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분소 철거 예정지는 서람시 외곽의 공터였다. 임시 기관으로 지었던 낮은 조립식 건물은 오래전에 기능을 잃었다. 건물 앞에는 철거 업체가 세운 안전 펜스가 둘러져 있었다. 밤새 비가 내린 탓에 바닥은 진흙투성이였다.
현우는 당장 달려가 문을 열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눌렀다. 가은은 시설 소유 기관에 연락해 유물 보존과 수사 자료 확인을 이유로 임시 작업 중단을 요청했다. 철거 업체 책임자는 이미 인력과 장비를 배치했다며 난색을 보였다.
“승인 공문 없이는 멈추기 어렵습니다.”
“그럼 승인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며 자료를 찾을 생각은 없습니다.”
가은은 전화기를 붙든 채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새벽 내내 주영은 기관의 보존 규정을 확인했고, 나경은 정보 공개 청구와 관련된 취재 자료를 제출했다. 현우는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분소의 담장을 바라봤다. 아무도 없는 건물에 스무 해 전의 시간이 여전히 붙들려 있다는 것이 기묘했다.
날이 밝아오자 작업 중지 공문이 도착했다. 철거 장비는 엔진을 끄고 대기했다. 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문을 열기 전에 멈추라는 신호를 제대로 들었네요.”
가은이 짧게 웃었다. “무턱대고 밀고 들어가지 않는 게 가끔은 가장 빠른 길이에요.”
***
소라는 시설관리인과 함께 안전 점검을 마친 실내로 들어갔다. 그녀가 기억하던 책상과 배치는 대부분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벽 한쪽에는 예전 배전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접수대장을 넣은 곳이 저 안이에요.”
“전기 설비 안에 서류를 뒀다고요?” 주영이 물었다.
“빈 금속함을 보관함으로 쓰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는 그것도 규정 위반이었겠죠.”
가은은 전원이 차단됐다는 시설관리인의 확인을 받고 금속함을 열었다. 안에는 비닐에 싸인 얇은 장부와 출근 카드 묶음이 들어 있었다. 표지는 물에 젖어 부풀었지만 글씨는 남아 있었다.
[임시 대응 분소 접수대장]
소라가 장부 첫 페이지를 넘겼다. 자신이 적은 숫자와 시각이 나타났다. 18:16 압력 해소 보고, 18:17 C-1 송출 요청, 18:18 추가 확인 필요. 그리고 한 줄.
'18:24 하부 대피 완료. B-2 중지 재요청.'
현우가 숨을 들이켰다. 그들은 여섯 시 스물셋 분 전후에 사람들이 대피를 끝냈다는 추정을 이미 얻었다. 이제 당시 분소에서도 그 사실을 알았다는 기록이 나왔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 이후에도 방송이 유지된 이유를 밝혀야 합니다.” 가은이 말했다.
주영은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18:26이라는 시각 옆에 붉은 펜으로 사선이 그어져 있었다.
'02석 — 접수 완료.'
그러나 서명 칸은 비어 있었다.
“또 빈칸이군요.” 현우가 말했다.
그때 소라가 공책을 꺼내 같은 시각에 자신이 남긴 글씨를 보여 줬다.
'02석 무응답. 발신 재시도.'
같은 시각을 두 종이가 다르게 기록하고 있었다.
***
오전 열 시, 가은은 장부 전체를 압수하지 않았다. 우선 소유 기관과 협의해 원본을 보존 조치하고, 열람에 필요한 부분만 법적 절차에 따라 확보했다. 장부를 누가 보관했고 언제 마지막으로 확인했는지 남겼다. 소라는 자신이 처음으로 그날의 기록을 공식적으로 증언할 수 있게 됐다는 말에 눈가를 훔쳤다.
잠시 뒤 분소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작업 중지 사실을 통보받지 못한 하청 업체 차량 하나가 진입하려던 것이다. 현우가 본능적으로 달려 나가자 가은이 그의 팔을 잡았다.
“도로로 들어가지 마요. 안전 담당자가 처리할 겁니다.”
현우는 멈췄다. 어린 시절 그는 문을 지키려 혼자 앞으로 뛰어가던 아이였다. 이제는 사람을 구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던지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배웠다.
업체 차량은 유도원의 지시에 따라 돌아나갔다. 위기는 소란으로 끝났다. 하지만 현우는 손이 떨렸다. 복도의 문이 닫히던 소리가 아직도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현우는 분소를 나서기 전 금속함 앞에 잠깐 섰다. 소라는 장부를 집어넣은 뒤 빈자리의 존재를 여러 해 동안 견뎠다. 반면 그는 빈자리를 견디지 못해 현장을 뛰어다녔다. 둘의 방법은 달랐지만, 누군가 남겨 둔 흔적이 결국 여기까지 사람들을 데려왔다.
주영이 장부의 첫 페이지를 접지 않도록 얇은 받침대를 끼우고 있었다. 소라는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더니 말했다.
“그때는 종이가 제일 약한 줄 알았어요. 다 젖고 찢어지니까요.”
현우가 물었다. “지금은요?”
“사람한테 묻지 않는 기록이 더 약하다는 걸 알아요. 보기엔 반듯해도 잘못됐다는 말을 아무도 못 하니까.”
현우는 분소를 떠나기 전 소라에게 물었다.
“이 장부를 왜 여기에 숨겨 두셨어요?”
소라는 젖은 신발 끝을 내려다봤다.
“그날 저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어요. 하라는 대로 받아 쓰기만 했죠. 그래서 적어도 내가 받은 말만큼은 없어지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연락하지 못한 이유는요?”
“무서웠어요. 누군가 제 잘못이라고 할까 봐. 사실 지금도 무섭습니다.”
현우는 소라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녀에게 대단한 용기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두려웠다는 말을 그대로 남겨 두는 일이었다.
***
그날 오후 가은에게 공문 하나가 도착했다. 중앙 분소 02석의 접수 이력을 사후 검증한 결과였다. 사고 당일 실물 근무 카드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세준.'
오세준은 전산화 사업 당시 외주 검수 총괄을 맡았던 사람과 동일한 이름이었다. 열세 해의 간격을 두고 같은 이름이 나타났다.
“같은 사람일까요?” 현우가 물었다.
“이름이 같다는 것만으로 확정하면 안 됩니다.” 가은은 신분 확인 요청서에 표시를 했다. “하지만 확인할 근거는 생겼어요.”
그때 주영의 화면에 낯선 창이 떴다.
[운영 02: 자격 증명 재발급 시도]
[사유: 원본 서명자 복원]
[복원 요청 대상: 오세준]
주영은 화면을 캡처한 뒤 연결을 끊었다.
“누군가 또 빈칸에 이름을 넣으려고 합니다.”
현우는 장부의 공란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시스템이 찾아 준 이름이라고 해서 그대로 믿지 않기로 했다.
그날 밤 가은에게서 마지막 연락이 왔다.
“오세준 씨의 신분을 확인했습니다. 이 사람은 두 명이에요. 같은 이름, 다른 생년월일.”
현우는 잠깐 눈을 감았다.
또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이름을 누군가에게 붙여 버리지 말아야 했다.
제10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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