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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07화
PAYLUA ORIGINAL · 제107화

107화. 마지막 교대 근무자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860자

오프라인 책장
자료 제공자는 다음 날 낮에 작은 카페로 나오겠다고 했다. 조건이 있었다. 카메라나 녹음기를 들고 오지 말 것. 자신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 것. 조사 기록을 공식 절차에 제출할 때에는 먼저 내용을 확인시켜 줄 것. 가은은 가능한 조건과 불가능한 조건을 나눠 답했다. 안전을 위해 동행자는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고, 범죄 정황이 확인될 경우 모든 비밀을 무조건 지켜 줄 수는 없다고 했다. 답은 저녁이 돼서야 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 주세요.' 카페는 고가도로 아래에 있었다. 문을 밀자 작은 종이 딸랑거렸다. 현우는 그 소리에 잠깐 발을 멈췄다. 종소리 하나에도 스무 해 전 관제실을 떠올리게 됐다는 사실이 싫었다. 창가에는 서른아홉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소매가 닳은 작업 점퍼를 입었다. 탁자 위에는 오래된 버스 정기권과 손바닥만 한 공책이 있었다. “저는 윤소라입니다.” “중앙 분소에 계셨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임시 사무 보조였습니다. 전화 받아 적고, 전송 확인하고, 근무표를 바꾸는 일을 했어요. 정식 당직자 명단에는 없었습니다.” 현우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어떤 특별한 흔적도 없었다. 스무 해 전 누군가의 생사를 나누던 문장 근처에 있었던 사람치고는 평범해 보였다. 그래서 더 실제 같았다. 소라는 먼저 공책을 펼쳤다. 그 안에는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약어와 시각이 빼곡했다. “열여덟 시 열여섯 분. 저는 압력 해소 보고를 받았어요. 현장 직원이 문을 열어도 되는지 재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는요?” “C-1을 송출 요청했습니다.” “받은 사람은 누구였나요?” “02 근무석이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자리 번호였어요.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은 교대할 때마다 바뀌었습니다.” 주영이 메모를 멈췄다. 오늘날 운영 02가 한 사람처럼 명령을 내리는 이유가 더욱 기묘해졌다. “그날 02석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소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도 그게 이상했어요. 첫 교대 시간에는 정식 근무자가 앉아 있었는데, 사고가 터졌을 때엔 빈자리였어요.” “빈자리였는데 어떻게 수신 확인이 됐죠?” “전화기 옆에 발로 누르는 페달이 있었어요. 긴급 방송 수신 확인 버튼이죠. 그걸 누르면 담당자 확인 없이도 송출 요청이 다음 단계로 넘어갔어요.” “누군가 페달을 눌렀군요.” 현우가 말했다. “예. 그런데 제가 봤을 땐 아무도 없었어요.” 소라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기계가 저절로 눌렀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냥 제가 못 봤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때는 어두웠어요. 정전 직후였으니까요.” *** 소라는 앞에 놓인 커피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컵이 살짝 흔들려 받침에 갈색 원이 남았다. 현우는 자신이 그 무늬를 유심히 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시선을 거뒀다. “제가 어제 잠을 못 잤어요.” 소라가 말했다. “누군가 제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이름을 하나 잘못 말해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생각하게 돼요.” 가은은 수첩을 덮었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시면 됩니다. 다른 자료로 확인할 겁니다.” “그러면 저도 그냥 모른다고 말해도 됩니까?” “물론이죠.” 소라는 그제야 커피를 마셨다. 무거운 증언을 하러 나온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다 털어놓으라'는 명령이 아닐 수도 있다고 현우는 생각했다. 소라는 사고 뒤 사직했다. 퇴직하면서 몇 장의 서류를 챙겨 나왔지만 누구도 그녀의 증언을 묻지 않았다. 몇 년 뒤 전산화 사업 담당자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는 '분소 근무자 불명'이라고 적힌 서류에 확인 서명을 해 달라는 요청뿐이었다.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가은이 물었다. “제가 모르는 일이니까요. 모르면 모른다고 적어야 하는데, 그 사람들은 일단 빈칸을 없애야 한다고 했어요.” 현우는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의 09번 기록도, 하린의 겹쳐진 이름도, 그런 빈칸에서 시작됐다. “그때 바로 말했으면 누군가를 더 빨리 구할 수 있었을까요?” 소라가 물었다. 현우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 말씀해 주신 건 중요합니다.” 소라가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대답보다.” *** 카페 밖으로 나와 보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라는 우산을 펴다가 문득 돌아섰다. “참, 한 가지 더 있어요. 그날 제가 C-1을 보내려 할 때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내선 번호였어요.” 가은이 걸음을 멈췄다. “무슨 말을 하던가요?” “종이봉투 하나를 그 자리에 놓고 가라고 했어요. 담당자가 없는 자리였는데도요.” “무슨 봉투였습니까?” “제가 받아 적은 현장 확인서요. 누가 열어 볼지도 모르는 02석에 두기 싫어서, 봉투 겉면에 번호를 썼어요.” 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10이었습니까?”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 번째로 도착한 전달물이었어요. 사람 이름이 아니고요.” 그리고 아주 작게 덧붙였다. “제가 그 봉투를 두고 돌아섰을 때, 분명 누가 뒤에서 물었습니다.” '이걸 지금 보내면, 아래쪽 사람들은 어떻게 되죠?' 소라는 빈 우산 끝을 내려다봤다. “저는 그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누구였는지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현우는 자신도 그 말을 10번 봉투에서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소리는 지금까지 복원한 음성의 앞부분에 있었다. 그들이 찾는 사람은 봉투를 받는 자리에 있었고, 같은 시간 누가 위험해지는지를 묻고 있었다. 소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더 무서웠던 건요. 그 목소리가 저보다 훨씬 어린 사람의 것처럼 들렸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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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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