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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08화
PAYLUA ORIGINAL · 제108화

108화. 아래층의 사람들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936자

오프라인 책장
“어린 사람이라면 몇 살쯤이었나요?” 가은의 질문에 소라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열대여섯 살 같기도 하고, 스무 살쯤 같기도 했어요. 그날 다들 너무 긴장해서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을 수 있습니다.” 가은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지 않은 목격을 확실한 증거로 바꾸지 않는 태도. 현우는 그 조심스러움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주영은 '아래쪽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20년 전의 하부 수로 도면을 펼쳤다. 대피소 아래에는 좁은 정비 통로가 하나 더 있었다. 지도에는 사람 통행 금지 구역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사고 기록에는 통로를 통과해 대피하던 주민 다섯 명이 있었다. “수문 문을 바로 열면 대피소는 안전해질 수 있지만, 아래쪽 통로에 갑자기 물이 쏟아질 위험도 있었네요.” 주영이 말했다. “그러니까 잠금을 해제하는 일도 무조건 옳았다고 볼 순 없겠군요.” 현우가 중얼거렸다. 가은은 도면을 접었다.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결정했어야겠죠. 어느 쪽 생명이 더 중요한지 컴퓨터가 혼자 정하는 일이 아니라.” 현우는 현장에 있던 아이들이 공포 속에서 기다리던 시간을 떠올렸다. 아래쪽 주민들도 같은 시간 어둠 속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숨이 막혔다. 하나의 문을 열고 닫는 데 얽힌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어린 시절 알지 못했다. *** 하부 통로의 출입구는 지금도 남아 있었다. 폐쇄된 정비 창고 뒤편으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이었다. 가은은 시설관리인의 입회 아래 접근했고, 물이 고이지 않은 지상 출입부에서만 당시 설비를 확인했다. 위험한 통로 안으로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벽에는 오래된 높이 표시선이 남아 있었다. 아이 손바닥만 한 붉은 선 위에 물자국이 그어져 있었다. 현우가 오래 바라보자 시설관리인이 말했다. “저 선보다 물이 올라가면 아래 통로는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때마다 위쪽 차수판부터 닫아야 해요.” 주영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선의 높이와 펌프의 작동 시간, 사고 당일의 실제 수위를 대조하면 문을 열 수 있던 시각을 조금 더 좁힐 수 있을 터였다. 그때 계단 위에서 누군가 말했다. “그 선은 원래 더 위에 있었어요.” 검은 우산을 접은 노인이 서 있었다. 관리인은 그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는 당시 하부 통로의 주민 대피를 도왔던 자원봉사자 최병환이었다. “복구 공사하면서 페인트를 다시 칠했어요. 제가 기억하는 선은 저기 한 뼘 위였죠.” 주영은 사진만으로 내렸던 잠정 추정을 고쳐 적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에는 찍혀도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사람은 오래 지나도 기억하는 것들이 있었다. 둘 중 하나만 믿어서는 안 됐다. 병환은 오래된 손전등을 꺼냈다. 렌즈 부분에 금이 가 있었다. “그날 아래에 있던 다섯 명 중 한 사람은 다리가 불편했어요. 제가 등을 받쳐 올렸습니다. 마지막 사람이 밖으로 나온 게 여섯 시 스물세 분쯤이었어요.” “시각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가은이 물었다. “위로 올라오자마자 버스 기사에게 전화했거든요. 통화 내역은 아마 없겠지만 그때 정류장 방송이 여섯 시 이십오 분이었습니다.” 병환은 서둘러 자신을 믿어 달라 하지 않았다.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을 함께 내밀었다. *** 현우는 지상 출입구를 돌아 나가다가 금이 간 손전등을 든 병환을 다시 만났다. 노인은 손전등이 여전히 켜지는지 보여 주려고 버튼을 눌렀다. 불빛은 약했지만 확실했다. “저건 왜 아직 가지고 계세요?” “불이 켜져서요.” 병환이 말했다. 현우가 웃자 병환도 웃었다. 하지만 노인은 곧 진지해졌다. “그날은 이 불빛으로 앞사람의 등을 보고 따라갔어요. 사람 이름은 다 몰랐습니다. 이름 몰라도 손은 잡을 수 있었거든.” “그날 같이 나오신 분들을 지금도 아세요?” “몇 명은요. 어떤 분은 다른 도시로 가셨고, 어떤 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도 누가 멀쩡히 살아 나왔는지보다, 다 나왔는지 먼저 세었습니다.” 현우는 그 말을 듣고 스무 해 전의 분소가 무슨 기록을 남겨야 했는지 떠올렸다. 누가 얼마나 멋진 결정을 내렸는가가 아니라, 기다리던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았는가를 확인하는 기록. 그날 밤 주영은 정비 일지와 버스 운행 기록을 대조했다. 하부 통로 대피가 끝난 시점이 여섯 시 스물셋 분 전후라는 사실에는 여러 자료가 맞아떨어졌다. 대피소 문이 열린 시각은 여섯 시 사십칠 분. 그 사이에도 스무 분 넘는 공백이 있었다. “이제 위험이 끝난 뒤 얼마나 기다렸는지 따져 볼 수 있겠네요.” 현우가 말했다. “예. 다만 실제 문을 여는 데 필요한 확인 시간도 계산해야 합니다.” 주영이 답했다. 유리는 중계기의 반복 방송 기록을 다시 복원했다. B-2 지시는 여섯 시 스물다섯 분에 한 번 더 방송됐고, 스물아홉 분에도 반복됐다. 반면 C-1 기록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가은은 두 시각을 보며 말했다. “아래쪽 주민들이 모두 나왔다는 보고가 전달되지 않은 겁니다.” 바로 그때 주영이 받은 자료에 새로운 문장이 붙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들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답을 내놓는 듯했다. [하부 대피 완료의 사후 입력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입력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영이 마우스를 내려놓았다. “지금 이건 누가 보내는 메시지일까요?” 현우는 대답하지 않고 화면에서 숫자 하나를 찾았다. 맨 아래에 익숙한 코드가 있었다. [운영 02] 그는 이제 그 코드를 괴물의 이름처럼 읽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떠올렸다. 빈자리라고 해 놓은 곳을 누가 여태 살아 있는 자리처럼 사용하고 있는가. 그때 소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오전에 중앙 분소가 철거됩니다.” “네?” “그 안에 제가 남긴 원본 접수대장이 있어요. 전산화할 때 빠뜨린 종이들이요. 그걸 잃으면 다시는 그날 누가 무엇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없어요.” 현우는 벽시계를 보았다. 밤 열한 시 사십일 분이었다. 철거까지 열 시간 남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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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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