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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32화
PAYLUA ORIGINAL · 제132화

132화. 비가 오지 않는 날의 우산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504자

오프라인 책장
여자는 빠르게 걷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불러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복도 끝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오선희 씨.” 가은이 이름을 부르자 여자가 멈췄다. 곧장 돌아보지는 않았다. 구두 뒤축이 바닥에 닿는 소리만 두 번 났다. “오선희 씨 맞으십니까? 저는 윤가은 형사입니다. 몇 가지 확인할 일이 있습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았죠?” 현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움찔했다. 그는 오선희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붉은 글씨를 보았지만, 가은은 그 글씨를 볼 수 없었다. 물론 이름은 오래된 봉사대 명부에서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선희에게는 그런 설명보다 앞서 이름을 들킨 느낌이 든 듯했다. 가은은 신분을 밝히고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선희는 회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얇은 손목에 낡은 손목시계가 있었다. 시계 바늘은 오전 열 시 십삼 분을 가리킨 채 멈춰 있었다. 선희는 핸드백에서 휴지를 꺼내 손바닥의 땀을 닦았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 들고 나온다는 작은 주소 수첩도 보였다. 휴대전화에 번호를 저장해 두면 편하지만, 기기가 고장 나면 아무 연락도 할 수 없어 옛날부터 종이에 적는다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를 유난스럽다고 하죠.” 그녀는 수첩을 도로 넣었다. 현우는 웃을 수 없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 역시 휴대전화에서 이름 하나가 지워지는 일을 막지 못했다. 누군가를 부를 수 있는 방법이 종이 한 장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오늘은 이상하게 든든했다. “그 상자를 찾았군요.” 선희가 먼저 말했다. “안에 들어 있는 물품에 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나중에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너무 많은 사람이 남의 이름으로 대답하고 있었거든요.” 그녀는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가은은 면담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녹취 여부부터 물었다. 선희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자신의 현재 주소와 가족의 이름은 조사 기록에도 필요한 범위에서만 사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스무 해 전에는 남쪽 진료소에서 일했어요?” “간호보조였어요. 정식 진료는 의사 선생님이 했고, 저는 체온 재고 약 봉투 정리하고 차 오는 걸 기다렸죠. 비가 길게 왔어요. 사람들 얼굴을 보기도 힘들 정도로.” 그녀는 노란 비옷을 기억했다. 정확히는 같은 비옷이 세 벌 있었다고 했다. 이동 진료 지원반의 공용 물품이었다. 누구 하나의 옷이 아니었다. “그러면 노란 비옷을 입은 사람이 곧 선희 씨라고 할 순 없겠군요.” 가은이 확인했다. “그렇죠. 그날 저는 안쪽에서 아이를 봤어요. 비옷은 문가에 걸려 있었어요.” 현우는 잠깐 마음이 조급해졌다. 민서의 기억 속 노란 비옷이 끝내 사람의 얼굴이 되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럼 아이는 어디로 갔습니까?” 선희는 현우를 바라봤다. “대답 안 한 애 말인가요?” “네.” “그 애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면 잘못이에요.” 민서가 숨을 들이켰다. 선희는 오래 기억한 듯 문장을 또박또박 이었다. “그 애는 자기 이름을 말했어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런데 그때 밖에서 차가 한 대 더 왔어요. 그 차가 떠나고 나니 우리 접수표에는 아이가 이름을 말하기 전 상태만 남았죠.” “누가 지웠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몰라요. 내가 접수표를 썼고, 누군가 다시 가져갔어요. 다만 처음부터 아이가 침묵했던 것처럼 만드는 건 견딜 수 없었어요. 그래서 상자에 따로 남겼죠.” 가은은 한쪽 페이지에 '이름을 말했다는 진술'이라고 적었다. 이름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은 잠시 미뤘다. 선희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가 오히려 더 긴장하는 것 같았다. “왜 오셨습니까? 상자가 오늘 열리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어젯밤 제 집 전화로 전화가 왔어요. 녹음된 목소리가 말하더군요. '13번 보관 물품의 접근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의가 있으면 정해진 시간 안에 답하라.' 번호를 누르려고 하니까 전화가 끊겼어요.” 현우는 선희의 붉은 숫자를 확인했다. [47:21:08] 정확한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나타나는 사람은 기록이나 기억에서 밀려날 위험에 처한다는 사실을 그는 여러 번 목격했다. “선희 씨, 혹시 지금 사용하시는 이름이나 기록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까?” “오늘 병원에 갔더니 제가 이미 퇴원 처리된 사람이라더군요. 입원한 적도 없는데요. 접수 직원이 미안해하면서 다음 날 다시 와 달랬어요.”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이건 우연이겠죠?” 가은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병원에서 받은 안내문과 처리 시각이 남아 있는지 물었다. 선희는 접힌 종이를 꺼냈다. 그 종이 아래 작은 코드가 적혀 있었다. '13-3 / 귀환 완료 / 원본 미확인.' “저는 귀환한 적 없어요.” 선희가 말했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거든요.” 그 말은 사건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누군가가 이름을 지우기 전에 먼저 사람의 이동을 꾸며 내고 있었다. 선희는 멈춘 시계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그날 차에 마지막으로 오른 사람은, 여러분이 찾는 아이가 아닐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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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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