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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31화
PAYLUA ORIGINAL · 제131화

131화. 봉인된 남쪽의 상자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322자

오프라인 책장
남쪽 진료소에서 돌아온 상자는 생각보다 작았다. 누렇게 변한 마분지 상자였다. 한쪽 모서리에는 장기간 물에 잠겼다가 말랐을 때 생기는 검은 선이 남았고, 손잡이 구멍은 낡은 붕대로 보강돼 있었다. 뚜껑 위에는 십자 모양으로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의료 폐기물처럼 보이도록 인쇄된 경고 문구 아래, 가는 연필 글씨 한 줄이 묻혀 있었다. '13번의 이름을 찾지 말 것. 대신 마지막 탑승자를 확인할 것.' 현우는 상자 앞에 앉아 몇 번이고 그 문장을 읽었다. 이름을 찾지 말라니. 지금껏 자신은 누군가의 이름을 되찾아 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붉어진 이름을 보고 사람을 쫓았으며, 이름이 지워진 자리에서 목소리를 찾아냈다. 그런데 남쪽으로 향한 길 끝에는 정반대의 지시가 있었다. “누가 이렇게 적었을까요?” 기록보관소의 담당자 문재식이 봉인 상태를 촬영하며 말했다. “아직 모릅니다. 필적을 추정하기 전에 내용부터 확인하죠.” 가은이 대답했다. 원래 관할 기관의 입회와 보존 동의 절차가 끝난 뒤였다. 상자는 현장에서 강제로 열어 보지 않았고, 오늘도 봉인을 벗기기 전까지 모든 면을 촬영했다. 그렇게 조심할 이유는 단순했다. 누군가에게는 스무 해 동안 찾아 헤맨 기억의 전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서는 상자를 열기 전에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다. 돌아온 그녀는 물 묻은 손을 바지에 문지르며 말했다. “제가 기억하는 버스에 저 상자가 있었을까요?” 가은은 모른다고 했다. 민서는 그 대답을 듣고 이상하게 편해진 얼굴을 했다. 누구도 억지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을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의자를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 앉았다. 당장 안을 보지 않아도 된다며 하린이 생수병 하나를 건넸다. 상자를 둘러싼 사람들 중 가장 오래 기다린 사람에게조차 서두를 의무는 없었다. 붕대가 풀리고 뚜껑이 들렸다. 제일 위에는 유리병 셋이 얌전히 누워 있었다. 모두 비어 있었고 소독약 냄새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아래로 접힌 노란 비옷, 금속 명찰 하나, 손바닥만 한 녹음기가 나왔다. 비옷 소매에는 작은 칼집이 나 있었으며 안감에는 붉은 실로 두 개의 매듭이 묶여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네요.” 하린이 말했다. 그녀는 노란 비옷을 만지지 않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같은 색의 실로 매듭을 두 개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녹음기의 뒷면에는 날짜가 붙어 있었다. 사고 발생 엿새째 밤. 13번 의자 바닥의 종이에 적힌 날짜와 같았다. “재생 장치의 상태부터 확인해야겠어요.” 주영이 말했다. “원본이 망가지면 안 되니까요.” 담당자는 내부 저장 매체의 복제 가능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녹음기를 보호함에 옮겼다. 현우가 실망한 얼굴을 하자 가은이 낮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소리를 듣기 위해 온 거잖아요. 서둘러서 소리를 없애 버리면 안 되죠.”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끝에서 자신이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자 맨 아래에는 얇은 접수 카드가 열세 장 있었다. 열두 장에는 약의 투여 시각만 적혀 있었고, 마지막 장은 접힌 상태였다. 가은은 그 카드를 펼치다 잠깐 손을 멈췄다. [대상자 성명: 공란] [보호자: 미지정] [거처: 대상자 응답 전 보류] 그 밑의 손글씨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밤새 이름을 묻지 않았다. 물어야 할 때까지 기다렸다.' 민서는 그 문장을 보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이 그 버스에서 먼저 내렸다는 기억을 겨우 말할 수 있었다. 그 뒤에 남아 있던 다른 아이가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 “저 아이는 어디까지 갔을까요?” 민서가 물었다. “아직은 모릅니다.” 가은이 말했다. “다만 누군가 그 아이가 대답할 때까지 기다린 건 맞는 것 같아요.” 보존소 직원이 명찰을 빛 아래에 놓았다. 금속 표면의 앞면은 벗겨졌지만 뒷면의 문양은 남아 있었다. 세로줄 두 개와 작은 별. 구급 담당자가 쓰던 표시도, 교사들의 표식도 아니었다. 주영이 화면에 오래된 지역 봉사대의 장비 목록을 띄웠다. “이 문양을 아는 것 같아요. 당시 이동 진료 지원반 표식인데, 명찰에는 사람 이름 대신 담당 차량 번호를 새겼대요.” “몇 호입니까?” 주영은 명찰의 가장자리를 확대했다. '3호 / 마지막 승차 확인자.' 그 순간 현우의 눈앞에 아주 가느다란 붉은 선이 떠올랐다. 명찰 위가 아니었다. 문재식이 서 있는 창가, 바깥 주차장으로 걸어 들어오는 누군가의 머리 위였다. [오선희 / 47:59:59]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사님. 밖에 있는 저분, 지금 만나야 합니다.” 밖의 여자는 비가 오지 않는데도 접힌 노란 우산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창 너머 상자를 한 번 바라보더니 그대로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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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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