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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11화
PAYLUA ORIGINAL · 제111화

111화. 이름이 보이지 않는 도시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625자

오프라인 책장
문자의 발신 번호를 조회한 가은은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야 현우에게 전화했다. “지역 번호는 청리군이에요. 열두 번째 지역이 맞습니다. 그런데 문자를 발송한 사람의 이름을 특정하지 못했어요.” “번호가 없는 겁니까?” “번호는 있어요. 가입자 조회에는 이름 대신 공란이 뜹니다. 오래된 공중전화도 아닌데요.” 현우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제 밤늦게 하린과 함께 접은 종이배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잠깐 배를 만지다가 손을 뗐다. 이 이상한 일이 시작된 뒤로 남의 이름을 보는 것과 자기 이름을 기억하는 일은 별개가 되어 버렸다. 서람에서는 붉은 이름이 경고였다. 청리에서는 어떤 이름도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다. 설명만 들으면 평화로울 수 있지만, 현우는 그런 침묵을 믿을 수 없었다. 가은이 말을 이었다. “현지 기록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보내신 분은 유선미 씨. 본인 이름은 정상적으로 기억하고 있고요. 그런데 그곳의 안내 화면과 등록 전산망은 두 달 전부터 성명을 가리기 시작했답니다.” “모든 주민이요?” “정확히는 주민 목록을 조회할 때요. 주민등록증 같은 원래 서류에는 이름이 있는데, 연계망에서 이름란만 사라진대요. 그리고 지금은 병원과 학교까지 번졌답니다.” 현우는 창밖을 바라봤다. 학생들이 버스 정류장에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불렀고, 불린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너무 당연해서 별 의미를 주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가야겠네요.” “무작정 가지는 마요. 서람 사건에서 얻은 자료도 아직 수사 중이에요. 정식 협조를 받아 갈 겁니다.” 현우는 가은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안심했다.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그 역시 남의 선택을 대신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증거와 동의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 이틀 뒤, 청리행 시외버스 안에서 하린이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현우는 동행을 반대했지만 하린은 먼저 유선미에게 연락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실종된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됐다는 호소를 들은 것이다. “난 현장에 안 들어갈 거야. 숙소에 있으면서 연락만 연결해 줄게.” 하린이 약속했다. “그 약속은 꼭 지켜.” “오빠도.” 그 한마디에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은은 청리군청 앞에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 지역 기록관 직원 유선미는 검은 우산을 들고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었다. “여기선 우산이 필요 없는데요.” 현우가 말했다. “제가 누군지 보여 주기 위해서예요.” 선미는 웃지 못했다. “제 이름이 검색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저를 검은 우산이라고 불러요. 관공서에 다니는 여자가 많으니까, 그나마 구분하려고요.” 그녀는 출입증을 내밀었다. 플라스틱에는 얼굴 사진과 사번이 있지만 성명 칸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인쇄를 잘못한 게 아닙니다. 석 달 전에는 이름이 있었어요.” 현우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문자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보통은 머리 위에 희미한 글자가 떠오르고, 소멸 예정자에게만 붉은 표시가 생겼다. 그런데 선미의 머리 위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표시해야 할 자리를 누가 도려낸 듯했다. 그는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택배 기사, 아이의 손을 잡은 어머니, 경비실에서 나오던 노인. 모두 같았다. 붉은 이름도, 평범한 이름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그게 이상한 건가요?” 선미가 물었다. 현우는 답하지 않았다. 일반인에게는 언제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눈에까지 공란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청리의 문제가 단순한 전산 오류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 기록관 민원실에서는 한 노인이 번호표를 꼭 쥔 채 서 있었다. 직원이 세 번째로 같은 질문을 했다. “고객님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유병철이요. 쉰 해 동안 그 이름으로 살았소.” 직원은 조심스레 모니터를 돌렸다. 주민 조회 화면에는 사진과 생년월일이 있었다. 하지만 성명란에 붙은 회색 띠에는 '보호 중'이라고만 표시돼 있었다. “이름을 확인할 수 없어서 가족관계 증명서를 발급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이름을 말하고 있잖소.” “저도 알아요. 그런데 시스템에서 승인하지 않으면 출력이 안 됩니다.” 노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우는 그 말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몸을 굳혔다. 이름이 붉게 변한 사람을 구하려고 달려다닐 때도, 그는 적어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눈앞의 사람이 살아 있어도 절차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었다. 선미가 낮게 말했다. “이런 일이 매일 생깁니다. 주민들은 처음엔 개인정보 보호가 좋아진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학교 출석도, 병원 진료도, 재난 대피 명부도 이름을 못 부르게 됐어요.” “원본 서류는 보존돼 있죠?” 가은이 물었다. “네. 다만 열람하려면 연계망 승인값이 필요해요.” 가은이 시선을 올렸다. “누군가 문을 잠가 놓고,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도 안쪽에 둔 거네요.” 그때 민원실 천장에서 짧은 안내음이 울렸다. 모니터의 회색 띠들이 일제히 어두워졌다. 유병철의 화면에 한 문장이 새로 나타났다. [보호 기한 만료까지 71:59:59] 현우의 목덜미가 차가워졌다. 청리에는 붉은 이름이 없었다. 대신 보이지 않는 이름마다 서로 다른 시한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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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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