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리군 합동점검실에는 사람보다 모니터가 많았다. 창밖에서는 바람이 가로수 잎을 흔들고 있었다. 현우는 누군가 준비해 둔 종이 명패를 보았다. 흰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현우 / 대리 확인 입회자.'
그는 명패를 뒤집었다.
“이 문구는 바꿔 주세요. 저는 아무도 대신 확인하지 않습니다.”
회의를 진행하는 중앙연계센터의 직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동 생성된 명패입니다. 형식에 불과해요.”
“형식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겁니다.”
가은이 개입했다.
“회의 출석부에는 증인으로 남기세요. 입회했다는 사실이 승인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도 명시하고요.”
직원은 종이를 가져가더니 새 명패를 만들었다.
'이현우 / 참관인.'
현우는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
회의에는 군청 담당자와 기록관, 응급의료정보센터, 중앙망 운영사 직원들이 참석했다. 정태운은 체육관 시험 장비의 로그와 점검서를 제출했다. 주영은 로그 복제본에 일치 검증값을 붙이고 작업 시각을 기록했다. 누군가 원본을 건드려도 변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대행 계정이 실제 사람에게 질문했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운영사 직원 강동윤은 화면을 넘겼다.
“응답 성공으로 표시돼 있습니다.”
“누가 응답했습니까?”
“장치 번호 000입니다.”
“그 장치에 사람이 상주합니까?”
“아니요. 신호 중계기입니다.”
“그럼 본인 확인이 아니라 신호 확인이네요.”
동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회의실 스피커에서 사전에 준비된 음성 파일이 재생됐다. 시험 단말기는 질문마다 똑같은 대답을 했다. '확인했습니다.' '확인했습니다.' '확인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이 '동의를 철회하시겠습니까?'였는데도 응답은 같았다.
선미가 고개를 숙였다. 현우는 누군가 이 장면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웃지 않았다. 화면 반대편 응급의료센터의 실무자는 얼굴이 굳은 채 말했다.
“우리 쪽은 이 값을 사람의 의사로 보고 연결 허용 여부를 결정했어요.”
주영이 로그를 가리켰다.
“핵심은 이겁니다. '확인했습니다'와 '동의합니다'는 다른 문장인데, 변환 단계에서 둘 다 참값으로 바뀌어요.”
“왜죠?”
“초기 시스템에 답변 종류를 저장하는 칸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 아니오를 묻는 질문도 아니었어요. 단지 통신이 됐느냐만 봤죠.”
가은은 수첩에 적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지우는 데 필요한 것은 악의적인 명령뿐만이 아니었다. 질문을 잘못 설계하고 그 잘못을 수정하지 않는 일도 충분했다.
***
점심 무렵 현우는 회의실을 나와 복도 끝 벤치에 앉았다. 하린이 종이봉투를 들고 왔다. 따뜻한 주먹밥 두 개와 식은 보리차가 들어 있었다.
“또 점심 거르려고 했지?”
“아니. 지금 먹으려고 나왔어.”
“그 말은 대개 믿을 수 없더라.”
현우가 웃었다. 하린은 옆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이름이 안 보이면 서로 모를 것 같았어.” 하린이 말했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오히려 계속 묻더라. 뭐라고 불러 드리면 되냐고.”
“모르는 건 물을 수 있으니까.”
“그럼 오빠도 물어.”
“뭘?”
“누가 무서워지는지. 시스템 말고 사람한테.”
현우는 주먹밥 포장을 뜯었다. 그는 언제나 숫자가 줄어드는 화면을 보며 가장 빠른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 해답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위험일 수 있다는 것을 자꾸 잊었다.
***
오후 회의에서 운영사가 대안을 제시했다. 일괄 계정 분리를 하루 중단하고, 아홉 명의 당사자를 새 데이터베이스에 임시 등록하자는 안이었다. 문제는 임시 등록 과정에서 이름과 과거 보호 사유를 전부 공유 서버에 올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건 안 됩니다.” 선미가 먼저 말했다. “일부 사람은 보호 사유를 비공개로 하기로 직접 선택했습니다.”
동윤이 반박했다.
“대안 없이 막기만 하면 서비스가 멈출 수 있습니다.”
현우가 입을 열었다.
“원본을 열람할 권한을 그 사람에게 돌려주면 안 됩니까? 여기 서버가 아니라 청리 기록관의 독립된 단말기로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주영이 손을 들었다.
“가능성을 검토해 볼 수는 있어요. 다만 이틀 안에 완성하려면 연계망을 끊는 게 아니라 확인값이 어디서 오는지 바꿔야 해요. 읽기 전용 검증과 권한 분리 테스트가 먼저입니다.”
가은이 말했다.
“기술 방안이 확보되기 전까지 자동 정리 명령을 중단시킬 법적 근거도 함께 준비하죠.”
그때 스크린이 번쩍였다. 회의실 입장자 명단이 자동으로 갱신됐다.
[참관인 이현우 — 입회 확인]
[대행 승인 조건 충족]
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는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가은이 화면을 촬영했다. 주영은 시스템을 멈추기 전에 먼저 명령의 출처를 기록했다. 화면 아래의 작은 글씨가 깜빡였다.
[출석=수락 / 규칙 적용 지역: 청리 외 11곳]
현우는 자신이 하는 일이 청리 하나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지금 이 자리의 침묵까지도 다른 열한 지역의 동의로 바뀔 수 있었다.
제11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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