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91화
PAYLUA ORIGINAL · 제91화

91화. 접수번호가 남긴 방향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675자

오프라인 책장
열 해 전의 접수번호가 휴대전화에 나타난 다음 날, 강민석은 처음으로 출근길을 놓쳤다. 늦잠 때문은 아니었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동안 그는 플랫폼 벤치에 앉아 번호 하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P00 / 2016.10.25 / 16:43] P01은 백소희가 확인을 요구한 최초의 지급 기록이었다. 050은 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는 자료의 보관 상태였다. 그 사이에 갑자기 등장한 P00은 무엇일까. 숫자 영이 맨 앞에 붙어 있다고 해서 최초의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오늘 오전에 회사에 안 가도 돼?” 준성이 전화로 물었다. “반차 냈어. 접수번호부터 확인하려고.” “그 화면에 나온 번호가 진짜면?” “공식 보관 목록에도 있는지 봐야지.” “없으면?” “그것도 중요한 사실이고.” 준성은 한참 대답이 없었다. 예전의 민석은 백억 원이라는 숫자를 본 날 회사를 그만둘 궁리부터 했을 것이다. 지금은 남의 접수번호 때문에 반차를 내고 있었다. 세온기록관리 상담실의 유리창 너머로 은행 건물을 개조한 작은 마당이 보였다. 윤혜라는 그를 맞아 앉히면서 먼저 서류 한 장을 건넸다. 민석이 요청한 것은 P00과 동일한 번호가 공개 가능한 운송 목록에 존재하는지의 확인이었다. 봉투 안의 내용은 그 범위에 없었다. “번호는 있습니다.” 혜라의 대답에 민석은 무심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제가 보여 드릴 수 있는 건 품목 구분과 시각뿐이에요.” 문서의 첫 줄에는 2016년 10월 25일 오후 네 시 사십삼 분이 적혀 있었다. 두 번째 줄에는 ‘별도 접수 대기물’이라고 쓰여 있었다. 수취인 칸은 비어 있고, 발송 의뢰 항목에는 M36-ORIGIN이라는 업무 코드가 남아 있었다. “그럼 M36에서 가져가기로 한 봉투군요.” 민석이 말했다. 혜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운송을 *요청한* 쪽의 코드입니다. 인수했는지는 다른 기록을 봐야 해요.” 민석은 펜으로 두 단어를 적었다. 요청. 인수. 아무렇지 않게 같은 뜻으로 말하던 두 단어가 이제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혜라가 마지막 줄을 가리켰다. [처리 결과: 인수 확인 불가 / 보관 장소: 임시 구역 B] “분실 처리됐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당시 목록은 다른 업체로 이관됐고, 그 이후 위치가 갱신되지 않았어요.” 임시 구역 B. 민석은 십 년 전 복도 끝에 쌓인 회색 플라스틱 상자를 떠올렸다. 원본 상자는 자신이 옮겼다. 다른 하나는 누가 옮겼는지 모른다. 기억 속에는 유난히 붉은 끈이 선명했다. 봉투를 묶던 끈인지, 자기 코트 소매에 걸린 실밥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민석은 상담실에서 일어나기 전 은행 계좌의 잔액을 확인했다. 월급이 들어온 뒤 이틀째였다. 관리비와 카드 대금이 빠져나가면 남는 돈은 많지 않았다. 지난 한 달 동안 이 사건에 써 버린 반차와 교통비를 생각하면 웃음이 났다. 큰돈에 홀렸던 사람의 일상은 결국 작은 비용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어머니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왔다. 민석은 복도에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별일이 없으면 저녁이라도 제대로 먹으라고 했다. 민석은 잠깐 '저는 오늘 십 년 전에 사라진 봉투를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했고, 아직 무엇도 확실하지 않았다. 대신 잘 먹고 있다고 대답했다. “너, 무슨 일 있으면 얘기해.” “조금 오래 걸리는 일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뭘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셔도 돼요.” “그게 무슨 말이냐.” 민석은 웃었다. “제가 꼭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자꾸 무리하게 돼서요.” 통화를 끝내자 서윤이 복도 저편에서 손짓했다. 오래된 이관 계약서에 붙은 부속 문서가 확인됐다고 했다. 문서의 첫 페이지에 '원천 자료의 존재를 확인한 것으로 지급을 확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었다. 회사들은 분명 차이를 알고 있었다. 누가 그 차이를 버렸는지가 문제였다. 점심에는 서윤과 세린이 합류했다. 서윤이 조용히 물었다. “이걸 기사로 써도 될까요?” “아직은.” 민석이 대답했다. “누가 받은지도 모르고,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외부 운송업체의 업무 코드가 왜 금융상품의 평가 기록에 남아 있는지는 취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했다. 취재 대상은 백소희가 아니었다. 코드가 십 년 동안 살아남도록 만든 조직이었다. 오후 세 시, 하은이 낡은 계약서의 목록을 보내 왔다. M36-ORIGIN은 회사 이름이 아니라 장기 보관 시스템에 부여된 원천 자료 식별자였다. 해당 자료를 관리하던 수탁 업체는 두 차례 이름을 바꾼 뒤 2021년에 계약을 종료했다. 준성은 화면을 보더니 중얼거렸다. “회사도 없어졌고, 봉투도 없고, 사람 이름도 없네.” “그래서 없어진 것처럼 취급하면 안 되는 거야.” 저녁 일곱 시 십이 분, 민석의 검은 원장이 짧게 켜졌다. [기록 대조: P00 존재 확인] [반환 목적: 출처 설명] [수취인: 해당 없음] 민석이 캡처를 마치자 화면이 바뀌었다. [임시 구역 B 보관 흔적: 2016.10.25 17:02] [이동 요청자: 강민석] 그는 손을 멈췄다. 자신이 옮긴 것은 원본 상자 한 개뿐이었다. 공식 기록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런데 검은 원장은 봉투의 이동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숫자가 사람을 잘못 세는 정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십 년 전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그의 행동으로 만들고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91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91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