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아홉 시, 조하은은 커피 대신 따뜻한 물을 들고 회의실에 들어왔다. 익일금융 감사팀에서 밤새 확인한 표 세 장이 손에 들려 있었다.
“먼저 말씀드릴 게 있어요. 세온기록관리에서 받은 참조번호와 우리 회사의 거래 참조번호가 일치한다고 해서, 같은 사람이 직접 작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 시스템을 이어 주는 중계 프로그램이 있을 수 있어요.”
준성은 의자를 끌어당겼다.
“그 중계 프로그램을 누가 만들었는지 확인하면 되잖아요.”
“그걸 확인하려고 온 겁니다.”
하은은 첫 장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중계 서비스 이름은 'B-RETURN 정산 대조'. 2016년의 반환 함수를 2026년에 다시 활용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개발사는 여러 번 바뀌었고, 마지막 유지보수 계약은 익일금융 데이터사업본부가 관리하고 있었다.
민석의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정태겸 본부장?”
“계약 부서가 그쪽입니다. 실제 작업자가 누구인지는 따로 보아야 해요. 부서 이름이 개인의 책임을 증명하진 않습니다.”
두 번째 장에는 전날 오후에 처리된 이벤트가 적혀 있었다.
[실제 처리 시각: 2026-11-20 16:42]
[요청 계정: SERVICE-M36]
[표시용 기준 시각: 2036-11-20 16:42]
[연결 참조: R050-2016-1025]
“기준 시각이 십 년 뒤라는 게 이거군요.” 서윤이 말했다.
기태는 문서에 인쇄된 필드 설명을 읽었다. 만료 예정일이나 비교 기준일을 화면에 표시할 때 생기는 현상일 수 있었다. 그러나 누가 기준값을 넣었는지는 여전히 불명이었다. 그는 노트북을 직접 연결해 보고 싶다는 충동을 눌렀다. 하은이 적법하게 확보한 자료 밖에 접근할 권한은 없었다.
“이런 로그는 시스템 관리자에게 정식으로 원본 대조를 요청해야 해요.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서로 다른 두 장의 사본에서 동일한 값을 확인하는 정도입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민석이 말했다. “적어도 사람이 십 년 뒤에서 로그인했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거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은이 세 번째 종이를 펼쳤다. 여섯 사람의 보류 표시가 정상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와 별개로 RETURN_050의 '수취인 조회'는 중계 서비스에서 작동 중이었다. 위임 배치와 완전히 분리된 작업이었다.
“이 작업을 누구 허락으로 실행했습니까?” 세린이 물었다.
“신규 중계 계약의 검증 범위에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보관 대상 확인'까지만 적혀 있어요. 실제 계좌로 시험 송금을 하거나 수취인을 재지정하는 권한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준성은 이마를 문질렀다.
“그럼 천 원을 보내 놓고 권한이 있는 척했다는 거네.”
“그렇게 의심할 근거가 생긴 거죠.” 세린이 답했다. “송금을 실행한 주체와 목적은 은행의 확인을 기다려야 합니다.”
민석은 창밖을 보았다. 오전 열 시의 도로는 특별한 일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걸을 때마다 건널목의 신호가 바뀌었다. 누군가 버튼을 누르면 모두가 멈춰야 하는 장치가 아니라, 건너려는 사람에게 그 권리가 있음을 알리는 장치. 자신은 처음 이 원장을 보았을 때 그런 평범한 차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은이 회의실을 나간 뒤 민석은 정태겸에게 메시지를 쓰다가 지웠다. ‘모든 걸 알고 있었죠?’라는 문장은 분노를 전달하기에는 좋았지만 사실을 확인할 질문으로는 형편없었다. 대신 담당 부서에 공식으로 물었다. 누구의 요청으로 중계 서비스의 출력 결과가 투자 실사에 제공됐는지, 검증 근거의 효력을 누가 확인했는지, 승인자가 없는 자료는 어떤 상태로 표시되는지.
그는 요청서 끝에 자신이 050번의 반환 대상이나 법적 보관인임을 인정하는 내용이 없다는 설명도 넣었다. 절차를 밟는 순간조차 자신의 이름이 다른 용도로 쓰일 가능성을 조심한 것이다.
준성은 제출 버튼을 누른 뒤 어깨를 툭 쳤다.
“너 진짜 바뀌었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회사로 찾아갔을 텐데.”
“회사로 찾아가는 건 내일도 할 수 있어. 오늘은 답을 못 피하게 만드는 문서를 남기고 싶어.”
준성은 장난스레 볼을 부풀렸다.
“와, 돈 많아진 사람보다 더 귀찮아진 사람이 됐네.”
민석도 웃었다. 전에는 얼마를 벌면 이런 서류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을까 궁리했다. 이제는 자신이 직접 질문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자산처럼 느껴졌다.
점심시간에 민석과 준성은 최은정의 수선집을 찾았다. 은정은 반쯤 완성한 바지 밑단을 재봉틀 아래로 밀어 넣고 있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부터 쓰던 기계라 손잡이가 닳아 반질반질했다.
“천 원 들어왔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은정이 말했다.
“제 통장에 들어온 겁니다. 아주머니께 지급됐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건 알아요. 그러니까 내 돈이라고 주장하지도 말아요.”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정은 한참 재봉틀을 움직이다 바늘을 세웠다.
“나도 그 천 원을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에요. 내가 받았다고 장부에 적힌 거라면, 적어도 누가 그렇게 적었는지 알아야죠. 안 그러면 다른 금액도 마음대로 적겠지.”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게는 아직 문 안 닫았어요. 나한테 불쌍한 사람이라고 쓰지 마요.”
민석은 서윤에게 그 말을 꼭 전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이제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도와준다는 핑계로 자기가 원하는 서사를 만들어 주려는 위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녁 무렵 은행에서 거래 확인에 필요한 보완 서류를 요청했다. 1,000원의 실제 송금 경로는 확인 중이었고, 48,000원 거래는 이미 세온의 시범 지급으로 설명을 들은 상태였다. 두 건이 법적으로 연결된 지급인지는 별도의 확인 사항이었다.
그날 밤 민석의 원장이 메시지를 띄웠다.
[접속 기록 정정 요청]
[2036년 강민석 → SERVICE-M36]
[정정하면 미래 연결 기록이 삭제됩니다]
바로 아래에는 선택지가 있었다.
[예 — 현재 내역만 남긴다]
[아니오 — 2036년 연결을 계속 확인한다]
준성이 손을 뻗으려는 민석의 팔을 붙잡았다.
“또 선택하게 만들잖아.”
“그러게.”
민석은 두 버튼 모두 누르지 않았다. 그는 하은에게 화면을 보냈다. 공식 기록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과 원장이 만든 선택지에 응답하는 일은 달랐다.
그러자 화면이 스스로 바뀌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네가 그날 서명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라.'
다음 줄에는 처음 보는 이름 하나가 나타났다.
[2016년 원본 대조인: 윤혜라]
민석은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십 년 전 마지막 밤, 그가 기다렸다는 '마지막 사람'일까.
제7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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