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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103화
PAYLUA ORIGINAL · 제103화

103화. 사라진 네 분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837자

오프라인 책장
관제실의 종소리가 단서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가은은 녹음 복원 작업을 중단시켰다. 원인 모를 파일이 열람자를 식별했다면, 원본과 작업 사본을 분리하는 것이 먼저였다. 유리는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저장 장치에 당시까지의 분석 결과를 보존하고 장비의 구동 기록을 남겼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요.” 현우가 말했다. “누군가일 수도, 오래된 자동 절차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사실부터 확인해요.” 가은은 현우에게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어 보라고 했다. '증인 09 식별.' “당신을 한 사람으로 부르지 않고 또 번호로 부르네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게도 이번엔 이름 위에 붉은 글씨가 없었다. 그렇다고 안심이 되진 않았다. 이름을 지우는 기술이 바뀌었다면 위험을 알아채는 방법도 달라져야 했다. *** 다음 날 현우 일행은 시청 별관의 폐쇄된 관제실로 갔다. 오래된 건물의 삼층 끝방이었다. 유리문에는 붉은 색연필로 쓴 '철거 예정' 표시가 붙어 있었다. 문을 열자 먼지가 일었다. 방 중앙에 원형 종이 하나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 누군가 부름을 청할 때 누르던 작은 놋쇠 종이었다. 녹슨 받침에는 시청 물품 관리 번호가 붙어 있었다. “이거라면 녹음에 있던 소리와 비슷하네요.” 주영이 말했다. 현우는 종에 손을 대려다 멈췄다. 유리의 녹음과 현장의 물건을 구분해 보존해야 했다. 가은은 종의 표면과 일련번호를 촬영했다. 벽에는 재난 대비용 당직 근무표가 걸려 있었다. 20년 전 8월의 일부 날짜가 수기로 지워져 있었다. 그러나 근무표를 붙인 압정 자리에 다른 종이가 한 겹 끼어 있었다. 가은이 종이를 꺼내자 주름진 교대 인수장이 나왔다. [18:08 현장 중단 보고 접수] [18:09 하부 수로 수위 재확인 요청] [18:11 외부 회선 연결] [18:12 지시문 수신] 주영이 손가락으로 네 줄을 따라갔다. “여섯 시 팔 분에서 열두 분. 녹음 파일이 누락한 네 분과 일치합니다.” “외부 회선은 어디로 연결됐죠?” 현우가 물었다. 당직 인수장에는 번호가 아니라 '중앙 분소'라는 글씨만 쓰여 있었다. 도면에서 그 명칭을 찾을 수 없었다. 건물이 이전되면서 명칭이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현우는 관제실 창문을 열어 보았다. 건물 뒤편에는 낮은 운동장이 있었다. 아이들이 축구공을 차고 있었고, 한 아이가 공을 놓치자 다른 아이가 웃으며 쫓아갔다. 스무 해 전의 물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겠네요.” 그가 말했다. 가은은 낡은 당직 의자를 가리켰다. 팔걸이에는 작은 흠집이 여럿 나 있었다. 몸을 세게 붙잡고 기다리던 사람이 남긴 것일 수도 있고, 단지 오래 써서 생긴 상처일 수도 있었다. 가은은 그것을 어느 쪽의 흔적이라고도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을 모르는 물건은, 사실을 모르는 채로 놔둬야 해요.” “그럼 기억이 없는 사람은요?” “기억이 없다는 사실부터 기록하면 됩니다. 누가 모르겠다고 말할 기회도 없게 만들지는 말아야죠.” 현우는 구겨진 수첩을 펴서 '알 수 없음'이라는 세 글자를 적었다. 예전 같으면 빨리 채우려고 조바심 냈을 빈칸이었다. 그들은 근무표와 당시 인력 명단을 대조했다. 관제실 당직자 두 명 중 한 명은 퇴직했고 한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생존한 당직자는 배윤석. 마지막으로 기록된 주소는 서람시 남쪽의 작은 아파트였다. 가은은 곧장 찾아가자는 현우를 말렸다. “오래된 사고의 증인을 만나면 그가 먼저 무엇을 기억하는지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답을 들고 가서 같은 답을 말하게 하면 곤란해요.” “그 사람이 지시를 내렸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더 조심해야죠.” *** 그날 오후, 주영은 배윤석을 찾아보기 전에 중앙 분소의 흔적부터 조사했다. 시청의 조직도에는 없었지만 구 전화번호부에는 '수해 공동 대응 분소'라는 기관이 있었다. 서람시와 해온군, 인근 두 지역이 함께 운영하던 재난 대응 임시 기관이었다. “사고 당시 관제실은 시청에만 묻지 않았어요. 네 지역에 동시에 문의한 겁니다.” “그럼 누가 통화에 답했는지도 네 곳 자료를 확인해야겠네요.” 가은이 말했다. 현우는 창밖을 봤다. 맑은 하늘에 구름 하나 없었다. 스무 해 전 폭우는 이미 지나갔지만 그날 임시로 만든 구조가 여전히 사람들의 이름을 붙잡고 있었다. 휴대전화에 알림이 떴다. 서람시 안전 기록 공개 게시판의 자료가 갱신됐다는 내용이었다. '2006년 8월 수문 사고 당직 지시문 — 공개 결정.' 놀랍게도 누군가 공식 자료 공개를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 신청 날짜는 일주일 전. 신청인 칸에는 개인정보 비공개라고만 적혀 있었다. 첨부 파일에는 조금 전 관제실에서 찾은 인수장과 같은 네 줄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여섯 시 십일 분의 내용은 달랐다. [18:11 현장 재확인 생략 지시] 현우는 숨을 들이켰다. 수기로 쓴 원본에는 '외부 회선 연결'이라고 적혀 있었다. 공개 자료에서는 그 말이 '생략 지시'로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 기록을 또 바꾼 거예요.” 현우가 말했다. 가은은 두 문서를 나란히 놓았다. 종이 원본의 글씨는 분명했고 수정된 게시판 문서는 스캔본이 아니었다. 같은 표제가 서로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질문이 하나 더 생기죠. 왜 하필 지금, 우리가 원본을 발견한 날 이 자료를 공개했을까요?” 주영이 게시판의 공개 이력을 열었다. 시각은 오후 두 시 십칠 분. 관제실 문이 열린 지 정확히 아홉 분 뒤였다. 그때 현우의 휴대전화로 세 번째 익명 문자가 도착했다. '네 분은 지워진 시간이 아니야.' 그다음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문을 열 기회가 있었던 시간이야.' 현우는 처음으로 그 네 분이 단순한 녹음 누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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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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