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영상이라고요?"
윤가은은 경비실 모니터 앞에서 재생 막대를 뒤로 끌었다. 영상에는 분명 민하린이 서 있었다. 비에 젖은 교문, 출입 금지 표지, 하린의 남색 가방까지 또렷했다. 그러나 화면을 정지시키자 날짜가 찢긴 종이처럼 일그러졌다.
[2026-10-28 00:01]
"미리 녹화해 놓고 날짜를 조작했을 수도 있죠."
"그럼 누가 이런 걸 여기서 틀고 있는 거예요?"
현우가 물었다.
"그걸 알아내러 가는 겁니다."
가은은 경비 직원에게 모니터의 외부 연결 여부를 물었다. 직원은 케이블을 뽑아 보였다. 화면은 꺼지지 않았다. 전원까지 내리자 검게 변한 모니터 위에 붉은 글자가 세 개 남았다.
[증인 필요]
가은은 그 문장을 수첩에 옮겼다.
"혼자 오지 말라는 말이 진짜 경고인지, 우리를 유인하는 문구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혼자 움직일 이유는 없죠."
***
구 서람초등학교는 시 외곽 재개발 예정지에 있었다. 학교를 둘러싼 아파트 단지는 공사가 중단돼 골조만 하늘로 드러나 있었다. 길가에는 분식집 간판이 반쯤 떨어져 있었고, 오래된 피아노 학원의 창문마다 신문지가 붙어 있었다.
학교 정문에는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한쪽 기둥에는 누군가 빨간 펜으로 '여기에는 일곱 명이 있었다'라고 써 두었다. 페인트칠로 덮은 흔적 아래 문장이 되살아난 듯했다.
"일곱 명."
현우가 중얼거렸다.
서태경이 낮게 말했다.
"일곱 번째 아이를 지켜 달라고 했다고 내가 말했죠. 저 학교에서였을지도 몰라요."
하린은 이번에는 요양원에 남겨 두지 않았다. 현우가 혼자 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했고, 하린 자신도 오겠다고 고집했다. 대신 가은이 정한 조건이 있었다. 혼자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부르지 않은 이름에 대답하지 않을 것, 교문 밖에서 기다릴 선택권이 있다는 것.
"들어갈래?"
가은이 물었다.
하린은 운동장 안쪽을 바라봤다. 여름이 지난 뒤 잡초가 자라 콘크리트 틈에서 키를 키우고 있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여기서 달리기 시합 했던 것 같아요."
"이십 년 전에?"
"그때도요. 그리고 아직도요."
아무도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
교실은 모두 비어 있었지만 일 층 맨 끝 방만 문패가 남아 있었다.
'기록실.'
문을 여니 칠판 하나와 책상 일곱 개가 놓여 있었다. 칠판에는 분필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06년 10월 28일.
책상 위에는 초등학생용 공책들이 있었다. 표지에 이름을 적는 칸은 모두 비어 있었다. 현우가 첫 번째 공책을 펼치자 귀퉁이에서 풀 냄새가 났다. 속지에는 날씨를 적는 숙제와 어설픈 그림이 이어졌다. 두 번째는 급식 반찬에 대한 불평, 세 번째는 발표를 하기 싫다는 낙서였다.
일곱 번째 공책의 첫 페이지에는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어제도 내가 있었다고 누가 말해 줄까?'
하린이 의자를 잡고 서 있었다. 손가락이 심하게 떨렸다.
"이거 제 거예요."
"이름이 없는데 어떻게 알아?"
현우가 조심스럽게 묻자 하린은 페이지 가운데를 가리켰다. 연필로 찍은 아주 작은 별 하나가 있었다.
"전 무서운 날에만 별을 그려요. 잘했다고 누가 칭찬해 주면 안 그려요."
가은은 나머지 공책들을 살폈다. 누구의 것인지 표시는 없었으나 모두 같은 날짜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상한 것은 여섯 번째 공책이었다. 마지막 날짜는 10월 27일. 마지막 문장에는 '소은이가 먼저 집에 갔다'고 적혀 있었다.
가은은 숨을 삼켰다.
"소은이."
현우가 그녀를 봤다.
"형사님, 기억나요?"
"모르겠어요. 이름이 익숙해요. 낯익다는 것뿐이에요."
그녀는 수첩에 그 이름을 적었다. 쓰고 나서야 손바닥에 식은땀이 흐른다는 걸 알았다. 오랫동안 잊은 가족의 이름을 찾을 때조차 사람은 확신할 수 없었다. 소은이가 동생일 수도 있고, 단지 오래된 같은 반 친구일 수도 있었다.
"증거 없이 정하지 않을 거예요."
가은이 스스로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복도를 따라가던 현우는 청소도구함 안에서 낡은 시간표 한 장을 발견했다. 국어, 수학, 미술. 매일 마지막 시간에는 '이름 쓰기'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한글을 가르치는 활동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 옆에는 아이들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안내가 있었다.
'어제 쓴 이름을 오늘 다시 확인할 것.'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서로를 잊는다면, 이름 쓰기는 단순한 숙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현우는 공책의 첫 페이지마다 같은 문장이 적혀 있는 이유를 이해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다음 날로 넘기기 위해 매일 출석부를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체육관 쪽에는 키를 재는 눈금이 남아 있었다. 한 칸에만 유난히 많은 연필 자국이 겹쳐 있었다. 보이지 않는 이름 하나가 여러 달 같은 높이에서 머물렀던 것이다. 하린은 눈금 앞에서 자꾸만 까치발을 들었다. 누구에게 보여 주려는 행동이 아닌 것 같았다. 손가락이 무심결에 옛 습관을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
"한 번만 더 재 봤으면 좋겠어요."
