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02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현우는 예전처럼 한 명의 얼굴을 떠올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서람과 청리에서 확인한 자료는 그 코드가 여러 시기에 여러 업무를 거쳐 사용됐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편리한 악역 하나를 만들면 설명은 쉬워진다. 그 대신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놓칠 수도 있었다.
가은은 그 점을 수사 기록의 첫 줄에 적었다.
'계정과 사람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주영은 폐쇄 시험 서버의 상태를 운영기관과 함께 검토했다. 실제 데이터를 건드리지 않는 사본에서만 재현 절차를 실행했다. 정지된 접수 요청이 어떤 조건에서 다시 살아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이상해요.” 주영이 말했다. “원래는 미확인 아동의 자료를 함부로 합치지 못하게 막는 보호 기능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보호자에게 넘기려 한다는 겁니까?”
“정확히 말하면 프로그램은 누군가에게 넘기지 못한 상태를 오류로 봅니다. 빈칸을 오래 허용하지 않는 거죠.”
“무엇이 바뀌었나요?”
“열세 해 전, 자동 정리 조건이 추가됐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도록 이의를 말하지 않으면 기존 명단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합쳐요. 어린이가 스스로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을 악용할 수 있는 구조죠.”
가은은 질문을 던졌다.
“당시 검수자들이 문제를 몰랐나요?”
주영은 오래된 문서 목록을 펼쳤다. 여러 사람이 이의를 제기한 흔적이 있었다. '미확인 의사를 동의로 간주하면 안 된다.' '빈칸을 임의의 성명으로 채우지 말 것.' 그런데 이 의견들은 하나같이 '대기 완료' 상태로 닫혀 있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은 게 아니었군요.” 현우가 말했다.
“반대가 들어왔는데도 응답이 끝났다고 계산했어요.”
시스템이 사람을 지운 첫 번째 방법은 이름 삭제가 아니었다. 대답을 하지 않은 사람과 반대의 말을 한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는 일이었다.
***
가은은 정식 절차를 통해 전산화 사업에 참여했던 당시 검수자들에게 연락했다. 누군가는 오래전 자료를 기억하지 못했다. 또 누군가는 이미 은퇴해 가족과 조용히 살고 싶어 했다. 가은은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중 한 사람이 짧은 손편지를 보내 왔다. 당시 민간 검수팀의 서기였던 남자였다.
'저는 반대했습니다. 미확인 아동을 임의로 기존 신원에 연결하면 한쪽의 권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최종 회의 자료에서는 반대 의견이 모두 처리 완료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편지 뒷면에는 회의 출석부 사본이 붙어 있었다. 회의에 나오지 않은 사람의 칸에도 참석 표시가 있었다.
현우는 종이를 오래 바라봤다.
“우리랑 똑같은 일이 그때도 있었네요.”
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 당시 반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없던 일이 아니에요.”
그들의 다음 과제는 이미 잘못 연결된 자료를 무턱대고 끊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별도 경로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운영기관은 민서의 성인 신원으로 의료 접근을 계속 허용하고, 오래된 접수 프로그램이 신원 확인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임시 분리 조치를 적용했다. 법적 정정 요청은 민서 본인의 의사에 따라 진행하기로 했다.
민서는 그 소식을 듣고 첫 질문을 했다.
“그럼 그 아이의 기록은 없어지지 않나요?”
“아니요. 미확인 기록은 따로 보존됩니다.” 가은이 설명했다.
“그럼 제 이름을 지킬 수 있겠네요.”
“네.”
“그리고 누군가의 이름을 빼앗지 않고도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가벼워졌다.
***
한편 민서는 자신의 오래된 상자를 다시 정리했다. 이름을 바꿨을 때 버리지 못했던 종이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예전 이름으로 적힌 성적표도 있었고, 그녀가 지금의 이름으로 처음 받았던 급여 명세서도 있었다.
그녀는 둘 중 하나를 태워 없애는 대신 서로 다른 봉투에 넣었다. 잘못 붙은 이름이 있었다고 해서 그 시절을 살았던 자신의 경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경험 때문에 지금의 이름을 포기할 이유도 없었다.
민서는 가은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그날 버스 안의 다른 아이에게 전할 말이 더 있어요. 혹시 찾더라도 그 아이에게 제 이름을 강요하지는 말아 주세요. 그냥 제가 기다렸다고만 알려 주세요.'
가은은 문자를 저장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락을 원하지 않으면 그것도 존중하겠습니다.'
오래 걸려 도착한 답은 한 단어였다.
'고맙습니다.'
그날 저녁, 태석은 작은 열쇠고리를 민서에게 직접 전달하기로 했다. 둘은 정식 면담 장소에서 만났다. 태석은 어느새 흰머리가 많은 노인이 되어 있었다. 민서는 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손에 들린 고리를 보는 순간 울었다.
“할머니 집 굴뚝.”
그녀가 집 그림 하나를 만지며 말했다.
“그리고 엄마 가게 창문.”
태석은 열쇠고리를 건네고도 한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날 나는 뒷거울을 잘못 봤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럴 수 있죠.” 민서가 답했다. “저도 누가 탔고 내렸는지 다 모르니까요.”
“그래도 아이 하나는 끝까지 차에 남았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민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을 찾으면 제가 직접 물어보고 싶어요. 왜 제 이름을 불렀느냐고. 그리고 그 뒤에 어디로 갔느냐고.”
떠나려던 태석이 문 앞에서 돌아섰다.
“참, 마지막 운행 날 버스에 남았던 건 아이만이 아니었소.”
가은이 고개를 들었다.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까?”
“노란 비옷을 입은 그 어른 말입니다. 아이가 내리지 않겠다고 하자, 그 사람도 내리지 않았어요.”
잠깐의 정적 뒤 태석이 말했다.
“버스는 제가 세워 둔 자리에서 누군가 다시 운전해 갔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마지막 운행은 그날 끝난 게 맞아요.”
제12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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