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64화
PAYLUA ORIGINAL · 제64화

64화. 마지막 밤의 목소리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3,069자

오프라인 책장
보관기관의 열람실은 생각보다 좁았다. 벽면에는 화려한 화면 대신 방음재가 붙어 있었고, 가운데에 놓인 모니터 한 대가 전부였다. 민석은 자리에 앉기 전에 참석자 명단을 다시 확인했다. 정태겸은 외부 이해관계인 자격으로 왔고, 자료의 사본을 가져갈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녹화 중에는 휴대전화 사용을 금합니다.” 직원이 말했다. “열람 기록과 확인된 문구만 별도로 제공됩니다.”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을 훔쳐 찍으면 더 빨리 진실을 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러는 순간 그는 자신이 반대해 온 방식과 닮아 버릴 것이다. 영상이 시작됐다. 화면 속 정도현은 지금의 민석이 기억하는 모습보다 훨씬 젊었다. 낡은 회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배경에는 프로젝트 사무실의 푸른 칸막이가 보였다. 촬영 날짜는 2016년 10월 25일 새벽 두 시 십일 분으로 적혀 있었다. 도현은 카메라를 보지 못하고 몇 번이나 옆을 돌아봤다. 누군가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도현입니다. 오늘 종료하는 반환 프로그램의 원본 계산식을 보관합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들어 올렸다. “이 프로그램은 미래의 돈을 만드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지급된 것으로 기록됐지만 실제 송금이 확인되지 않은 항목을 찾아, 원래 받을 사람이 확인할 수 있도록 남겨 두는 도구입니다.” 태겸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민석은 그를 보지 않았다. “쉰두 건이라고 적은 것은 쉰두 명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대조 항목을 뜻합니다. 그중 마지막 항목은 사람을 비워 둔 채 보관하는 자리입니다.” 도현은 화면 가까이 다가왔다. “어떤 사정이 있어도 보관인의 이름을 수취인 이름으로 바꾸지 마십시오. 그건 돈을 돌려주는 일이 아니라 돈의 주인을 바꾸는 일입니다.” 민석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열 해 동안 그가 쫓아온 비밀이 이렇게 명확한 말로 기록돼 있었다니. 영상 속 도현은 또박또박 말했다. 자신이 언제 이 말을 보게 될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강민석 씨는 종료 원본의 이동 경비를 먼저 냈습니다. 그것은 그가 반환 목록 전체의 채무를 인수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용 정산과 권리 귀속을 섞어 적지 마십시오.” 민석은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도현은 48,000원의 의미까지 분명히 해 두었다. 그 순간 민석은 도현과 함께 있던 사무실을 떠올렸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고, 책상 밑에서 오래된 전산 장비가 윙윙거리던 방이었다. 도현은 늘 소매를 걷어 올리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회사가 바뀌어도 기록에 남는 값이 같아야 한다며, 종이 장부와 전자장부의 합계를 꼭 따로 계산하곤 했다. “형님은 왜 이렇게 느리게 하세요?” 젊은 민석이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기억 속 도현은 답했다. “빠르게 틀린 걸 나중에 고치는 게 더 오래 걸리니까.” 현재의 민석은 무릎 위에서 두 손을 포갰다. 오래된 영상 한 편이 십 년의 거리를 단번에 지워 주지는 않았다. 그날 도현이 어디로 가려 했고 왜 마지막에 혼자 남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목소리만큼은 분명하게 돌아왔다. 서윤이 옆에서 작은 메모지를 밀었다. '감정이 복잡하면 잠깐 멈춰도 됩니다.' 민석은 고개를 저었다. “보고 싶습니다. 끝까지요.” 그는 처음으로 원장이 보여 주는 미래보다 사람이 남긴 과거를 더 간절히 보고 있었다. 영상은 잠시 흔들렸다. 화면 밖에서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물었다. “왜 하필 십 년 뒤에 다시 확인하게 합니까?” 도현은 대답했다. “자료를 버릴 수 없는 보존 기간의 끝이라서요. 그리고 그때까지도 지급을 못 받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민석은 '2036년'이라는 숫자의 한쪽 실마리를 잡았다. 2036은 예언된 시간이라기보다 보존 기간의 끝을 표시한 날짜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도현은 마지막에 뜻밖의 말을 했다. “이 영상은 증빙입니다. 동의서가 아닙니다. 이 영상을 본 사람이 무엇을 승인한 것으로 처리해서도 안 됩니다.” 영상이 끝났다. 태겸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반환 대상의 권리 확인이 중요하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보관된 권리를 현실적인 상품으로 만드는 일과 양립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오세린은 자료를 덮었다. “상품으로 만들려면 먼저 실제 권리가 존재한다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걸 동영상이 대신해 주진 못해요.” “지급 가능성을 거래하는 시장은 원래 있습니다.” “가능성을 가능성이라고 팔아야죠.” 서윤이 대답했다. “지급 완료라고 쓰면 안 됩니다.” 태겸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웃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정직하다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확인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권리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기회를 잃은 사람들은 누가 책임집니까?” 그 질문에 민석은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십 년이 흐르며 증거를 잃거나 청구 기한을 놓친 사람이 있었다. 진실을 확인하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손실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도현의 영상을 떠올렸다. “그래도 받지 않은 돈을 받았다고 하는 게 기회는 아닙니다.” 태겸이 일어났다. “결국 보관인 명의는 그대로 두겠다는 말씀이군요.” “그 이름이 제 것이라는 확인부터 안 됐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그가 나간 뒤 직원이 열람 확인서를 가져왔다. 참석자는 영상의 존재와 열람 시각을 확인할 뿐, 내용이나 권리를 승인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민석은 처음으로 서명을 할 수 있는 문서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다. ‘열람 사실 확인. 권리 승인 아님.’ 그렇게 적고 자신의 이름을 썼다. 복도에서 서윤이 물었다. “열 해 전에도 이런 식으로 확인서를 썼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내가 왜 도현 씨와 같이 다녔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아요.” 그때 조하은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말했다. “태겸 본부장이 임시 공표 시스템에 새 자료를 올렸어요. 오늘 본 영상을 근거로 '보관인 확인 완료'라고 표시됐습니다.” “우린 그런 확인 안 했어요.” 민석이 대답했다. “저도 알아요. 문제는 공표문이 이미 투자자들에게 전송 대기 중이라는 거예요.” 전송 예정 시각은 오늘 오후 다섯 시. 시계는 네 시 사십일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64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6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