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새벽, 민석은 백억 원이라는 숫자를 한참 들여다봤다.
처음 그 숫자가 나타났을 때는 자기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 다음에는 자신이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했다. 수십 번의 기록 대조를 거친 지금도, 마이너스 백억 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었다.
“숫자만 커서 문제였던 건 아니야.” 민석이 말했다.
“그럼?” 준성이 물었다.
“뜻을 모르는 돈을 내 돈이라고 부른 게 문제였지.”
아침 회의에서 기태는 2018년 평가 모형의 일부를 보여 주었다. 공개 가능한 수치를 사용한 재현 자료였다. 원장에 표시된 거액은 개별 지급액 합계가 아니라, 미확정된 정산 자료가 나중에 권리 분쟁으로 바뀔 경우의 위험 추정치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백억 원을 갚을 사람이 애초에 없었을 수도 있겠네요.” 서윤이 말했다.
“그 숫자만으로는 실채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기태가 답했다.
서문재가 회의 중간에 도착했다. 그는 모처럼 회색 정장 차림이었다. 주머니에서 오래된 내부 메모를 꺼냈다.
“2018년에도 제가 그 숫자를 봤습니다.”
민석이 고개를 들었다.
“그때도 백억 원이었습니까?”
“아니요. 그땐 예외 자료가 늘면 회사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계산한 상한 시나리오였습니다. 누군가 어느 날 그 시나리오를 '보관인 개인의 손실'이라고 보여 주기 시작했어요.”
“그걸 알고도 방치했습니까?”
문재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공식 자료에 적혀 있던 범위와 화면에 표시된 뜻이 다르다는 걸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투자 자문을 맡았고, 사업의 성공을 보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민석은 분노가 솟았다. 누군가 방치한 단어 하나가 자신의 삶을 뒤흔들었다. 반면 문재는 여전히 '의심'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의심했으면 멈추셨어야죠.”
“그랬어야 했습니다.”
“그걸 이제야 말하십니까?”
문재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직접 승인한 문서가 있는지 조사기관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말로 사과하는 것과 실제 책임을 확인하는 것은 별개였다. 민석은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했다.
같은 날 정태겸 측은 P01을 비롯한 일부 기록에서 시뮬레이션 값이 실거래 확정 자료와 구분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는 추가 공지를 냈다. 회사는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지만, 문제가 발생한 모든 계약을 특정하지는 못했다.
백소희는 공지를 읽고 담당 기관에 질문을 보냈다. '제 계좌로 실제 입금이 되었는지 확인한 결과는 언제 받습니까?' 그녀는 거액의 평가 손실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물었던 질문이었다.
민석은 그 질문이 고마웠다. 세상이 천억 원을 두고 소란스러운 동안에도 그녀는 자기 삶에 필요한 한 가지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오후 네 시, 하은이 연락했다. 12월 4일 발생한 128만 원의 미완료 전송 시도가, 실명이 포함된 시험 정산 자료를 실제 외부 연결망에 제출한 작업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관련 경로를 중지하고 정식 감사에 자료를 넘기겠다고 했다.
“예측이 적중한 게 아니라, 누군가 그 숫자를 맞추려고 움직였을 가능성이 생긴 거군요.” 민석이 말했다.
“그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누가 왜 그랬는지까지는 아직 몰라요.” 하은이 대답했다.
민석은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
'미래를 맞히는 사람은 놀랍다. 그러나 남의 미래를 자기 계획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위험하다.'
오후 상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는 최은정도 있었다. 그녀는 수선집 문을 일찍 닫고 왔다. 칠십삼만 원을 돌려받은 이범우는 직접 참석하지 않고 확인서만 보냈다. 각자가 원하는 것이 달랐다. 누군가는 실제 지급 내역을 요구했고, 누군가는 잘못 표시된 동의서를 없애 달라고 했으며, 또 누군가는 자료가 바뀐 날짜를 알고 싶어 했다.
“여러분께 반환할 돈을 한 번에 계산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세린이 말했다. “먼저 각 사건이 실제로 어떤 거래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은정은 손을 들었다. “그럼 제 천 원도 따로 봐야 합니까?”
“네. 금액이 작아도 별도의 건입니다.”
“그 말을 듣고 싶었어요.”
은정의 표정은 이상하게 밝았다. 그녀는 천 원이 작다는 이유로 설명을 생략했던 사람들을 오래 만나 왔다. 이제는 작아서 더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회의 뒤 민석은 사람들의 명단을 보았다. 가족 이름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비공개 표시를 했고, 취재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따로 표시했다. 모두를 '414명'이라는 한 숫자로 만들던 원장은 이런 차이를 보여 주지 못했다.
준성이 물었다. “그러면 네가 하는 건 결국 돈을 돌려주는 일이네.”
“아니. 누구 돈인지 결정하는 일을 원래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거야.”
민석은 자신이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지 아직 몰랐다. 다만 다른 사람의 서명을 대신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밤, 그의 검은 원장은 또다시 마이너스 백억 원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옆에 단위가 있었다.
[예상 손실: -100,000,000,000원]
[단위: 위험 평가액 / 실채무 아님]
민석은 그 문장을 저장했다. 정정 하나로 사건이 끝나지는 않았다. 실제 피해를 입은 사람과 책임져야 할 사람이 모두 남아 있었다.
화면이 꺼지기 전 마지막 줄이 떠올랐다.
[수정 근거: P00 원본 복원 예정]
“아직 안 열었는데.” 민석이 중얼거렸다.
내일 열어 보기로 한 봉투의 내용이 왜 오늘의 원장에 이미 반영되고 있는가.
누군가 내일의 자료를 미리 알고 있었다. 아니면 그 봉투 안에 무엇이 있는지 십 년 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9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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