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6년 11월 20일 16:42.'
세온기록관리 직원이 내민 출력물에는 날짜가 두 군데 있었다. 위쪽에는 '열람 종료: 2026년 11월 20일 16:42'라고 적혀 있었고, 아래쪽에는 방금 추가된 '원본 접근 승인: 2036년 11월 20일 16:42'가 적혀 있었다.
강민석은 둘 중 어느 날짜부터 물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다. 같은 분, 같은 초. 정확히 십 년이 벌어져 있었다.
“누가 접속했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습니까?”
직원은 종이의 오른쪽을 손끝으로 짚었다.
“접속자 표시가 강민석 씨입니다. 다만 이건 사용자 이름을 출력한 값이지 신원을 확인한 결과는 아닙니다.”
그 말이 민석의 마음을 조금 붙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화면에 이름이 뜨면 그 사람이 직접 했다고 생각했다. 지난 수십 일 동안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이 그 오해에서 시작됐다.
황기태가 옆으로 다가왔다.
“실제 서버가 요청을 받은 시각, 서명에 사용된 시각, 보존 기간의 만료일을 따로 보여 주실 수 있나요?”
“관리 권한으로 볼 수 있는 기록은 제한됩니다. 정식 요청서를 받으면 기술 담당자가 검토할 수 있어요.”
오세린이 즉시 메모를 꺼냈다. 보관기관에 사건 자료의 보존 요청을 내고, 지금 화면에 나타난 두 가지 날짜와 출력물 일련번호를 기록했다. 그녀는 직원에게 그 자리에서 시스템을 수정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상한 날짜라도 먼저 남겨 두어야 나중에 어떻게 생겼는지 따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준성은 유리문 밖에서 두 손을 흔들다가 분위기를 보고 멈췄다. 들어와도 되느냐는 몸짓이었다. 민석이 손짓하자 그는 회색 슬리퍼를 끌고 들어왔다.
“그래서 십 년 뒤의 네가 지금 컴퓨터를 만진 거야?”
“모른다고.”
“너 화났냐?”
“아니. 나도 방금 같은 질문을 세 번 했어.”
준성은 출력물을 들여다보더니 작은 글씨 하나를 가리켰다.
[확인 방식: 만료 예정 시각 기준]
“이거. 접속한 시간이 아니라, 언제까지 유효한지 써 놓은 것 같은데?”
기태의 표정이 바뀌었다.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왜 '접근 승인'이라는 이름으로 출력됐는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서윤은 그 말을 취재 수첩에 그대로 적었다. '2036년 접속 확인'이라는 제목은 쓰지 않았다.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사의 제목이 먼저 사실을 만들어 버리는 일을 그는 여러 번 보았다.
잠시 후 기술 담당자가 화상으로 접속했다. 그는 로그 전체를 열어 보일 수는 없지만 출력용 화면이 여러 종류의 날짜 필드를 한 표로 합친다는 구조는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예전 자료를 새 시스템에 옮기면서 '승인 기준 시각'과 '승인 완료 시각'이 같은 자리에 쓰인 적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 데이터가 잘못 표시됐을 수 있습니까?” 민석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기록이 오류라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 요청이 있었는지는 접속 이력과 원본의 변경 이력을 따로 대조해야 해요.”
“누가 그 요청을 했습니까?”
“현재로선 시스템 계정으로 보입니다.”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2036년의 자신이라는 존재를 인정할 증거는 여전히 없었다. 하지만 이제 확실한 것은 따로 있었다. 누군가 현실의 보관 기록에 접근하는 통로를 가지고 있었다.
세린은 보관기관이 원본을 임의로 넘기지 못하도록 접근 이력 보존과 임시 제한 조치를 신청했다. 기관은 즉시 차단을 약속하지 않았다. 기록 보존 의무와 정당한 열람권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답이었다.
“이상하죠.” 준성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에서는 버튼 하나면 천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데 여기서는 종이 한 장 보존하는 것도 어렵네.”
“현실에선 그게 정상일 수 있어.” 민석이 답했다. “어려워야 할 일이 쉽게 되는 쪽을 이제는 더 의심하게 돼.”
보관기관을 나오기 전 기태는 출력물에 찍힌 일련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처음 받은 종이는 열람실 프린터의 시간 설정이 기준이었다. 두 번째 종이는 서버가 생성한 문서를 프린터가 출력한 것이었다. 둘의 분 단위 시각이 같다고 해서 같은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됐다.
“두 장을 따로 보관해 주세요. 어떤 방식으로 출력했는지 직원분이 적어 주신 메모까지요.”
직원은 정정할 기회가 있는지 물었다. 기태는 지금 당장 잘못된 항목을 고치기보다 원본 로그를 보존한 뒤 정정 사유를 남기는 편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누구에게도 마음대로 복구 작업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서윤이 민석에게 물었다.
“십 년 뒤의 당신이 진짜 말을 걸어온 거라면, 가장 먼저 뭘 물어보고 싶어요?”
민석은 잠시 생각했다.
“돈을 벌었는지 물었을 거예요. 며칠 전만 해도요.”
“지금은요?”
“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어떤 약속을 했는지 확인할 것 같아요. 정말 내가 한 약속인지부터.”
서윤은 더 묻지 않았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몇 년의 시간만이 아니었다. 남이 적은 자신의 이름을 의심하지 않고 살아갈 권리도 있었다.
늦은 저녁, 민석은 은행에서 받은 임시 거래 확인서를 펼쳤다. 같은 시각에 입금된 천 원의 송금 메시지는 RETURN_050. 확인된 것은 자기 계좌에 천 원이 들어왔다는 사실뿐이었다. 최은정의 미지급 천 원과 같은 금액이지만 같은 돈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그런데 흰 원장에서는 벌써 결론이 나 있었다.
[RETURN_050 실제 입금 확인]
[보관인 지급 능력 검증: 성공]
[다음 단계: 대상자 대리 수취 가능]
민석은 마지막 줄에 크게 X를 그어 수첩에 옮겼다.
“천 원이 내 통장에 왔다고 다른 사람 돈을 받을 권리가 생기진 않아.”
기태가 화면을 찍어 둔 뒤 어깨를 움츠렸다.
“금액보다 그 결론이 무섭네요. 딱 한 번 계좌로 돈을 보내고, 보관인이 지급 능력을 증명했다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서윤이 노트북을 열었다. 익일금융의 자료가 투자자들에게 재전송될 예정이라는 내부 제보가 왔다. 공표 보류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대신 회사는 외부 입금 사례 하나를 근거로 실사 보고서를 새로 만들고 있었다.
[실입금 테스트: 1,000원]
[자산화 검토 대상: 100,000,000,000원]
천 원과 천억 원이 한 표에서 이어졌다.
민석은 방금 받은 출력물을 다시 보았다. 열 해 뒤에 찍힌 도장이 기적이든 오류든, 그 도장 하나를 믿고 실제 돈이 움직이게 하려는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었다.
“내일 아침에 그 사람부터 찾아야겠어요.”
“누구요?” 서윤이 물었다.
“2036년의 나를 만든 사람요.”
바로 그때 세온의 기술 담당자에게서 짧은 추가 회신이 도착했다.
'문제의 접속 기록과 오늘 오후 4시 42분의 입금 알림은 동일한 외부 참조번호를 사용했습니다.'
민석이 종이를 들어 올렸다.
두 시스템이 우연히 같은 시간을 보여 준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둘 사이를 직접 연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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