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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19화
PAYLUA ORIGINAL · 제119화

119화. 모두에게 다른 답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787자

오프라인 책장
선미는 잠을 포기한 얼굴로 아침 근무를 시작했다. 기록관 출입문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중앙망의 일괄 정리는 멈췄지만 주민들의 이름은 아직 화면에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오늘 통장을 만들 필요가 있었고, 누군가는 진료를 받아야 했으며, 누군가는 그저 이름이 적힌 증명서 한 장을 원했다. “오늘 안에 다 해결된다고 말할 수 없어요.” 선미가 직원들에게 말했다. “대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아직 안 되는지 정확히 설명합시다.” 현우는 안내석 옆에서 주민들의 말을 들었다. 사람들은 같은 증상을 겪어도 같은 해결책을 원하지 않았다. 이름을 드러내 달라는 사람 옆에, 아직은 숨겨 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둘 다 자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기록되기를 바랐다. 배정숙은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의 영업허가 확인만 먼저 복구해 달라고 했다. 과거 보호 사유는 전산 조회에 나타나지 않기를 원했다. 다른 남자는 모든 기록의 공개를 거절하면서도 자녀의 학교 긴급 연락처만 갱신하고 싶다고 했다. “서로 다른 요구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을까요?” 선미가 주영에게 물었다. “한 화면으로 보여 주려면 어렵지만, 각각의 허용 범위를 따로 기록하면 가능해요. 시험 단말기처럼 한 개의 참값에 다 넣지만 않으면요.” 주영은 어젯밤 검증한 독립 단말기 설계를 다시 펼쳤다. '본인 확인'과 '정보 공유 동의'를 분리하고, 항목별로 승인 대상을 지정했다. 정보가 없다는 답과 정보가 보호된다는 답도 구분했다. 운영사와 기록관이 함께 시험한 뒤 제한된 범위에서 사용하기로 했다. *** 유병철은 오후에 다시 기록관으로 왔다. 손에 낡은 수첩을 들고 있었다. 첫 장에는 어머니가 적어 준 그의 이름이 있었다. 나머지 페이지에는 아이가 태어난 날,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던 날, 군청에서 일하다 퇴직한 날이 적혀 있었다. “이것도 증명이 되오?” 그가 물었다. “삶 자체를 모두 문서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선미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 수첩을 가지고 오신 이유와 지금 하신 말씀은 기록해 둘 수 있어요. 공식 확인은 별도 원본과 대조하겠습니다.” 병철은 웃었다. “내가 바라던 건 내 말을 무조건 믿어 달라는 게 아니라, 확인할 길을 막지 말아 달라는 거였소.” 원본 대조에는 시간이 걸렸다. 주민 대피 당시의 수기 장부, 가족관계 서류, 병철이 직접 보관한 증명서가 서로 다른 날짜에 작성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선미는 그 결과와 본인의 현재 선택을 분리해서 입력했다. 병철은 일부 가족관계 조회를 허용하되 과거 보호 신청 사유는 계속 비공개로 두기로 했다. 오후 다섯 시, 회색 띠가 붙었던 병철의 화면에 이름이 나타났다. 유병철. 그 아래에는 새로운 문장이 붙었다. '본인 선택에 따른 제한 열람. 원본 확인 완료.' 현우는 자신의 눈으로도 그 이름을 보았다. 붉지 않은 평범한 글자였다. 병철은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가 종이 신청서를 조심스레 접었다. “이렇게 보니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구만.” “원래 특별하셨죠.” 선미가 말했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한 사람으로 돌려놓은 거요. 그걸로 충분하오.” *** 다른 여덟 사람의 사정은 제각각이었다. 이미 사망한 사람의 기록은 생존자의 승인으로 덮지 않고 별도 보존했다. 연락을 거부한 사람에게는 재확인을 강요하지 않았다. 주소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진 사람은 해당 지역 기관과 협조해 확인하도록 했다. 익명 보호를 원하는 사람은 이름의 공개 없이도 필요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했다. 명진은 기록관 복도에서 자신이 서명했던 옛 안내문을 바라봤다. 그 종이에는 '주민의 이름을 안전하게 보호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전 그 말이 무엇을 뜻해야 하는지 끝까지 지키지 못했어요.” 현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누구의 선택인지 구분하면 되겠죠. 책임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네. 조사에도 협조할게요.” 가은이 다가와 명진에게 참고인 조사 일정을 알렸다. 명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 밤이 되자 청리의 회색 띠 가운데 일부가 풀렸다. 모든 주민에게 같은 화면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공개를 원하지 않은 사람의 항목에는 '본인 요청 보호 유지'라고 표시됐고, 재확인이 필요한 항목에는 '열람 방법 안내'가 떴다. 현우는 그 차이가 이 도시가 회복되는 징조라고 생각했다. 하린은 정은채에게서 그림 한 장을 받았다. 아이는 학교 이름표를 단 자기 모습을 그렸다. 옆에는 다른 아이가 이름표 없이 서 있었다. 둘은 손을 잡고 있었다. “얘는 누구야?” 하린이 물었다. “내 친구. 이름표 안 다는 게 좋대. 그래도 친구야.” 하린은 그림을 현우에게 보여 주었다. 현우는 오래 바라봤다. 이름을 지키는 일은 모두에게 이름표를 붙이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부르게 할지, 조용히 간직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남겨 두는 일이었다. 그날 밤, 가은에게 영상 분석 결과가 전달됐다. '지역 00'에서 온 12초 영상의 배경에는 열두 지역 가운데 어디에도 없는 오래된 방송 호출음이 들어 있었다. 서람 사고 때 기록된 최초 음성과 주파수 패턴이 같았다. 가은이 현우에게 말했다. “누군가 20년 전의 기계를 아직 쓰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엔 열두 지역의 데이터가 아니라, 그 지역들에서 빠져나간 사람들을 접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우가 물었다. “열세 번째 지역입니까?” “아직은 이름을 붙이지 맙시다. 그 번호가 장소를 뜻하는지도 확인되지 않았으니까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적어 두는 일에서 다음 사건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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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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