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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30화
PAYLUA ORIGINAL · 제130화

130화. 의자가 가리킨 방향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962자

오프라인 책장
버스가 다시 움직였다는 말을 듣고 가은은 가장 먼저 태석의 운전 일지와 관할 교통 자료를 비교했다. 누군가 차량을 가져갔다면 기름을 넣은 기록이나 정비 접수 기록이 남아 있을지 몰랐다. 그들은 마지막 운행을 알던 사람들에게 다시 연락했다. 답을 찾으려면 스무 해 전의 기억을 새로 꾸미는 대신, 그때 남긴 흔적을 하나씩 확인해야 했다. 이튿날 오후, 사고 당시 차량 정비를 맡았던 업체의 보관 장부에서 뒤늦게 한 줄이 발견됐다. '임시 접수차량 3호. 차내 보조 의자 고정 불량. 남쪽 연결도로에서 조치.' 정비 시각은 태석이 차량을 인계한 지 세 시간 뒤였다. 그 문장만으로는 누가 운전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버스가 인계 뒤에도 움직였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남쪽 연결도로가 어디죠?” 현우가 물었다. 가은이 지도에서 오래된 길을 표시했다. 지금은 산책로와 주차장으로 끊긴 도로였다. 스무 해 전에는 대피소에서 외곽의 작은 임시 진료실로 이어졌다. 하린이 지도를 보다가 말했다. “의자가 문 쪽을 향해 있었다고 했잖아.” “응.” “혹시 밖으로 나가라고 놓은 게 아니라, 어디로 갈 건지 보여 주려고 놓았던 거 아닐까?” 현우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껏 그는 의자를 기다리는 자리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등받이에 적힌 숫자 아래에는 흰 화살표가 희미하게 보였다. 오래된 사진에서는 배경의 얼룩처럼 보이던 선이었다. “이걸 다시 확인해 봐야겠네요.” *** 보관소에서 의자를 다시 살펴보는 날, 민서가 함께 가겠다고 했다. 하린도 왔다. 가은은 민서에게 사진 확인과 현장 열람이 서로 다른 경험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원하면 언제든 자리를 떠날 수 있도록 했다. 의자는 처음 보았을 때처럼 조용히 창고 구석에 놓여 있었다. 문재식이 천막을 걷자 햇빛 속에서 먼지가 일어났다. 민서는 의자에서 세 걸음 떨어진 곳에 멈췄다. “저 의자가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왜요?” 현우가 물었다. “앉아 있으면 누구든 와서 제 이름을 묻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냥 의자네요.” 그녀는 잠시 웃었다. 웃음 끝에는 오래 버텨 온 사람의 피로가 묻어 있었다. 문재식은 가은의 입회 아래 의자 상태를 촬영했다. 바닥판과 등받이 사이의 틈에 오래된 종잇조각이 끼어 있었다. 유물 상태를 훼손하지 않도록 기록관 담당자가 분리 작업을 진행했다. 아주 얇은 종이였다. 종이에는 담당자를 위한 안내문이 인쇄돼 있었다. '13번은 인원 번호가 아닙니다.' '동의 보류 접수석. 대상자의 의사 확인 전까지 이름·보호자·귀환지를 확정하지 말 것.' '퇴실 희망 시 동행자 없이도 면담 가능. 단, 긴급 보호가 필요한 경우 담당 기관에 연결.' 현우는 안내문을 끝까지 읽었다.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만든 절차였다. 나중에는 그 대답이 없다는 이유로 이름을 합쳐 버리는 규칙으로 바뀌었다. 민서가 조용히 말했다. “그때는 이런 문장이 있었네요.” “네.” 가은이 답했다. “그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예요.” 의자 밑에 새겨진 글씨도 더 분명해졌다. '내가 말하기 전에는 적지 마.' 민서는 잠시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는 시늉을 했다. 만지지는 않았다. “이제는 저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하린이 곁에서 대답했다. “그래. 이름은 네가 말하면 돼.” *** 종이 뒷면에는 손으로 쓴 날짜와 짧은 메모가 있었다. 사고 이후 엿새째 되는 날이었다. '3호 차량, 13번 면담 계속. 보호자 지정 거절. 남쪽 진료소로 이동.' 가은은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정비 기록과 날짜가 일치했다. 태석이 보지 못한 마지막 운행은 적어도 일부 기록으로 확인됐다. “그럼 버스에 남았던 아이는 남쪽 진료소에 갔을 수도 있겠네요.” 현우가 말했다. “그럴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거기서도 어떤 이름을 썼는지는 모르죠.” 민서가 입을 열었다. “저는 같이 가고 싶어요. 증인이라서가 아니라, 그 아이에게 직접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요.” 가은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20년 전의 길을 찾는 일이 민서에게 어떤 의미인지, 오늘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지는 민서만이 정할 수 있었다. “일정과 자료를 먼저 공유할게요. 그 뒤에 결정하세요.” “네. 이번에는 제가 선택할게요.” *** 그날 밤 현우는 오래전 지도를 펴 놓고 남쪽 진료소의 위치를 표시했다. 지형이 달라지고 길이 사라졌어도 물길 하나는 남아 있었다. 비가 내리면 바닥까지 물이 차오르는 좁은 다리였다. 하린이 종이배 두 척을 지도 위에 올렸다. “어느 쪽이 민서 씨 거야?” “그건 민서 씨가 고르겠지.” “그럼 다른 하나는?” 현우는 배 한 척을 남쪽 도로 끝으로 밀었다. “아직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거야.” 하린은 잠시 지도를 보다가 말했다. “이상해. 누군가 어린애를 숨기려고 했다면, 왜 굳이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은 채 끝까지 동행했을까?” 현우도 같은 질문을 생각하고 있었다. 노란 비옷의 사람은 아이를 데려간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데려가려는 누군가에게서 아이를 지킨 사람이었을까. 그때 가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쪽 진료소 건물은 지금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철거 직전 반출한 보관함 한 개가 확인됐어요. 접수 기록이 아니라 의약품 상자라고 분류돼 있었습니다.”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아직 봉인을 열지 않았어요. 외부 기록보관소에 보존 요청을 넣었습니다. 상자 겉면에 수기로 쓴 문장이 하나 있대요.” “뭐라고요?” 가은이 천천히 읽었다. “'13번의 이름을 찾지 말 것. 대신 마지막 탑승자를 확인할 것.'” 현우는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봤다. 어쩌면 그들이 찾아야 할 사람은 처음부터 이름을 잃은 아이만이 아니었다. 아무도 대신 대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버스에 남아 있던 사람도 있었다. 현우는 종이배가 놓인 지도를 접지 않았다. 그들이 다음에 찾아갈 곳은, 이름이 지워진 지역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이 끝까지 보류된 길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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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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