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26화
PAYLUA ORIGINAL · 제126화

126화. 스무 해 뒤의 접수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505자

오프라인 책장
알림이 뜬 시각은 새벽 두 시 십사 분이었다. [13번 접수 재개] [보호자 확인 대기] [대상자 상태: 미성년] 현우는 마지막 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건 당시 어린아이였다 해도 지금은 스무 해가 지났다. 원본이 사실이라면 이제 어른이 되어 있을 사람을 미성년자로 다루는 기록이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주영은 곧바로 접속하자는 현우의 말을 막았다. “우리가 알림을 받았다고 해서 시스템에 접근할 권한이 생기는 건 아니에요. 어느 기관이 이 절차를 운영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가은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알림 화면과 수신 시각을 보존한 뒤 관할 기록기관에 공식 확인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겪은 사건들에서 무단으로 원본을 건드렸을 때 더 많은 사람의 기록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어 돌아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해당 절차는 현재 운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알림을 보냈는가. 서류상 이미 중단된 서비스가 개인의 휴대전화에 보호자 확인을 요구하고 있었다. *** 현우는 아침 시장에 들렀다가 길가에 선 아이와 어머니를 보았다. 아이는 손잡이에 매달린 채 자기가 갈 학교를 두고 떼를 썼다. 어머니는 한참을 듣더니 다시 물었다. “네가 원하는 게 친구들이 있는 쪽이야, 아니면 운동장이 넓은 쪽이야?” 아이는 망설이다 친구들이라고 답했다. 현우는 그 장면을 지나치며 수첩의 한쪽을 만졌다. 열세 번째 의자에도 이런 질문을 하는 어른이 있었을까. 아이가 답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을까. 조금 뒤 주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시험 시스템이 실제 주민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아직 확인된 것은 알림의 존재뿐이라는 내용이었다. 현우는 전달받은 사실만을 가은에게 공유했다. 누군가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을 막으려면 불확실한 공포와 확인된 위험부터 나누어야 했다. 같은 날 다른 곳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서람 외곽의 작은 진료소에서 한 여자가 응급 진료를 받으려다 의료 이력 확인이 거부됐다. 전산에는 그가 스물아홉 살 성인이라는 사실이 남아 있었지만, 오래된 보호 자료와 연결된 화면만은 '보호자 동의 필요'라고 표시됐다. 진료소 직원은 긴급 처치부터 진행하고 병원으로 이송했다.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왜 제가 어른이라는 걸 자꾸 증명해야 하죠?” 여자의 이름은 정민서였다. 가은은 경찰로서 접근할 수 있는 기록의 범위를 확인하고, 당사자가 원할 경우에만 면담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민서는 다음 날 짧은 통화를 허락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충분히 확인한 뒤였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죠?” 민서가 먼저 물었다. “진료소에서 기록 오류 신고가 들어왔고, 본인 동의하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또 제 옛날 이름을 찾으러 온 건가요?” 가은은 잠시 말을 멈췄다. “아닙니다. 어떤 이름을 쓰실지는 민서 씨의 결정입니다. 저희가 확인하고 싶은 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어린 시절의 기록이 현재의 신원에 영향을 주었는지입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릴 때 시설을 옮긴 적이 있어요. 비가 엄청 오던 때였죠. 그런데 그 얘기만 나오면 다들 제가 누구의 아이였는지를 먼저 묻습니다.” “말씀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 알려 준 건가요, 제 이야기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의 기록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민서가 한참 침묵했다. 가은은 채근하지 않았다. “저한테는 집이 두 개였어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가은은 손끝이 저려 왔다. “그렇군요.” “왜 놀라지 않으세요?” “그 말을 기록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말을 했다고 같은 사람이라고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제대로 물어봐 주세요.” 민서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제가 어디로 돌아가고 싶었는지.” *** 가은은 면담 장소와 시간을 민서가 고르도록 했다. 민서는 사람이 많은 카페 대신 낮에 문을 여는 작은 도서관 회의실을 택했다. 기록 보존 담당자나 언론은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현우는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직접 관련 당사자에게 동의를 받기 전까지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거나 누군가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민서가 현우와도 만나겠다고 하자, 가은은 그런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만 전했다. 저녁에 가은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민서 씨가 내일 온대요.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뭔데요?” “20년 전 이름을 쓰라고 하지 말 것. 지금의 이름을 먼저 부를 것.” 현우는 선뜻 대답했다. “그게 당연한 일이죠.” 전화를 끊고 나니 더 무서운 사실이 떠올랐다. 당연한 조건을 굳이 요구해야 할 만큼, 누군가는 그 사람의 현재를 지워 놓았던 것이다. 그 밤 현우의 휴대전화에 다시 알림이 떴다. [13번 접수: 보호 대상 발견] [대리 인계 예정 시각 09:00] 누군가 살아 있는 어른을, 이미 끝난 어린 시절로 데려가려 하고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26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2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