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88화
PAYLUA ORIGINAL · 제88화

88화. 아홉 시 오 분 전의 사람들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819자

오프라인 책장
11월 29일 저녁, 세온기록관리의 복도에는 소독약 냄새가 났다. 다음 날 접수 창구에 사람이 몰릴 것을 예상한 직원들이 안내 표지를 붙이고 있었다. 민석은 그 앞에서 잠시 멈췄다. 누군가의 돈을 확인하는 날이 무슨 거대한 행사처럼 느껴지는 것이 싫었다. 담당자는 참석 인원을 최소화해 달라고 했다. 서윤은 취재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별도 동의를 받아야 하므로 대기실에 남기로 했다. 준성도 오지 않겠다고 했다. 옆에서 말 한마디를 더 보태기보다 필요한 원본이 준비됐는지 확인하는 편이 낫다는 이유였다. “너 혼자 가도 괜찮겠냐?” 준성이 물었다. “혼자 가는 거 아니야. 신청인도 자기 기록을 보러 오는 거잖아.” “그래. 그분에게 중요한 날이겠네.” 이날 밤 하은은 회사의 통제 담당자와 통화했다. 민석이 보여 준 자동 복원 예고가 실제 시스템 작업과 연결돼 있는지 확인하자는 요청이었다. 담당자는 일단 권한 없는 사람이 실행할 수 없도록 관련 배치의 작동을 막고, 현재 상태를 증거로 보존하겠다고 했다. 데이터 자체를 삭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확인했다. “일이 잘되면 내일 아무 변화도 없을 수 있어요.” 하은이 말했다. “그게 제일 좋은 결과죠.” 민석이 대답했다. 그러나 예정된 작업을 막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손해였다. 그날 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민석에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진짜 신청인이 나타나면 당신이 책임져야 할 돈이 확정된다. 아홉 시 전에 취하하도록 설득하라.’ 준성은 당장 전화하자고 했다. 세린은 발신자를 확인하기 전까지 답하지 말고, 위협성 메시지의 원본을 보존하자고 했다. 민석은 경찰 상담과 공식 사건 담당자에게 사실을 전달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발신자의 요구대로 신청인에게 압력을 넣지 않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취하하면 정말 끝나는 걸까요?” 민석이 물었다. “당사자가 원해서 취하한다면 존중해야겠죠.” 세린이 말했다. “하지만 누가 위협해서 취하한다면 그것도 기록해야 할 새로운 문제입니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민석은 2016년에 원본을 옮길 때 입었던 낡은 코트 사진을 보았다. 코트는 몇 해 전에 버렸지만 주머니 안에서 나왔던 구겨진 주차권은 아직 영수증 봉투에 있었다. [2016.10.25 16:44] [출차 예정 17:10] 택시를 타고 갔다고 기억했는데 왜 주차권이 있을까. 그는 잠시 자신이 잘못 기억한 줄 알았다. 그리고 주차권 뒷면에 쓰인 작은 글씨를 발견했다. ‘운송 취소. 상자 이동은 민석. 사본은 별도.’ 누군가 당시에 두 물건을 따로 관리했다고 적은 것이다. 원본 상자와 사본 B가 같은 사람의 손을 거쳐 움직였다고 단정한 지금까지의 추측이 틀렸을 수도 있었다. 그는 주차권 사진을 정식 제출 가능 자료로 세린에게 보냈다. 종이가 진짜 그날의 것인지는 별도 대조가 필요했다. 새벽 다섯 시가 지나자 민석은 2016년 업무일지를 다시 읽었다. 그날 ‘물품 인계’라는 칸에는 자신이 직접 쓴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별도 전달’ 칸은 빈칸이었다. 그는 빈칸을 오래 바라봤다. 누군가 지운 흔적이 아니라 처음부터 적히지 않은 흔적이었다. 지운 것과 적지 않은 것은 확인 방법부터 달랐다. 세린은 출근길에 전화를 걸어 왔다. “오늘 혹시 상대방이 민석 씨에게 직접 서명을 요구해도 현장에서 단독으로 결정하지 마세요. 원본을 보여 달라고 하시고, 서명해야 하는 이유부터 확인하세요.” “저를 십 년 전처럼 또 마지막 담당자로 만들려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죠. 그래도 준비할 수는 있습니다.” 통화를 끝내자 준성이 메신저에 사진을 하나 보냈다. 2016년 민석이 쓰던 사무실의 낡은 외벽이었다. 최근에 다른 건물로 바뀌어 흔적도 없었다. 아래에는 짧은 메시지가 있었다. ‘건물은 바뀌어도 네가 남긴 반대 의견은 문서에 있잖아.’ 민석은 답장을 길게 쓰지 않았다. ‘오늘은 그때 못 들은 사람 얘기를 듣고 올게.’ 그는 일찍 집을 나섰다. 보관기관까지 가는 버스 안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창문에 비친 얼굴들은 피곤하고 바빴다. 누구도 미래의 잔액을 계산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오늘 월급이 들어오기를 기다릴 것이고, 누군가는 어제 빠져나간 돈을 걱정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억 단위보다 자신의 통장에 남은 몇 만 원이 더 절실할 수 있었다. 민석은 가방에 들어 있는 서류를 확인했다. 택시 영수증, 주차권 사본, 입금 확인서,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을 적어 둔 별지. 그 서류들이 오늘 자신을 지켜 줄 유일한 것이었다. 11월 30일 오전 여덟 시 삼십 분. 기태에게서 연락이 왔다. 감사 담당자가 확인한 결과, 검은 원장이 예고한 09:05 자동 복원과 동일한 이름의 시험 예약 작업은 발견됐다. 실제 금융기관 이체를 실행하는 작업은 아니었지만, 조회 화면에서 대체 보관인을 다시 표시할 수 있는 설정이었다. “중지는 됐습니까?” 민석이 물었다. “권한 있는 담당자가 재활성화 경로를 차단했다고 확인했습니다. 다만 언제 누가 예약했는지는 계속 조사합니다.” 민석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미래를 본 것은 아니었지만, 미래처럼 보이는 화면을 만든 손 하나에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보관기관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여덟 시 사십칠 분이었다. 2016년의 그날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유리문 안쪽에서 한 여성이 서류 봉투를 품에 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민석을 보고도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직원에게 무엇인가 조용히 확인한 뒤, 이름이 적힌 번호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민석은 여자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그가 할 일은 첫 번째 지급 기록을 확인하는 것이지, 누군가의 비밀을 먼저 빼앗는 일이 아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88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8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