하린이 말했다.
"지금?"
"네. 이젠 더 컸잖아요."
가은이 벽에 연필로 현재 높이를 표시했다. 하린은 그 위에 조그마한 별을 그렸다. 눈금이 바로 없어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 한 번도 성장하지 못한 건 아니구나."
현우가 말했다.
하린은 볼을 부풀렸다.
"그게 위로가 되는 말인지 모르겠어요. 키가 자라야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미안해."
"그래도 오늘 새로 표시해 둔 건 좋아요."
가은은 하린이 스스로 꺼낸 말을 수첩에 적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든 지금 원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기록 그 자체보다 중요했다.
체육관 문을 닫으려는 순간, 바닥에 떨어진 사진 한 장이 현우 발에 걸렸다. 반쯤 타다 만 단체사진이었다. 누군가 불에 넣었다가 급히 꺼낸 듯 가장자리가 그을렸다. 구석에 소년 하나가 연필을 쥐고 서 있었다. 얼굴은 흐렸지만 손에는 황동 열쇠가 있었다.
현우는 사진을 주머니에 넣으려다 멈췄다. 수사에 쓰일 증거를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된다는 가은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사진이 놓인 위치와 주변 풍경부터 찍어 두었다. 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여기에 왔다는 흔적도 남겼어요. 이제 누가 이곳이 없었다고 해도 적어도 오늘은 확인할 수 있겠죠."
하지만 현우는 사진의 그을린 모서리 아래 새겨진 작은 글씨를 보았다.
'보관 금지. 복제 시 열람자의 기억과 교환.'
사진을 바라보던 그는 자신이 방금 체육관에 들어온 이유를 잠깐 잊었다.
***
열 시가 되자 복도의 형광등이 켜졌다.
분전함이 내려가 있는 학교였다. 복도 끝에서 장난감 발소리 같은 소리가 가까워졌다. 회색 제복을 입은 남자가 문밖에 섰다. 0번 승강장과 시장에서 봤던 회수 담당자였다. 그의 빈 이름표에는 새 글씨가 떠 있었다.
[원본 검증관 / 04]
"동행인 불허라고 안내해 드렸습니다."
가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현우 씨는 혼자 온 적 없습니다. 규정이 있다면 보여 주시죠."
남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줄 몰랐던 직원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원본 서명 검증은 서명자 단독으로 진행한다.'
가은은 종이를 가리켰다.
"이거 문서 번호도, 발행 주체도 없어요. 날짜도 없고요. 그리고 '진행한다'는 말이 동행인을 강제로 내보낼 수 있다는 근거는 아니죠."
제복의 남자는 처음으로 입술을 다물었다.
현우는 놀랐다. 지금까지 저들은 정해진 문구를 읽고, 정해진 결과를 통지하는 것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근거를 요구하자 설명을 하지 못했다.
"원본을 보여 주세요."
현우가 말했다.
"설명이 가능한 사람 앞에서 확인하겠습니다."
남자는 한참 동안 현우를 바라보다가 칠판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분필 날짜가 지워지며 검은 문장이 나타났다.
[2006-10-28 / 최초 삭제 명령]
[입력자: 이현우]
[대상: 민하린]
[상태: 승인 대기]
"명령이 발효되지 않았는데 왜 이십 년 뒤 재실행되는 거죠?"
가은의 질문에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우는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승인 대기.' 휴대전화에는 '처리 결과: 실패'라고 나왔었다. 처음부터 둘은 같은 뜻이 아니었다. 실행에 실패한 것과 아예 승인받지 못한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명령서를 누가 작성했습니까?"
현우가 물었다.
"입력자와 작성자가 다를 수 있습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처음으로 그가 스스로 질문에 맞는 답을 내놓았다.
"누가 작성했죠?"
"그 정보는 봉인돼 있습니다."
"봉인한 사람은요?"
남자의 입술이 옅어졌다. 빈 이름표가 잠깐 새하얗게 번뜩였다.
"증인 다수로 인한 권한 충돌이 감지되었습니다."
***
칠판 아래에서 책상 서랍 일곱 개가 동시에 열렸다.
첫 번째 서랍에는 동그란 금속 배지가 있었다. 두 번째에는 깨진 시계, 세 번째에는 동물 모양 지우개. 일곱 번째에는 절반만 남은 사진이 있었다. 현우는 사진을 꺼내 창문 쪽으로 비췄다. 어린아이 일곱 명이 운동장에 서 있었으나 얼굴은 모두 잘려 나가 있었다. 사진 한 귀퉁이에만 누군가의 손이 붙어 있었다. 작고 마른 손에 황동 열쇠가 들려 있었다.
하린이 조용히 말했다.
"이건 우리 반 단체 사진이에요."
"학교가 원래 있었던 거야?"
"아니요. 학교인 척하는 곳이었어요. 하지만 공부는 진짜 했어요. 도시락도 먹었고, 선생님한테 혼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제겐 학교였어요."
그때 복도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잘못했지."
모두가 돌아봤다. 낡은 갈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오십 대쯤으로 보였고, 오른손에는 손가락이 두 개뿐이었다. 여자의 머리 위에는 붉은 이름도, 회색 빈칸도 없었다. 대신 작은 검은 직사각형이 떠 있었다.
[증언 권한: 영구 박탈]
여자는 가은을 보고 말했다.
"윤 형사. 당신 동생을 찾으러 온 거라면, 저 아이들부터 만나서는 안 됐어요."
가은이 경계하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옛날엔 여기 담임이었어요. 이름은…… 정연실이라고 불러 주세요."
여자는 마지막 말을 하며 웃지 않았다.
"진짜 이름을 말하면, 이 학교가 다시 열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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