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락 후보의 실명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은정의 천 원이 들어 있던 원본 대조표와, 익일금융이 투자자에게 내보낸 집계표가 달랐다. 원본에서는 한 건을 서로 다른 상태로 보관하고 있었지만 집계표는 이를 두 건의 자산처럼 합쳐 보여 주었다.
“그러니까 하나는 두 번 셌고, 하나는 아예 안 셌다는 거죠?” 준성이 말했다.
“중복과 누락이 동시에 의심되는 겁니다. 아직 확인 중이고요.” 하은이 답했다.
서윤은 분홍색 메모지 두 장을 테이블에 붙였다. 첫 장에는 '같은 돈을 두 번 세지 않기'. 다른 장에는 '아무도 모르는 돈을 임의로 없애지 않기'라고 적었다. 회사의 금융상품 표보다 훨씬 단순한 문장이었다.
그날 오후 실제 지급 내역을 확인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은정의 천 원 건은 청구 자료와 입금 자료를 대조한 뒤 정정 절차를 계속하기로 했다. 그와 별개로 다른 수취인의 내역 한 건에 동일한 지급 참조번호가 쓰인 기록이 발견됐다. 두 사람이 같은 돈을 주장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기록 번호를 잘못 재사용했을 수도 있었다.
민석은 두 사람의 이름을 알고 싶었지만 세린이 먼저 손을 들었다.
“확인 권한이 없는 개인정보를 보지 마세요. 필요한 경우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해 검토하면 됩니다.”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그동안 사람들의 돈을 돌려준다는 생각에 너무 쉽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려 했다. 자신이 보관인으로 잘못 등록됐다는 것에 분노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름은 호기심 때문에 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저녁 무렵 서윤이 이범우를 다시 만났다. 이전에 칠십삼만 원을 되돌려받았던 그는 퇴근 후 작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었다. 두꺼운 점퍼를 입었지만 손끝이 빨갰다.
“돈이 돌아와서 다 끝난 줄 알았어요.” 범우가 말했다.
“그 금액에 관한 정정은 확인됐죠. 그런데 지급 기록 전체에서 다른 문제가 발견돼 조사 중입니다.”
“제 이름이 또 나온 겁니까?”
“확인된 건 아닙니다. 그래서 더 묻지 않으려고 왔어요. 추가 취재에 동의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여쭙고 싶어서요.”
범우는 놀이터를 바라봤다. 미끄럼틀 아래에서 아이들이 모래를 밟고 있었다.
“당분간은 그만하고 싶어요.”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끝까지 설득하지 않았다. 범우의 회복이 기자에게 좋은 이야기를 제공하는 의무로 바뀌어서는 안 됐다.
그 무렵 민석에게는 다른 연락이 왔다. 윤혜라가 보관 기관에서 공개 가능한 목록을 확인했다는 소식이었다. 2016년 대조표 맨 뒤에 붙어 있던 항목은 지급액이 아니라 '반환 확인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였다. 개인에게 귀속된 돈은 없었지만, 기록을 열어 보게 해 달라는 신청 자체가 독립된 항목으로 남아 있었다.
“그럼 누락된 한 건이 사람이 아니라 열람 요청일 수도 있겠네요.” 민석이 말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혜라가 답했다. “다만 왜 집계표에서 사라졌는지 확인해야 해요.”
“마지막에 기다렸던 사람이 혜라 선생님이었잖아요. 그때 누가 또 기록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습니까?”
혜라는 한동안 침묵했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사람이 누군지 그때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름이 가려져 있었거든요.”
민석은 손끝이 떨렸다.
“가려져 있었다고요?”
“사람을 지키려고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개인 사정 때문에 대리인을 통해 서류를 보낸 신청인이 있었어요. 직접 출석할 수 없다는 설명만 받았습니다.”
민석은 수첩에 '신원 미확인 열람 신청'이라고 적었다. 일부러 물음표 세 개를 붙였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극적인 비밀 인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은은 오래된 지급 담당 부서가 십 년 사이 두 번 바뀌었다는 사실도 알렸다. 첫 회사는 사업을 정리했고, 그 업무를 이어받은 회사는 원본이 아닌 합계표만 받아 보관했다. 이후 투자용 집계표가 작성되며 원래 누가 어느 칸에 적혀 있었는지 알기 어려워졌다.
“숫자만 이어받았으니 숫자끼리 맞으면 되는 줄 알았겠네요.” 준성이 말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했다고 확정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원본이 없어서 생긴 위험은 분명하죠.” 하은이 답했다.
민석은 오래된 회계 서류의 구석에 적힌 '참조 번호 유지'라는 지시를 보았다. 그 말은 데이터를 안전하게 이어받으라는 뜻이었지만, 같은 참조 번호가 중복되어 다른 거래를 연결할 위험도 있었다. 작은 표기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돈을 갈라놓을 수 있었다.
서윤은 취재 원고에 '천억 원' 대신 '중복과 누락이 의심되는 정산 기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편집자는 제목이 덜 강렬하다고 했지만, 서윤은 자신이 입증할 수 있는 사실만 제목에 올리겠다고 했다.
민석은 기사를 읽으며 생각했다. 더 큰 숫자를 약속하는 사람이 아니라, 숫자가 뜻하는 실제 경험을 설명하는 사람을 믿어야 했다.
그날 밤 익일금융은 추가 안내문을 발표했다. 기존의 천억 원 보관 증빙은 실물 자산이나 지급 확정액을 의미하지 않으며, 과거 지급 내역의 오류 여부를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한동안 게시됐던 과장된 문구가 정정된 것이다.
준성이 TV 화면을 보며 말했다.
“마침내 천억 원이 사라졌네.”
“사라진 건 천억 원이 아니야. 천억 원이라고 믿게 만든 문구가 바뀐 거지.” 민석이 답했다.
민석은 그 말을 끝내고 묘한 공허함을 느꼈다. 처음 원장에서 거액이 나타났을 때 그는 돈을 얻을 미래를 꿈꾸었다. 이제 그 미래는 하나씩 설명 가능한 문서와 프로그램의 문제로 바뀌고 있었다. 기적이 사라지는 대신 실제 사람이 나타났다. 천 원을 기다린 사람, 칠십삼만 원을 돌려받은 사람, 취재를 거절할 권리를 가진 사람.
그는 그런 이야기가 더 오래 남기를 바랐다.
자정 무렵 혜라에게서 추가 연락이 왔다. 기관에서 확인한 2016년 원본의 수신 봉투에는 실명 대신 접수 번호가 적혀 있었다.
[열람 요청인: 비공개]
[접수일: 2016년 10월 25일]
[대상: 사본 B]
[요청 취지: 누락된 내 지급 기록의 출처 확인]
민석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사람은 050번 돈을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받지 못한 돈을 누가 잘못 기록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처음 요구한 것은, 지금까지 모두가 폐기됐다고 믿었던 사본 B였다.
어쩌면 십 년 전에 시험 파일이 밖으로 나간 이유는 그 신청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제7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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