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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04화
PAYLUA ORIGINAL · 제104화

104화. 열리지 않은 문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714자

오프라인 책장
배윤석은 가은의 연락을 받고도 사흘 동안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사건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고, 다시 돌아보고 싶은 기억도 아니라는 이유였다. 가은은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공개 자료와 원본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리고, 원하는 때에 서면으로 답할 수 있는 연락처를 남겼다. 그날 저녁 윤석에게서 한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낡은 주황색 경보 버튼이었다. '이 버튼이 눌렸는지부터 확인하십시오. 제가 아는 건 그것뿐입니다.' 현우는 사진을 보자 지난 수문 도면을 떠올렸다. 외부 차수판 점검실에 그려져 있던 작은 사각형. 두 번의 작업 중단 경고와 연결된 수동 경보였다. 가은과 주영은 다시 시설 기록을 검색했다. 버튼이 눌리면 문을 즉시 열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하부 수로의 수위와 압력이 확인될 때까지 잠금 상태를 유지하고 작업자를 대피시키라는 임시 절차였다. 문제는 그 확인이 끝나면 어떤 일이 이어져야 하는지였다. “다음 단계가 있어야 하는데요.” 주영이 말했다. “확인 후 잠금 해제 책임자가 누군지 기록이 없습니다.” “그럼 문을 잠그라고 한 사람이 있는 것과, 열어야 할 때 열지 않은 사람은 다를 수 있겠네요.” 현우가 말했다. 가은은 작은 수첩에 두 질문을 따로 적었다. '누가 잠금을 명령했는가.' '누가 잠금 해제를 보류했는가.' “첫 번째만 해결하면 두 번째를 놓쳐요.” *** 가은은 관제실과 대피소의 도면을 바닥에 펼쳤다. 현우는 복도 끝에서 문까지 이어지는 점선을 바라봤다. 다섯 살의 자신이 그 길을 걸었는지, 뛰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그 기억을 분명하게 만들려고 수십 번 애썼지만, 애쓸수록 어린 자기 모습은 텅 빈 복도와 섞여 갔다. “제 기억 속에는 문손잡이가 제 키보다 훨씬 위에 있어요.” “당시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겠죠.” 가은이 말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손잡이가 제 손 높이에 있더라고요.” “기억은 자라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가 있대요. 지금의 우리가 그 기억을 어떻게 다룰지는 또 다른 일이겠죠.” 현우는 한참 문 그림을 내려다봤다. 옆에 있던 하린이라면 아마 그 문 옆에 자신이 서 있던 위치부터 물었을 것이다. 소멸에서 살아 돌아온 뒤 그는 모든 장소에 자신을 증명하는 표시를 남기고 싶어 했었다. 이제 그 욕구가 다른 사람의 잘못된 기억까지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 알았다. 그들은 사고 당일 대피소에서 구조됐던 아이들의 진술을 다시 읽었다. 서림이 보관해 온 노트에는 작은 글씨가 가득했다. 아이 하나는 문이 잠긴 뒤에도 바닥으로 물이 들어왔다고 했고, 또 다른 아이는 바깥에서 누군가 괜찮다고 외쳤다고 했다. 하지만 밖에서 어떤 작업을 했는지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우는 오래된 사진에서 파란 운동화를 보았다. 얼굴이 잘린 아이 옆에 자신이 있었다. 그때 자신은 몸이 작은 아이였고, 복도에서 어떤 문을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공포와 실제 절차가 서로 다를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서림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왜 문을 닫았는지 몰랐지. 그저 문이 닫힌 뒤에도 누가 와 주길 바랐을 거야.” “그 어른들이 일부러 나쁜 일을 했는지부터 판단하고 싶진 않아요.” “그렇다고 못한 일을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서도 안 되겠지.” 그 말에 현우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 주영은 오래된 펌프 제어기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냈다. 정비 기사였던 오기범은 지금은 은퇴해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관제실 놋쇠 종 이야기를 듣더니 손을 씻지도 않고 오래된 공책을 꺼냈다. “그날 저녁 펌프가 두 번 멈췄어요. 한 번은 정전 때문이고, 한 번은 사람이 일부러 멈춘 겁니다.” “누가요?” “그건 모릅니다. 제 공책엔 원인만 썼어요. 사람을 본 건 아니니까.” 그는 진한 연필로 그린 도면을 펼쳤다. 펌프가 두 번째로 멈추면 하부 수로에 갇힌 압력이 빠져서 수문을 열 수 있게 되는 구조였다. 잠금 자체는 그 전까지 안전을 위한 조치일 수 있었다. 현우가 도면을 가리켰다. “그러면 그날 문을 열 수 있었던 시각이 나온다는 거죠?” “조건이 맞았는지는 계산해 봐야겠죠. 하지만 이대로라면 여섯 시 열다섯 분께는 압력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 순간 현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공식 구조 기록에서 대피소 문이 열린 시각은 여섯 시 사십칠 분이었다. 압력이 떨어진 뒤 서른 분이 넘는 공백이었다. “왜 그동안 문을 열지 않았을까요?” 오기범은 공책을 덮었다. “저도 그게 이상해서 여러 번 물었어요. 그때마다 '대기하라'고만 하더군요.” 가은이 질문했다. “그 말을 누가 했습니까?” “무전에서 들었죠. 같은 문장을 또 들었습니다. 격리를 유지하라고요.” “그 목소리를 기억하십니까?” 오기범은 입을 다물었다. 오래 생각한 뒤 말했다. “목소리는 기억 안 납니다. 대신 그 말이 오던 무전기의 불빛은 기억해요. 우리 동네 관제실에서 나오던 초록불이 아니었습니다. 노란불이었어요.” 그는 서랍에서 예전 무전기와 같은 모델의 설명서를 찾아 펼쳤다. 노란불은 중앙 분소 중계 회선을 뜻했다. 밤이 되자 현우에게 또 다른 문자가 왔다. '그 문을 누가 잠갔는지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열 수 있게 된 뒤에도 잠가 둔 사람을 찾아.' 이번 문자 끝에는 처음 보는 문양 하나가 붙어 있었다. 동그라미 안에 기울어진 두 개의 선. 현우는 그것을 도면에서 찾았다. 하부 수로 압력 해제 표시와 똑같은 기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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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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