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아홉 시 정각, 접수실 벽시계의 초침이 열두 시를 가리켰다. 얇은 문이 열리자 보관기관 직원 두 명과 법률 대리인이 들어왔다. 그 뒤에 아침부터 서류 봉투를 안고 있던 여성이 섰다.
직원은 먼저 참석 목적과 개인정보 보호 범위를 읽었다. 신청인에게는 원하지 않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었다. 민석은 공식 대조 참관인으로만 참석했고, 계좌 전체를 볼 수는 없었다.
여성은 스스로 이름을 밝혔다.
“백소희입니다. 오늘은 제 신청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서른 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봉투를 잡은 손등에는 희미한 떨림이 있었다.
민석은 머리를 숙였다.
“저는 강민석입니다. 당시 원본 이관 업무를 맡았습니다.”
“알고 있어요. 당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온 건 아니지만요.”
소희는 빈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과거의 사업장에서 정산 지원 업무를 임시로 맡았고, 종료 당일 한 지급 기록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기록은 자기 계좌와도 연결돼 있었다. 그러나 입금이 확인되기 전에 회사의 조회 화면에는 ‘완료’라고 표시됐다.
“그게 제 돈인지, 제가 다른 사람의 일을 처리한 기록인지조차 헷갈렸어요. 그런데 그날 저한테 지급받았다는 확인서에 서명하라고 하더군요.”
“서명하셨습니까?” 세린이 물었다.
“아니요. 은행에 들어온 내역이 없었으니까요.”
소희는 2016년 10월 25일 작성한 문의서 사본을 내놓았다. 공식 대조 담당자는 문서의 접수번호와 봉인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참석자 모두가 원문 전체를 열람한 것은 아니었다. 소희가 허용한 문장만 읽을 수 있었다.
‘P01의 지급 완료 표시를 정정하고, 지급 확인 자료와 대조해 주십시오.’
그녀는 그해부터 여러 번 연락을 했다고 했다. 담당 회사가 바뀔 때마다 같은 설명을 반복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미 완료된 기록이라 조회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십 년 동안 찾고 싶었던 것은 막대한 보상이 아니었다. 받지 않은 돈을 받았다고 기재한 기록이 왜 남았는지, 어떤 서류 때문에 자신의 서명이 필요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날 저를 도와준 사람이 있어요.” 소희가 말했다.
“누굽니까?” 민석이 물었다.
“성함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제가 확인서에 서명할 수 없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종이에 이렇게 적어 줬습니다. ‘완료 표시는 입금 증거가 아닙니다.’”
민석은 숨을 삼켰다. 그 문장은 그가 2016년 보고서에 쓴 원칙과 똑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소희에게 적어 주었다는 기억은 없었다.
“혹시 그 종이를 가지고 계세요?”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영수증 뒤에 적힌 손글씨가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단지 작은 화살표가 P01에서 ‘미확인’으로 이어져 있었다.
오전 아홉 시 오 분. 기태가 외부 감사 담당자를 통해 확인 결과를 전달했다. 대체 보관인을 다시 표시하도록 예약된 시험 작업은 실행되지 않았다. 보관기관의 공식 대조도 중단되지 않았다. 그날 아홉 시 오 분에 무너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소희는 한 장의 자료를 더 내놓았다. 그녀가 지난주 은행에서 발급받은 거래 내역에는 2016년 해당 날짜의 입금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 다른 자료에는 2016년 이후 지급 상태를 ‘완료’로 바꾼 화면 출력본이 있었다.
“제가 모르는 계좌로 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하시겠죠.” 소희가 말했다. “그러면 확인해 주세요. 제가 받았다고 서명한 적이 없다는 것까지 포함해서요.”
담당자는 확인 범위를 기록했다. 이날 안에 지급 여부를 확정하지는 못했다. 다만 신청인이 실제로 이의를 제기했고, 그 사실이 외부 집계 과정에서 누락됐다는 점은 별도 검증 대상으로 남겼다.
민석은 이 회의를 자신이 이긴 자리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십 년 전부터 똑같은 질문을 했던 사람이 오늘에야 자기 말을 온전히 접수시켰기 때문이다.
대조 담당자는 신청인의 이전 문의가 시스템으로 이관되면서 상태가 달라진 경위를 설명했다. 최초 문의서에는 ‘이의가 있어 보류’라는 문장이 남아 있었지만, 후속 집계에서는 ‘대조 요청 접수’만 남았다. 그 두 기록이 같은 사건이라는 연결 정보가 전환 과정에서 누락된 것으로 보였다.
소희는 설명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조용히 물었다. “그러면 제가 십 년을 기다렸다는 사실도 어느 단계에서는 사라진 건가요?”
담당자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없어진 것은 접수 자체가 아니라 접수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그 차이가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 정말로 돈을 보냈을 가능성도 있잖아요.” 민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확인해 주세요. 저는 그 사실을 부정하려고 나온 게 아니에요. 제가 못 받은 걸 받았다고 서명해 달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죠.”
민석은 자신의 48,000원 거래를 생각했다. 은행에는 입금이 있었다. 송금 경위도 설명받았다. 하지만 아직 그 돈이 자기 것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소희의 주장은 그 반대였다. ‘들어왔다’는 표시가 있었는데 실제 입금이 확인되지 않았다. 두 기록은 형태만 다를 뿐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담당자는 해당 거래와 연계된 모든 입금 증빙을 다시 조회하고, 다른 계좌로 지급됐을 가능성도 확인하겠다는 계획을 남겼다. 본인이 동의한 확인 범위를 넘기지 않는다는 단서도 붙였다. 소희는 그 문장을 확인하고 나서야 서류에 서명했다.
“이번에는 무엇에 서명하신 건가요?” 민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돈을 받았다고가 아니라, 제 이야기를 들었다는 기록이에요.” 소희가 답했다.
민석은 그 말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가 바랐던 ‘완료’의 의미는 어쩌면 이런 것이었다. 상대가 한 말을 상대의 뜻대로 기록하는 것.
끝날 때 소희가 민석을 불렀다.
“강민석 씨. 처음에 물었던 질문이요. 왜 직접 상자를 옮기셨냐고.”
“여전히 전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는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그녀는 오래된 문서의 겉표지를 가리켰다.
“그날 마지막으로 옮긴 상자에는 원본만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민석은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뜻이죠?”
“누군가 받지 않았다고 표시한 기록들을 함께 넣으셨잖아요. 저는 그 목록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소희는 민석을 똑바로 바라봤다. 돈의 금액보다 오래된 질문이 두 사람 사이에 놓였다.
제8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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