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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06화
PAYLUA ORIGINAL · 제106화

106화. 누가 대신 대답했는가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684자

오프라인 책장
배윤석이 낸 공개 이의 신청은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10번 봉투의 녹음은 당분간 인터넷에 올라가지 않게 됐다. 언론에서 진실을 숨기려는 조치라고 비판했지만, 가은은 성급한 공개가 오히려 조사를 망칠 수 있다고 봤다. “목소리를 공개하면 온 동네가 그 사람을 찾아다닐 겁니다. 틀린 사람을 지목했을 때 되돌리는 건 쉽지 않아요.” 나경은 취재 노트를 닫고 말했다. “기사로는 원본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열람이 보류된 이유까지만 쓰겠어요. 대신 기관이 왜 C-1을 송출하지 않았는지는 계속 질문할 겁니다.” 현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예전 같으면 모든 자료를 하루빨리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 사라질 사람을 구한다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퍼뜨릴 순 없었다. *** 주영은 윤석의 팩스와 중앙 분소의 목차를 대조하다가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발견했다. [운영 02: 수신 확인 대행] “대행이란 말이 걸립니다.” “누구 대신 확인했다는 건가요?” 현우가 물었다. “그걸 모르죠. 개인 대신인지, 기관 대신인지, 자동 응답 대신인지.” 그는 열세 해 전 전산화 사업의 지침서를 펼쳤다. 오래된 종이 기록을 새 시스템에 옮길 때 담당자 이름이 비어 있으면, 컴퓨터는 업무 코드를 '승인 주체'로 읽었다. 사람 한 명이 확인했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는지 구분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구조였다. “02가 이 사고의 지시자처럼 보이는 건 그 때문일 수도 있어요.” 가은이 물었다. “그럼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관리자 02는?” “원래부터 한 사람의 권한이었다기보다, 빈 서명을 처리하려고 만든 계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힘을 가진 거죠. 누가 그 계정에 기능을 붙였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고요.” 현우는 온몸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자신에게 ‘대기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워 버리려던 존재가 실은 비어 있는 책임란에서 자라난 것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동안 벌어진 일이 덜 무서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 오후 네 시, 구 기록관의 박동규에게 전화가 왔다. “제가 어제 이름표가 빈 사람이잖습니까. 기억하시죠?” “물론이죠.” 현우가 대답했다. “오늘은 출근 카드에서도 제 이름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퇴근 처리를 하니까 누가 대신 승인했다고 뜨더군요.” 가은이 곧장 통화에 합류했다. “어떤 계정이 승인했습니까?” “운영 02요.” 동규의 목소리가 떨렸다. 기록 오류라고 생각한 일이 자신의 하루를 대신 결정하고 있었다. “저는 오늘도 아침부터 민원 세 건을 처리했는데, 전산에는 그 기록이 다른 직원 이름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내일 출근하면 제 자리가 없다고 할까 봐 겁이 나요.” 현우는 대답을 고르느라 잠깐 침묵했다. 사라진다는 것이 꼭 건물에서 몸이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었다. 자신이 한 일을 아무도 자기 일이라고 부르지 못하면, 사람은 살아 있으면서도 지워진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오늘 하신 일은 저희가 봤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직접 적은 기록도 있습니다.” “그걸로 됩니까?” “다 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적어도 혼자 증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길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가은은 그에게 수기 출퇴근 기록을 남기고 상급자 확인을 받게 했다. 주영은 시스템에서 자동 승인 기능을 중지할 수 있는지 기관 담당자와 협의했다. 즉시 되돌릴 수 있는 문제와 법적 검토가 필요한 문제를 분리해야 했다. 그런데 오후 여섯 시, 동규의 개인 휴대전화에도 알림이 떴다. [오늘 귀하가 기록관에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제가 여기 서 있는데요.” 동규가 말했다. 현우는 기록관 창문 너머의 그를 바라봤다. 이름 없는 사람을 만들어 놓고 그 사람이 일을 하지 않았다고 판정하는 시스템. 분명 이번 사고의 원형과 닮아 있었다. 그날 밤, 현우는 동규가 손으로 쓴 출퇴근 기록을 사진으로 찍어 저장했다. 단지 증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오늘 실제로 일했다는 사실을 적어도 현우 자신은 기억하고 싶었다. 사진을 저장하자 낯선 알림이 나타났다. [대체 인증 실패] [미승인 당사자 진술이 존재합니다.] 주영은 화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동안 자동 승인만 받던 시스템이, 사람의 직접 진술을 반려하지 못한 겁니다.” “동규 씨가 직접 말했다는 것 하나 때문에요?” “그게 중요한 차이인 것 같아요. 기록 시스템은 스스로 만들어 낸 답을 서로 확인하며 돌아갔는데, 자기 손으로 쓴 말은 그 고리 바깥에 있거든요.” 현우는 곧바로 희망을 품지 않았다. 앞선 사건에서도 종이 원본 하나로 모든 일이 해결되진 않았다. 그러나 더는 보이지 않는 계정 하나가 사람의 하루를 대신 대답하게 둘 필요는 없었다. 늦은 밤, 주영에게 오래전 중앙 분소의 당직 일지가 한 장 전달됐다. 익명 자료 제공자가 보낸 스캔본이었다. 맨 아래에는 펜으로 그은 취소선이 있었다. '18:16 조건 해소 보고 접수.' 그 다음 줄에는 '18:17 수동 재확인 요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둘 다 송출 기록에는 없는 문장이었다. 현우가 말했다. “C-1은 애초에 보내지지 않은 게 아니라, 누군가 보냈는데 지워진 걸 수도 있겠네요.” 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익명 제공자의 메시지가 한 줄 더 나타났다. '내가 받았어요. 하지만 그날은 보냈다고 말할 수 없었어요.' 현우는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처음으로 번호가 아니라 '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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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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