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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94화
PAYLUA ORIGINAL · 제94화

94화. 보관하지 않은 미래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971자

오프라인 책장
김예린은 명함의 뒷면을 먼저 확인했다. 오른쪽 아래에 아주 작게 찍힌 연도가 있었다. 2016. “제 명함 맞아요.” “그러면 배성규 씨를 만났습니까?” 민석이 물었다. “기억합니다. 다만 제가 봉투를 가져간 건 아닙니다.” 예린은 오래된 연구실 사진을 펼쳤다. 책상마다 종이파일이 쌓여 있었고, 모니터에는 스프레드시트 비슷한 화면이 켜져 있었다. 사진의 한쪽 끝에 붙은 화이트보드가 민석의 시선을 끌었다. ‘RETURN: 지급된 돈이 아니라 지급 여부를 확인할 권리.’ “당시 저는 잘못된 상태 코드 때문에 실제 돈이 움직였는지 알 수 없는 경우를 연구했어요. 사람이 사라진 게 아니라, 질문이 사라지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예린은 말을 멈췄다. “2016년 10월 26일에 보관소에 갔습니다. 밤새 봉투가 남아 있다는 연락을 받았거든요. 누가 줬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미 물품이 없었습니다.” “누가 연락했습니까?” “정도현 연구원이요.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그분과 직접 일했어요.” 도현의 이름이 나오자 민석은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그들은 도현이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기록과, 원장에서 지우려 한 사람이 있었다는 메모를 찾아냈다. 하지만 도현이 실제로 무엇을 보관하려 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예린은 서랍에서 세 장의 시험 설계 문서를 꺼냈다. 제공 가능한 문서인지 사전에 법률 검토를 받았다고 했다. 첫 페이지의 제목은 ‘10년 장기 보존 상태 가상 재현’이었다. [시뮬레이션 목표 연도: 2036] [원천 저장소: M36-ORIGIN] [장기 미확정 기록 처리: 사용자 재확인] “그러면 2036년은 미래가 아니라 시험 연도였군요.” 준성이 말했다. “일부 표시에 대해서는 그 설명이 가능합니다.” 예린이 대답했다. “하지만 민석 씨가 본 음성 메시지나 실제 시스템의 미래 날짜까지 전부 설명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2036년 강민석. 예린의 설명대로라면 누군가 시뮬레이션의 가상 담당자 이름을 실제 담당자 칸에 복사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왜 민석의 목소리로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2036년의 접속 시각이 보관기관의 인쇄물에 남은 사실도 아직 풀리지 않았다. 민석이 물었다. “그럼 원래 원장은 무슨 일을 하려고 했습니까?” “받았다고 적혔지만 실제 입금 증거가 없는 사람에게, 다시 확인할 기회를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내일 받을 돈을 보여 주고 있어요.” 예린이 한숨을 쉬었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미확인된 돈’을 ‘앞으로 들어올 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 뒤론 상환 가능성, 예상 이익, 권리 가치까지 같은 숫자 칸에 들어갔죠.” 그녀가 보여 준 오래된 개발 메모에는 위험한 시험 지시가 있었다. ‘사용자 반응 검증을 위해 미래 잔액 형식 적용.’ 예린은 그 줄 아래에 붉은 펜으로 ‘불가’라고 적었다. 실제 금융정보를 오인하게 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였다. 메모가 승인됐는지, 출시됐는지는 이 문서만으로 알 수 없었다. 예린은 오래된 연구실에서 벌어진 한 장면을 털어놓았다. 개발자들이 모여 화면 이름을 정하던 오후였다. 한 사람은 '미확인 지급 이력'이라는 제목이 길고 불안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내일의 정산'이라는 이름이 사용자에게 친숙하다고 주장했다. 실무자는 알림을 읽는 사람에게 미래 수익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반대했다. “그때도 그 이름을 썼어요?” 민석이 물었다. “시연용으로 제안된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반대했고, 공식 출시가 되었는지는 이후 자료를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반대했다는 사실만으로 이후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민석은 상상해 보았다. 개발 회의실 한쪽에서 누군가 버튼 모양을 고르고, 다른 누군가는 화면 아래 설명 문구를 줄인다. 거대한 금융 사기라고 부르기 전에는 언제나 그런 평범한 작업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어떤 문장을 잘못 이해할지 몰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보고된 뒤에도 고치지 않았다면 사정이 달랐다. 예린은 시연 자료의 마지막 슬라이드를 넘겼다. '거부권 및 재확인 경로를 제거하지 말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다. 경고 바로 옆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후속 과제'. “후속 과제로 넘긴다는 말이 참 편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 사이에 실제 사람들의 기록이 넘어갔으니까요.” 그녀는 따뜻해진 찻잔을 두 손으로 잡았다. 처음 그 연구를 시작할 때는 받지 않은 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을 돕고 싶었다고 했다. 민석은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더라도 결과를 다시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오후에 하은이 공식 자료를 가져왔다. 2018년 예외 규칙을 승인할 당시의 일부 업무 문서에서, ‘당사자에게 질문을 되돌리는 절차’가 ‘대체 보관인에게 권한을 넘기는 절차’로 바뀐 흔적이 발견됐다. 단지 문구가 바뀐 것이 아니었다. 어느 사람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가 바뀌었다. 민석은 문장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원래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말할 권리를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제는 당사자가 대답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하게 만든 거군요.” “그렇습니다.” 예린이 말했다. “그래서 도현이 봉투를 지키려 했을 겁니다. 거기 원래 질문들이 들어 있었으니까.” 저녁 무렵 예린이 마지막 말을 꺼냈다. “그때 도현이 저한테 이상한 질문을 했어요. 사람이 한 번도 받지 않은 돈을, 십 년 뒤 누군가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럴 수 없다고 했죠. 기록이 그렇게 표시될 수는 있어도.” 예린은 휴대전화를 꺼내 민석에게 오래된 메일 제목을 보여 주었다. ‘P00 원천 봉투 복구 시 기존 M36 자료 사용 중지.’ 메일 본문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수신자 목록의 첫 줄에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강민석’. 민석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은 십 년 전 봉투를 옮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봉투를 찾을 수 있도록 경고한 사람은 자신이었을 가능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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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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