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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58화
PAYLUA ORIGINAL · 제58화

58화. 빈 금고의 증인들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3,241자

오프라인 책장
계약 금고는 은행이 아니라 문서보관 회사 건물에 있었다. 사람들은 자꾸 거대한 철문을 상상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것은 평범한 회색 창고였다. 직원들은 택배 상자를 옮겼고, 형광등 아래에는 보관 기한이 적힌 종이들이 줄지어 있었다. 세린은 문서 소유권자와 관리회사의 공식 허가가 없으면 물건에 손대지 않겠다고 미리 정했다. 감사 담당자 조하은은 회사 내부 절차로 열람 가능한 부분만 참관했고, 실제 자료를 제공할 권한이 없는 부분은 분명히 밝혔다. 현장에는 별도의 보존 기록 담당자도 있었다. “이렇게 복잡해야 합니까?” 준성이 물었다. “복잡하게 남겨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따지는 사건이잖아요.” 서윤이 말했다. 창고 안에서 꺼낸 상자에는 파란 봉인이 붙어 있었다. 관리자는 봉인 훼손 여부를 먼저 확인했다. 관리 기록상 마지막 정기 점검은 두 달 전이었다. 그 사실이 내용의 진위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상자 안에는 인쇄된 계약 증빙과 체크리스트가 들어 있었다. 가장 위에는 '미래 정산 잔여 자산 실사표'라는 제목이 있었다. 민석이 40화 마지막에서 원장으로 받은 파일과 비슷했지만 숫자가 조금 달랐다. “이쪽에는 열두 종 전부가 없네요.” 기태가 말했다. “아홉 종만 있어요.” 하은이 답했다. “빠진 세 종이 왜 빠졌는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민석은 가장 먼저 '확인된 실제 현금'이라는 칸을 찾았다. 예상 평가 금액은 천억 원이었으나, 확인된 지급 금액란은 공란이었다. 그 아래에는 '추후 대조'라는 글씨가 있었다. “천억 원짜리 자산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군요.” 서윤이 말했다. “그 자체로는 아닙니다.” 기태가 답했다. “예상 평가나 제안 금액이 실제로 수취 가능한 금액이라는 뜻은 아니죠.” 상자 바닥에는 다른 종류의 문서가 들어 있었다. 열두 장의 종이마다 같은 항목이 반복됐다. [권리 내용 확인: 보류] [당사자 동의: 개별 확인 필요] [대리 승인자: MINS-36] “보류해 놓고 왜 승인자가 있죠?” 준성이 물었다. “보류를 승인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민석이 말했다. “그럼 원장은 그 말을 정반대로 읽었겠네.” 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가설입니다. 다만 2036년 승인란이 언제 생겼는지는 별도 검증해야 해요.” 그들은 상자 안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현금의 존재를 확인하는 증빙은 없었다. 계약서 일부는 실제 지급 지시를 가리켰고, 일부는 검증이 끝나야만 효력이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회사 측과 이해관계자들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한참 뒤 세린이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천억이 없다는 것도, 천억이 있다는 것도 아니에요. 이 문서만으로 천억이 현금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거죠.” 준성이 어깨를 떨어뜨렸다. “어렵다. 돈이 없는 거면 없다고 하면 좋을 텐데.” “쉬운 결론을 찾으려다 일을 키웠잖아.” 민석이 대답했다. 서윤은 그 순간 낯선 사실을 발견했다. 상자에 붙은 문서 목록 옆에 작은 검수인이 적혀 있었다. '정도현 외 1인'. “정도현 씨는 이 창고를 보관 장소로 지정한 적이 있나요?” 하은은 문서를 확인했다. “이관 후 목록 작성에 참여했다는 흔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보관된 모든 종이를 직접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서윤은 다음 줄로 눈을 내렸다. '외 1인: 김예린'. 민석이 예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연락이 가능한 공식 경로였다. 예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 상자가 아직 있었군요.” “내용을 아십니까?” “봉인할 때 저는 종이가 아니라 봉인 절차를 확인했어요. 안쪽 내용은 제가 검증한 적이 없습니다.” “왜 이름을 남기셨죠?” “누군가 나중에 상자를 열었을 때 '김예린이 천억을 확인했다'고 말할까 봐요. 그래서 확인한 범위를 문서에 적어 뒀습니다.” 민석은 급히 아래쪽 문서를 찾았다. 그 문장이 정말 있었다. '본인은 봉인의 이상 유무만 확인함. 자산 금액 및 권리 확인한 사실 없음.' “서명란 아래 숨듯이 있네요.”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어요.” 예린이 말했다. 민석은 깨달았다. 사람의 이름은 보증이 될 수 있고, 동시에 보증하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원장은 앞쪽만 읽었다. 뒤쪽의 부정문은 버렸다. 창고 복도에서 준성은 발걸음을 멈췄다. “난 이상해. 서명해 놓고 바로 아래 '확인 안 함'이라고 쓰면 누가 그걸 읽어 줘?” “누군가 읽었으면 했겠지.” 민석이 말했다. “그 누군가가 이렇게 늦게 올 줄 알았을까?” 민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도현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김예린은 십 년 동안 자료를 보관했다. 그들이 믿었던 건 당장 모든 사람이 진실을 알아 준다는 희망이 아니라, 언젠가 확인하러 올 사람이 증거를 찾아낼 수 있게 하자는 약속에 가까웠다. 준성이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솔직히 난 백억만 보고 왔어. 처음엔 네가 돈 벌면 나도 같이 벌 수 있을 줄 알았지.” “알아.” “근데 저 문서 아래 아주 작게 적힌 '확인하지 않음'이라는 말이 계속 생각나.” 민석은 친구를 바라봤다. “돈보다 글씨가 작아서 그런가?” “야, 놀리지 마.” 준성이 웃었다. “사람 하나가 겨우 그 문장으로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의 책임을 막아 놨다는 게…”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민석은 잔잔한 창고 복도를 걸으며 낡은 금고의 쇠 냄새를 떠올렸다. 그가 찾아 헤맨 미래의 비밀은 날카로운 컴퓨터 코드가 아니라 자산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아주 평범한 부정문에 숨어 있을지 몰랐다. 밖으로 나올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커다란 물류차가 물건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서윤은 운전석에서 내려 문을 닫는 기사와 비켜 서서 걸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내일 받을 돈을 벌기 위해 오늘 밤을 일하고 있었다. 창고를 나오던 길, 서윤이 휴대전화로 제보를 받았다. 어느 금융 커뮤니티에서 '천억 원 자산 실물 확인'이라는 제목의 글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그들이 상자를 열었다는 사실이 근거로 인용돼 있었다. “벌써 누가 올렸다고요?” 민석이 물었다. “네. 그런데 우리한테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서윤은 당장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실만 정리했다. 현장에 있었고 문서를 확인했으나 실제 현금이나 권리의 유효성을 확인한 사실은 없다고. 그날 밤 하은이 추가 메시지를 보냈다. '상자 밖 관리대장에 없는 봉투 하나가 있습니다. 보관 회사에서 별도 보존 대상으로 확인했습니다.' “또?” 준성이 탄식했다. 봉투의 겉면에는 숫자가 아니라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취인 없음 — 반환할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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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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