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소희는 두 번째 대조 요청에 응했다. 이번에는 세온기록관리 회의실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공식 확인 창구에서였다. 소희는 자신이 허락하는 범위만 기록으로 남기는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이번엔 제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까지 누가 볼 수 있나요?”
세린이 답했다.
“직접 대조를 진행하는 기관 담당자와 법률 대리인에게 필요한 부분만 제공됩니다. 민석 씨와 취재진에게는 결과 중 동의하신 범위만 알려 드릴 겁니다.”
소희는 서명을 했다. 지급받았다는 서명이 아니라, 확인 절차에 동의한다는 서명이었다.
그날 오후 결과가 나왔다. 2016년 P01에 연계된 지급 지시 문서는 실제로 존재했다. 다만 그 문서가 금융기관에 보내졌을 때 대상 계좌 번호 일부가 원래 신청 내역과 달랐다. 차이가 발생한 경위는 확인 중이었다. 소희의 해당 계좌에 입금됐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 제 돈을 누가 받았다는 겁니까?” 소희가 물었다.
“그렇게 결론 낼 단계는 아닙니다.” 담당자가 대답했다. “중간 계정으로 반환됐을 수도 있고, 금융기관 단계에서 취소됐을 수도 있어요.”
소희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메모지에 한 문장을 썼다.
‘그날 내 계좌에 돈이 들어왔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거죠?”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석은 유리문 밖에서 그 말을 전해 들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사건이 한 사람에게 구체적인 결과를 주고 있었다. 수익이나 손실을 약속하지 않는, 그러나 열 해 동안 기다린 사람이 직접 확인한 결과였다.
확인 창구 바깥의 긴 의자에는 노년의 부부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휴대전화 은행 앱에 찍힌 거래 내역을 서로 보여 주며 작게 다투었다. 남편은 '결제 승인'이라는 글씨가 있으니 이미 돈이 빠진 거라고 했고, 아내는 취소 예정이니 돌아올 거라고 했다. 직원이 두 사람에게 실제 카드 승인과 최종 매입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민석은 무심코 둘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남의 금융 내역을 엿보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매일 작은 상태값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자기 이야기만 특별한 게 아니었다.
소희가 확인실에서 나왔을 때 민석은 다가가지 않고 통로를 비켜 주었다. 그녀가 먼저 멈춰 섰다.
“혹시 제 돈을 대신 받겠다는 문서를 누가 보여 주더라도 서명하지 마세요.”
“저도 그 생각입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서 믿는 게 아닙니다. 이제는 누구도 제 대신 그렇게 정하지 않기를 바라서 하는 말이에요.”
민석은 그 말에 오히려 안심했다. 그는 누군가의 구원자가 되고 싶은 마음과, 수수께끼를 빨리 풀고 싶은 마음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날 오후 서윤은 소희의 말을 기사에 넣을 수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말은 기사를 위한 증언이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 권리의 경계를 알려 준 순간이었다.
한편 기태와 하은은 외부 자료에 남은 두 번째 ‘입금 확인’ 표시를 분석하고 있었다. 원래 상태 코드 04는 금융기관이 입금을 확인했을 때만 쓰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외부 자료에는 같은 거래번호로 04가 두 번 찍혀 있었다.
첫 줄은 ‘지급 지시 전송’. 두 번째 줄은 ‘보관 자료 수신’이었다.
“이 두 건 모두 입금이라고 번역했네요.” 하은이 말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한 번 지급된 돈을 두 번 지급된 것으로 믿었겠죠.” 기태가 답했다.
준성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돈도 안 들어갔는데 두 번 들어갔다고 해서 가치가 커졌다고요?”
“평가 문서에서 그렇게 계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손실 규모는 조사해야 해요.”
그들은 코드를 정정한 시뮬레이션 표를 만들었다. 중복된 상태를 나누자 일부 정산권의 예상 가치가 크게 낮아졌다. 그렇다고 백억 원이나 천억 원의 차액이 실제로 어디엔가 쌓여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민석은 그 구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화면에서 사라진 숫자를 되찾은 돈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저녁에는 정태겸 측의 회신이 도착했다. 외부 자료 사용은 계약 당시 유효한 표준 절차에 따랐으며, 문제가 제기된 일부 항목을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서윤은 원자료와 회신을 나란히 기록했다. 그 회사가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는 아직 증거가 더 필요했다.
정태겸은 별도의 면담 요청도 보냈다. 강민석만 참석하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준성은 즉시 반대했다.
“너 혼자 가면 또 무슨 승인자라고 사인하라 하겠지.”
“안 갈 거야. 사전에 질문과 참석 조건부터 전달하겠어.”
민석은 세린에게 검토받은 서면 질문을 발송했다. 조건부 면담, 동석 가능, 녹취 및 기록 범위 상호 합의. 대답이 오기 전까지는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밤늦게 그의 휴대전화가 켜졌다.
[내일의 잔액: +1,280,000원]
[처리 예정 시각: 2026.12.04 09:17]
[거래 구분: P01 정산]
[예상 수취인: 강민석]
민석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백소희가 받았는지도 확인되지 않은 돈이 이번에는 자신의 계좌로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즉시 자료 보존을 요청하고 공식 은행 앱의 예정 거래를 확인했다. 알림에는 아무런 입금 일정도 없었다.
민석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이번 예측이 맞으면 그는 돈을 받게 된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어느 쪽이 더 나쁜 일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그 돈의 수취인이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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