진 구석에 승객용 손잡이가 달린 작은 차량 한 대가 있었다. 당시 공용차량인 3호 버스와는 다른 차였다. “차가 두 대였어요?” 현우가 중얼거렸다. 문재식은 확대된 사진을 보며 말했다. “가능성은 있지만, 같은 시간대인지 아직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현우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선희가 보내 온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의료용 접수표 뒷면이 찍혀 있었다. '3호 차량 복귀 — 동승자 2 / 외부 동행 1 / 마지막 탑승 확인 보류.' 그 아래 손글씨로 날짜와 시각이 적혀 있었다. 오전 열 시 십삼 분. 현우는 선희의 멈춘 시계가 가리키던 시각을 떠올렸다. “열 시 십삼 분.” 민서가 뒤를 돌아봤다. “왜요?” “선희 씨 시계도 그 시간에 멈췄어요.” “그걸 증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가은이 말했다. “시계가 언제 고장 났는지 모릅니다. 다만 왜 그 시간을 고집하는지는 물을 수 있겠죠.” 그날 저녁 선희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러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대신 가은의 업무용 메일로 선희가 직접 예약 발송한 짧은 글이 도착했다. '내 시계는 고장 난 것이 아닙니다. 그날 제가 스스로 멈췄습니다. 아이가 이름을 말한 시각을 잊지 않으려고요.' 뒤에는 한 문장이 더 있었다. '마지막에 올라탄 사람은 문을 열어 준 사람이었습니다.' 가은은 메일을 여러 번 읽었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이라면 대피소의 문일까, 버스의 문일까, 아니면 진료소의 출입문일까. 현우는 강가에 놓인 작은 돌 하나를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이름 하나였지만, 그 이름을 가리키는 말들은 서로 다른 문 앞에 흩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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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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