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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69화
PAYLUA ORIGINAL · 제69화

69화. 자정의 보관인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3,239자

오프라인 책장
11월 19일 오후 열한 시 십육 분. 익일금융의 공용 약관에 반대하는 공식 이의 통지가 접수됐다. 세린은 접수 번호를 확인하고 통화를 마쳤다. 이미 긴급 검토 요청을 여러 경로로 제출했지만 자정 전에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내일이면 여섯 사람이 당신에게 넘어오는 건가요?” 준성이 물었다. “법적으로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어.” 세린이 말했다. “하지만 전산 화면에는 그렇게 표시될 수 있어요. 그 화면을 믿은 누군가가 거래를 진행한다면 현실의 분쟁이 생기겠죠.” 민석은 책상에 놓인 종이를 바라봤다. 최은정과 이범우, 나머지 이용자들이 각자 작성한 보류 확인서였다. 어느 것도 민석에게 권리를 맡기겠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문서가 여섯 사람을 한꺼번에 묶어 버리면 어떻게 해요?” “그분들의 의사 표시와 시스템 기록이 다르다는 걸 증명해야죠. 지금 자료는 남아 있어요.” 준성은 의자에 거꾸로 앉았다. 평소라면 농담 하나쯤 했을 텐데 이번에는 조용했다. “너 있잖아.” 그가 말했다. “처음 이 능력 생겼다고 했을 때 내가 너한테 뭐랬는지 기억해?” “돈 벌자고 했지.” “맞아. 빨리 벌고 빨리 튀자고. 그런데 지금은 자정 지나기 전에 누가 동의했는지 확인하고 있네. 세상이 참 이상하다.” “내가 이상해졌나 보지.” “아냐. 네가 덜 이상해졌지.” 민석은 웃었다. 웃음이 사라지자 친구가 다시 말했다. “뭐가 나오든 이번엔 혼자 짊어지지 마. 네 이름이 보관인으로 뜨더라도 진짜 여섯 사람이 너한테 허락한 건 아니잖아.”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는 모든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이름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해 왔는지도 몰랐다. 열한 시 사십 분. 조하은이 알려 온 정보가 상황을 바꿨다. 내부 법무 검토에서 위임 약관의 적용을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시스템 담당자가 자정 배치를 일시 중지하는 승인 절차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성공한 거야?” 준성이 벌떡 일어났다. “아직은 아닙니다.” 하은이 말했다. “승인자 두 명이 모두 확인해야 해요.” 한 명은 이미 승인했다. 다른 한 명은 정태겸 본부장에게 보고 중이라고 했다. 민석은 태겸의 이름을 듣자 주먹을 쥐었다. 문득 검은 원장을 열어 미래의 결과를 보고 싶어졌다. 자정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만 알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화면은 처음부터 흰색이었다. [2026년 11월 20일 00:00] [예상 결과: 보관인 일괄 귀속] [회피 확률: 0.0%] 민석은 그 문구를 보고 웃음이 났다. 이전에 원장이 내놓았던 99.8퍼센트의 예측은 과거 기록 몇 장을 대조하자 61.4퍼센트가 됐었다. 0퍼센트라고 적었다고 미래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너희 예측은 이제 안 믿는다.” 그는 화면에 대고 말했다. 무의미한 항의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입 밖에 내고 싶었다. 서윤에게서 전화가 왔다. 편집국에서 익일금융의 약관 변경에 관한 기사가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당사자 인터뷰는 원고를 보여 준 후 허락받은 내용만 사용했다. 누군가의 이름은 가리고, 누군가의 이름은 본인이 실명 공개를 원해 남겼다. “이게 세상을 다 바꾸지는 않겠죠.” 서윤이 말했다. “그래도 누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건 남겠네요.” “그게 시작이죠.” 열한 시 오십육 분. 서윤의 기사가 게재됐다. 제목은 자극적이지 않았다. '지급 보류를 위임으로 읽는 약관, 누구의 동의인가.' 기사 하단에는 익일금융의 입장도 실렸다. 회사는 해당 문구를 검토 중이며 시스템상 표시와 실제 권리 귀속은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명확한 해명은 아니었지만 최초 공표문과는 달랐다. 승인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민석은 작은 종이에 여섯 명의 이름 대신 여섯 개의 빈 사각형을 그렸다. 개인정보를 적어 놓지 않아도 무엇을 지키려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준성은 사각형 하나 옆에 조그마한 컵을 그렸다. “이건 뭐야?” 민석이 물었다. “아까 회의실에 오셨던 분. 춥다고 뜨거운 차 마셨잖아.” “그분이 누군지 기억하라는 거야?” “아니. 이름 몰라도 사람이란 걸 기억하라고.” 민석은 종이를 접어 수첩에 끼웠다. 거대한 숫자들을 더하고 빼는 동안, 자신들은 사람을 지나치게 쉽게 항목이라고 불렀다. 여섯 명의 결정을 여섯 건의 오류로만 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화면에 긴급 알림이 떴다. 남은 결재자는 정태겸이 아니었다. 그는 결재 권한자에게 검토 의견을 제출했을 뿐이었다. 실제 승인자는 별도의 준법감시 담당자였다. 민석은 그제야 작은 사실 하나를 바로잡았다. 가장 미워하는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고 믿는 것 역시 장부가 만든 단순한 이야기일지 몰랐다. 열한 시 오십팔 분. 내부 승인 두 건이 모두 끝났다는 통지가 하은에게 도착했다. 자정 배치의 일부가 보류됐고, 변경된 데이터는 재검토 목록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멈춘 거네요.” 준성이 말했다. “적어도 이번 배치는요.” 하은이 답했다. 민석의 손이 풀렸다. 그는 오래된 영수증 옆에 놓인 사만 팔천 원 입금 확인 내역을 봤다. 여전히 돈은 쓰지 않았다. 돈을 쓰지 않는 일이 어떤 거대한 고통을 막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그는 그런 주장을 믿기보다 자신이 지킨 절차를 믿고 싶었다. 자정. 휴대전화의 흰 화면이 꺼졌다. 검은 원장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자동 위임 배치: 중지] [보관인 변경: 미실행] [실제 권리 귀속: 개별 확인 필요] 준성은 양손을 번쩍 들었다. 민석도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화면 한쪽에 작은 글자가 나타났다. [서버 측 진행 항목: 1건] “한 건?” 기태가 즉시 화면을 기록했다. 남아 있는 항목은 위임 여섯 건과 일치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처리하려던 것은 다른 종류의 작업이었다. [작업 이름: RETURN_050] [진행 상태: 수취인 조회] 민석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동 위임을 막았는데도 050번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받지 않았다. 음성메시지가 남았다.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 세린에게 발신 확인 방법부터 물었다. 번호는 공식 기관 번호가 아니었다. 짧은 음성메시지에는 남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강민석 씨. 이제 쉰 번째 칸을 비워 둘 수 없습니다. 당신 말고도 그 칸을 찾는 사람이 있어요.” 상대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마지막에 아주 작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낡은 동전이 탁자 위에서 구르는 듯한 소리. 그리고 한마디. “사만 팔천 원을 보낸 이유는 당신이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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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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